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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정치 열공’에 빠진 세종 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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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경제부문 차장

지난해 말 경제부처를 다시 출입하면서 정부세종청사를 처음 찾았다.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에 비해 가까웠다. 서울 집에서 KTX와 버스를 갈아타도 1시간20분이면 닿는다. 예전 정부과천청사를 오갈 때도 러시아워 때는 한 시간이 족히 걸렸다.

 풍광도 과천을 아예 푹 떠다 놓은 인상이다. 무채색 아파트와 관청의 단출한 구성, 튀지 않는 복장의 공무원 조합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그렇다. 남녘으로 한참을 내려갔지만 겨울철 칼바람도 관악산 자락만큼 매섭다. 행정부처 입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체감기온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달라진 건 사람이다. 무엇보다 관료들의 ‘열공 과목’이 바뀌었다. 복지·균형이 화두였던 노무현 정부 시절이 ‘사회학’, 규제 완화·효율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 시절은 ‘경영학’이었다면, 요즘은 단연 ‘정치학’이다. 의원들의 협조가 없으면 장관이 되기도 어렵고, 아무리 공들인 정책도 허사가 돼버리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입법 전략회의’가 상시적으로 열리고, 문지방이 닳도록 의원실을 들락거리는 게 관가 최고의 미덕이 됐다.

 관료가 정무 감각을 키우는 게 무슨 문제랴. 하지만 ‘원론’부터 익히는 대신 ‘여의도식 실전론’만 탐독하게 되니 문제다. 한 장관이 전한 이른바 ‘입법 활동’의 현실은 이렇다. “공개된 회의에선 고함을 치다가도 의원실에 찾아가면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온갖 청탁과 법안 거래 제안을 쏟아낸다. 내가 장관인지, 장사꾼인지 모를 지경이지만 당장 급한 마음에 혹하는 것도 사실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개 차관, 아무개 실장이 출마를 대비해 ‘지역구’를 살뜰히 챙긴다”는 말들이 세종에는 자주 돈다. 비단 고위직만의 얘기도 아니다. “요즘은 과장만 돼도 정치적 ‘뒷배’ 하나씩은 챙기고 있더라”는 모 부처 차관의 얘기에선 숨이 턱 막혔다. 굳이 내각제가 아니라도 3권 분립은 어느새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다.

 13일 취임하는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을 거친 명실상부한 전문가다. 하지만 선임 배경은 그보다는 재선의 정치인, 그리고 적이 없는 유(柔)한 성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사 청문회에선 ‘야당 의원 집 앞에 텐트를 치라’는 주문까지 나왔다. 문제는 경제 컨트롤타워가 의원 관리에 매진해도 될 만큼 올 경제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는 것이다. 해외발 파고는 새해 벽두부터 한국 경제를 덮치고 있고, 정치적 부담에 미뤄둔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 빚의 짐은 어느덧 한계 상황에 달하고 있다. 시대적 소명을 되새기고, 창조적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라면 신임 부총리에게 ‘실전 정치학’보다는 차라리 ‘인문학’을 권하고 싶다. 이미 세종에는 정치가 차고 넘친다.

조민근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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