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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위험한, 또는 해로운 단합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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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그래서 우린 몇 년 전에 순서를 바꿨어. 첫날 술 마시고 다음 날 산 타던 것을 우선 산부터 타고 저녁에 술 마시고 그 다음 날 결의대회를 하는 걸로.” 중견기업 인사담당 임원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음주 뒤 산행’은 위험하니 ‘산행 뒤 음주’로 획기적 발상의 전환을 했다는 거였다. 치기가 발동해 한마디 했다. “그런데 회사 단합대회 때 휴일 근무수당은 챙겨 줍니까.” 그가 받아쳤다. “어이구, 누가 기자 아니랄까 봐….” 성탄절 지리산 등반 단합대회에서 회사원이 심장마비로 숨진 일을 놓고 나눈 대화는 그쯤에서 선이 그어지며 다른 소재로 옮겨갔다.

 단합대회, 워크숍, 수련회, ○○연수, 야유회, 엠티(MT)…. 이름이 달라도 내용은 거기서 거기다. 음주(가무 동반이 다반사다)는 필수다. 운동도 빠지지 않는다. 마라톤·등산의 고강도 극기성부터 족구·피구의 참여형 게임까지. 회사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 조직과 대학 등 사람 모인 곳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지난해 행정자치부의 지자체 노사협력 평가위원으로 참여해 실적자료를 받았는데, 이런 행사를 안 한 곳이 없었다. 하나같이 플래카드 걸고 가운데의 단체장 옆으로 직원들이 늘어선 사진이 증거물로 붙어 있었다.

 한편에선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 포털에 ‘단합대회’ 네 글자를 넣으면 기획·예약·준비를 원스톱 한 방에 해결해 준다는 업체들 연락처가 잔뜩 나온다. 대형 리조트나 C급 연예인(사회자나 초청 가수로 등장한다)에겐 밥줄이다.

 가족·친족은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공동사회)’, 회사·대학은 ‘게젤샤프트(Gesellschaft·이익사회)’라고 학교에서 달달 외웠다. 독일 학자의 분류였다. 단합대회의 용도는 게젤샤프트의 게마인샤프트화다. 그래서 그 앞에 ‘한마음’이나 ‘XX(회사 이름) 가족’이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는다. 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면 보상이나 산재 처리를 둘러싼 싸움이 생기고, 두 샤프트의 경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임을 다시 확인한다.

 단합대회는 개인의 남다른 생각이나 비합리적 관행에 도전하는 태도가 조직 발전의 방해요소임을 일깨워 준다. 한잔 걸친 선배가 후배에게 “특별히 해준다”고 무게 잡고 하는 얘기 중에는 “너무 튀지 마라” “나서지 마라” 같은 것이 꼭 있다. 그렇게 조직원은 표준화·규격화된다. 21세기 된 지가 15년이 넘었고, 창조경제를 한다는 때에 여전히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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