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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② 예수는 사람의 아들인가, 신의 아들인가

예수는 인간인가, 신인가. 그는 과연 사람의 아들일까, 아니면 신의 아들일까. '첫 단추'가 궁금했다. 예수가 태어난 땅,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거기서 '예수의 뿌리'를 보고 싶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은 멀지 않았다. 남쪽으로 8㎞쯤 떨어져 있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거주지다. 베들레헴으로 가려면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실탄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과 장갑차가 검문소를 지키고 있었다.

검문소 이쪽과 저쪽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예루살렘은 깔끔한 유럽의 도시 같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은 수십 년은 낙후된 인상이었다. 마치 2016년에 살다가 1986년쯤으로 순식간에 돌아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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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에 있는 예수의 모자이크 벽화. 예수는 백인이 아니라 중동 사람들의 외모에 더 가까워 보인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낙후됐다. 비포장길도 많았다. 흙먼지를 날리며 버스가 달렸다. 차창 밖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보였다.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으로 태어났던 예수의 외모도 저랬겠지. 저렇게 생긴 눈에, 저런 코, 저런 머리칼에, 저런 피부를 가졌었겠지.

주위를 둘러봤다. 어쩌면 내가 탄 버스 기사처럼 생겼을까. 아니면 검문소를 통과할 때 여권을 검사하던 유대인 군인처럼 생겼을까. 갈수록 궁금해졌다. 예수는 과연 인간일까, 아니면 신일까. 그도 아니면 둘 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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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이 들판에 나타나 목동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렸다. 베들레헴에 세워진 '목자들의 들판 교회'. 예수 탄생지는 거기서 멀지 않았다.


예수의 출생은 파격이었다. 처녀의 몸으로 마리아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 당대에 결혼이란 집안간의 만남이었다. 결혼 상대자도 대부분 부모가 결정했다. 가문의 명예는 목숨과 바꿀 만큼 중요했다. 혼전 처녀가 임신을 한다면 대가는 가혹했다.

성서에는 간음한 여자를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는 대목이 나온다. 혼전 임신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남성들은 임신한 여성을 돌로 쳐 죽이는 게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마리아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수태고지(受胎告知)는 마리아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건'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첫 마디가 그랬다. "두려워하지 마라."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18~1882)의 그림 '수태고지'에서는 두려워하는 마리아가 여실히 보인다. 침대에 앉은 마리아는 천사의 '수태 통보'를 듣고 벽 쪽으로 몸을 움츠린다. 천사가 건네는 백합의 꽃말은 순결과 신성(神性)이다. 마리아는 그걸 선뜻 받지 못한다. 두 손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꽃을 받은 뒤에 자신에게 몰아칠 '운명의 폭풍'을 직감적으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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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작품 '수태고지'.

그림 속 마리아의 얼굴은 무척 앳되다.

마리아는 당시 몇 살이었까. 그런 운명을 감당할만한 나이나 됐을까.

성서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 마리아가 몇 살인지, 예수와 몇 살 차이인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

당시 풍습을 통한 추정은 가능하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다. 양가에서 결혼을 승낙하고, 예식을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니 마리아는 결혼적령기였을 터이다.

당시 갈릴리 지방에서 여성은 첫 월경을 하는 나이가 되면 시집을 갔다고 한다. 그게 열서너 살이다.

그때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 의술도 발달하지 않았으니 출산 도중 목숨을 잃는 여성도 많았을 터이다. 여성의 출가 연령도 낮았다.

그럼에도 열서너 살이면 아직 어리지 않았을까. 성령에 의해 임신이 되는 '초월적 사건'을 목숨을 걸고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았을까.

천사 가브리엘은 아이의 이름까지 불러주었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Jesus)라 해라." 한국말로 바꾸면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철수'라 해라"쯤 된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예수'는 그만큼 흔한 이름이었다.

로마 시대의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7?~100?)는 『유대 전쟁사』에서 "당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다"고 기록했다. 그러니 국어책에 등장했던 '철수'나 '영희'처럼 유대인에게 흔하고 친숙한 이름이 바로 예수의 이름이었다.

'예수'는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는 뜻이다. 버스 안에서 읊조려 봤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철 그리스도'나 '정환 그리스도'로. 그렇게 한국식으로 바꾸어 불렀더니 친근한 어감이 확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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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히브리어를 썼다. 사실 히브리어는 고대 이스라엘의 언어다.

구약성서는 대부분 히브리어로 기록됐다. 유대 민족이 오랜 세월 바빌론의 포로가 되면서 말이 바뀌었다. 예수 당시에는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는 아니었다. 구약을 연구하는 일부 율법학자들만 익히는 문자 언어였다.

훗날 이스라엘의 건국(1948년)과 함께 히브리어가 다시 유대인의 공용어가 됐다. 그럼 예수가 사용한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이스라엘 광야에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루살렘의 골목에서 예수가 말하고 들었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람어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람어와 그리스어를 썼다. 그리스어는 외교용 언어였고, 지중해 지역에선 공용어였다. 이 때문에 신약성서는 처음 그리스어로 기록됐다. 예수 당시에는 일부 식자층이 그리스어를 썼고, 대다수 평민은 아람어를 썼다.

예수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썼던 언어는 다름 아닌 아람어였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여호수아(Yehoshuah)'이고, 아람어로는 '예수아(Yeshua)'다. 그러니 마리아와 요셉이, 갈릴리의 이웃들이 어린 예수를 부를 때는 "예수아! 예수아!"라고 불렀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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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 교회. 교회라기보다 성(城)이나 요새처럼 보인다.


버스가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해발 770m의 산악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차에서 내렸다. 베들레헴은 ‘베들(House)+레헴(Bread)’으로 ‘빵 만드는 집’이란 뜻이다.

이곳은 그리스도교의 성지 중의 성지다. 가톨릭 신자들도, 크리스천들도, 딱히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베들레헴을 찾아온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보는 풍경, 말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의 모습. 그 공간적 배경이 바로 여기다.

지금은 마구간이 없었다. 대신 예수가 태어난 자리에 교회가 서 있었다. 약 1500년 전에 세워진 ‘예수탄생 교회’다. 325년에 지었다가 파괴되고 529년에 재건됐다. 529년이면 고구려 안장왕이 백제 성왕과 싸웠던 때다. 예수탄생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세월 문을 열고 있는 교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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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탄생 교회의 출입구. 높이가 1.2m에 불과해 머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다.

교회 입구가 특이했다. 성벽 아래에 난 작고 네모난 구멍이 입구였다. 높이는 1.2m정도에 불과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면 누구나 머리를 숙여야 했다. 말을 타고 교회 안에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입구를 낮고 작게 만들었다고 한다.

예외는 없었다. 순례객들은 다들 머리를 숙였다. 그건 일종의 ‘내려놓음’이기도 했다. 자신을 내려놓은 곳, 거기야말로 신을 만나는 곳이니까.

안으로 들어갔다. 1500년 전에 지은 교회의 실내 양식은 아주 독특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처럼 40여 개의 굵다란 기둥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서있었다. 앞에는 제단이 있고, 정교회 성직자들이 미사 중이었다.

교회 아래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곳에 예수가 태어난 ‘바로 그 장소’가 있었다. 2000년 전 여기가 마구간이었을 때, 예수가 태어난 지점 말이다. 그곳에는 사람들의 긴 줄이 있었다. 맨 앞의 사람은 바닥에 엎드려 뭔가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저게 뭐지?’ 궁금해 하며 나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한참 후에 순번이 왔다. 바닥에는 별 모양의 장식이 있었다. 그 별 한가운데 손바닥 만한 작고 동그란 유리창이 있었다. 그 창을 통해 들여다보는 곳이 예수가 태어난 ‘바로 거기’라고 했다. 선 채로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눈을 유리창에 바짝 갖다 댔다. 안을 들여다 봤다. 새까맸다. 새까만 어둠,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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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객들은 바닥에 엎드려 예수가 태어난 ‘그곳’을 들여다 봤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례객들은 저마다 눈을 감고 묵상에 잠겼다.


줄 선 사람들이 많아 오래 볼 수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탈하고 당혹스러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뒤로 돌아서는데 문득 성서 구절이 뇌리를 때렸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요한복음 1장3절)


그랬다. 저 어둠, 작은 구멍 속의 저 어둠. 그건 태초의 어둠과 통했다. 태초의 어둠이 뭔가. 내가 나고, 당신이 나고, 세상이 나고, 이 우주가 나온 자궁이다. 그런 천지창조의 근원이다. 거기야말로 예수가 온 곳이다.

불교에서는 그걸 ‘공(空)’이라 부른다.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공이 아니다. 모든 색(色ㆍ형상)이 태어나서, 작용하고, 돌아가는 만물의 본향(本鄕)이다.

숫자로 표현하면 ‘0’이다. 태초의 어둠도 ‘0’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0’이 아니다. 없는 가운데 꽉 차 있기에 ‘진공묘유(眞空妙有)’다.

그래서 기독교 영성가 다석(多夕) 유영모는 신을 부를 때도 ‘없이 계신 하느님’이라 불렀다. 요한복음은 말한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아담과 이브가 그분을 통해 생겨났듯이, 우리도 그분을 통해 생겨났다. 결국 우리의 몫이다. 나의 가족과 친구 속에서, 저 나무와 새 울음 속에서, 저 바람과 달 속에서 ‘없이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일 말이다.

예수탄생 교회를 나왔다. 팔레스타인 청년이 다가와 “헤이, 브라더!”하며 기념품을 사라고 했다. 나는 ‘브라더!’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 그들은 처음 보는 낯선 남자에게도 “브라더!”라고 불렀다.

성서에는 ‘예수의 형제’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온 예수를 향해 마을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마가복음서에 적혀 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마가복음 6장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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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예수가 아버지 요셉으로부터 목수일을 배우고 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옆에서 예수를 지켜보고 있다.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나사렛의 수태고지 교회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예수는 맏이였다. 그에게 동생과 누이가 있었을까. 민감한 논쟁거리다. 현대 신학자들은 상당수 ‘예수에게 형제가 있었다’고 본다.

반론도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형제뿐 아니라 사촌들도 다 ‘브라더(Brother)’라고 불렀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형제’는 친형제가 아니라 사촌이다”고 주장하는 전통적 시각도 강하다.

그럼 이게 왜 ‘논쟁의 뇌관’일까. 이유가 있다. 예수가 ‘사람의 아들’인가, 아니면 ‘신의 아들’인가. 그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결혼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의 동생들을 낳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었을 테니.

그런데 신의 아들로 보면 적잖이 불편해진다. 성령으로 잉태한 적이 있는 마리아의 몸에서 요셉의 자식들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수를 신학적 용어로 ‘하느님의 독생자(獨生子)’라 표현한다. ‘외아들’이란 뜻이다. ‘하느님의 외아들’에게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있다는 설정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리아가 평생 순결을 지킨 처녀라는 ‘평생 동정녀론’이 가톨릭에는 강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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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는 예수에게 네 명의 형제와 적어도 두 명의 누이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지 않았다. 그저 ‘목수의 아들’로 봤다.

고향의 유대교 회당에서 예수가 풀어놓은 지혜에 놀라면서도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에게 예수는 그저 이웃사람 마리아의 아들일 뿐이었다. 남동생들과 누이들의 형이자 오빠일 뿐이었다.

예수가 직접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가복음 6장4절)고 토로할 정도였다. 유대교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받아들인다.

정작 예수는 어땠을까. 자신을 스스로 무엇이라 불렀을까. 예수는 평소 자신을 지칭할 때 ‘메시아(구원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인자(人子)”라고 불렀다. 글자 그대로 ‘사람의 아들(Son of man)’이란 뜻이다.

그런데 ‘인자(人子)’의 뜻은 깊다. 그 울림도 크다. ‘인자’가 히브리어로는 ‘Aben adam(아담의 아들)’이다. 예수는 자신을 지칭하며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정확하게 ‘아담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예수는 왜 자신을 ‘아담의 아들’이라고 불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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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바티칸성당의 천장에 그린 아담의 모습.


사람들은 생각한다. 신의 외모가 인간의 외모와 똑같을 거라고. 우리처럼 눈이 있고, 코가 있고, 팔다리가 있을 거라고. 구약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신은 자신의 형상을 본 따 인간을 빚었다고. 미켈란젤로의 성화 ‘천지창조’를 봐도 하느님은 흰 머리칼을 휘날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인간의 형상은 신의 형상에서 따왔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한 차동엽 신부는 “‘형상’이란 단어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성서에 기록된 ‘형상’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셀렘(Selem)’이다.

‘셀렘’은 본질 혹은 속성이 닮았을 때 쓰는 말이다. 겉모양만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긴 ‘형상’을 말할 때는 히브리어로 ‘데무트(Demut)’를 쓴다.

결국 성서의 메시지는 ‘하느님의 외모가 아니라 속성을 본 따 인간을 지었다’는 뜻이다. 차 신부는 “하느님을 의인화하고 인격화하며 ‘하느님은 이런 존재’라고 못박는 건 곤란하다. 그건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을 인간의 3차원적이고 편협한 생각 속에 가두는 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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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탄생 교회는 1500년 전에 세워졌다. 교회 내부의 독특하고 고풍스런 양식이 눈길을 끌었다.


예수탄생 교회의 제단 앞으로 갔다. 눈을 감았다. 예수가 온 곳은 어디일까, 또 예수가 간 곳은 어디일까. 구약 창세기의 구절을 다시 떠올렸다.
 

하느님은 당신의 속성(Selem)대로 사람을 지으셨다(구약 창세기 1장27절).


그러니 아담 안에 신의 속성이 흐른다. 예수가 자신을 가리켜 “아담의 아들”이라고 한 까닭도 그랬다. 누군가 예수에게 물었다. 하느님을 보여달라고. 그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나를 보는 것이 곧 아버지(하느님)를 보는 것이다.” 예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달리 말할 수가 없었을 터이다. 자신 안에 가득 찬 ‘하느님의 속성’이 바로 예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게 예수의 진정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베들레헴을 떠났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물음이 올라왔다. 예수는 인간인가, 아니면 신인가. 그랬다. 아담의 아들 예수, 그는 신을 품은 인간이었다.

200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예수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아들인가. 당신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3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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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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