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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진정으로 비가역적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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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비가역’이란 단어를 들은 건 정말 오랜만이다. 고교 시절 화학 수업에서 ‘가역’ 반응과 ‘비가역’ 반응을 배웠을 때, 이 단어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꼭 30년 만에 기억 저 깊은 곳에서 이 단어를 끄집어냈다. ‘비가역’의 사전적 의미는 ‘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본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이다. 요컨대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고칠 수 없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 간 합의에 ‘최종적이며 비가역적인 해결’이란 단서가 붙었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많은 국민이 이 단서에 분노했다. 세상에 되돌릴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일이라니.

 지난 7일 국제축구평의회(IFAB)가 축구 경기에 비디오 판독 도입을 검토키로 했다. 비디오 판독은 오심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미식축구와 테니스·배구·농구·야구에 이어 축구까지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는 것이다. IFAB는 축구 규칙을 관장하는 국제스포츠기구다. 축구 종주국 영국의 4개 지역인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축구협회와 국제축구연맹(FIFA) 대표로 구성돼 있다. 대단히 보수적이다. 규정 변경에 대한 요구가 빗발쳐도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다. 공격수와 최종수비수가 동일선상에 있을 경우 오프사이드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 하나를 바꾸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그런 IFAB가 비디오 판독 도입을 검토키로 했다니.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은 스포츠라는 종교의 율법이었다. 심판 판정에 대해 오심 문제를 제기하는 자는 율법을 어긴 배교도로 취급됐다. 오심으로 인해 억울하게 순교할지라도 이를 탓하지 않는 자만이 스포츠맨십을 지닌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예전 같으면 있었는지도 몰랐을 오심이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스포츠 경기가 고해상도(HD) TV 화면과 울트라HD TV 화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면서부터다. 경기장에 설치된 수십 대의 중계카메라는 선수들의 땀방울과 유니폼의 실밥까지 잡아낸다. 시청자들이 생생하게 지켜본 오심을 더 이상 덮고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심은 더 이상 경기의 일부가 아니라 바로잡아야 할 잘못이다. 그런 세상이다.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은 “협상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협상을 요구한다. 한·일 외교 당국의 주장처럼 최종적이며 비가역적인 해결이었다면 열릴 이유가 없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수요집회가 지난 6일 24주년을 맞았다. 이날 집회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모레 13일에는 1213번째 집회가 열릴 것이다. 비가역적이어서도 최종적이어서도 안 될 분위기다.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뭐가 문제였나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상황을 진정으로 비가역적이며 최종적으로 만들 수 있는 출발선이다.

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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