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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고 이상무 화백과 전인권의 '마지막 인연'

 

지난 3일, 황망한 소식을 갑자기 받았습니다.
'독고탁의 아버지', 이상무화백의 별세 소식이었습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습니다.
솔직히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실, 제 아내의 외삼촌입니다.
지난해 말, 이화백이 제 아내에게 카톡으로 ‘김천 말 사전’이란 것을 보내왔습니다.

‘지끼사/ 김천의 유명 사찰인 직지사를 일컬음(지끼사 놀러 가여)’
이런 식의 김천 사투리를 이백여 개 이상 보내왔습니다.
김천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김천 말 사전’ 덕분에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장성한 조카들과 이런 방식으로 소통할 정도로 살가웠습니다.

해만 바뀌었을 뿐, 카톡으로 소통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터니 믿기지 않는 부고였습니다.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은 후, 택시를 타고 영안실로 향했습니다.

택시 안에서 뉴스 검색을 했습니다.
‘이상무화백 별세’란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페이스 북을 열었습니다.
놀랍게도 ‘독고탁의 이상무님께서 오늘 심장마비로 별세하셨습니다.’라는 가수 전인권씨의 글이 화면 맨 위에 떠있었습니다.

바로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기에 대뜸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습니다.

“이상무님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어. 원래 내일 뵙기로 했는데 너무 갑작스런 소식에 눈물만 나.”

“페이스 북에 같이 작업하던 게 있다고 적어 놓았던데요.”

“가서 이야기해줄게. 나도 조금 있다가 멤버들과 영안실로 갈 거야.”

영안실에 도착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이화백의 딸에게 물었습니다.

“원래 새벽마다 마포 작업실로 나가시는데, 오늘 따라 일찍 나가셨더라고요. 전화를 드렸더니 답답해서 일찍 나왔다고 하시더라고요. 무리하시지 말고 일찍 오시라고 했어요. 알았다고 말씀하셨고요. 그런데 아침마다 작업실 밑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는데 식사하러 안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올라가 보시라고 했는데…….그만…….”

더 이상 묻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전인권씨가 멤버들보다 먼저 영안실로 왔습니다.
원래 어눌한 말투의 그가 평상시보다 더 어눌한 말투로 저간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내일 만나기로 했었어. 이번 공연 때 노래할 ‘눈눈눈눈’이란 곡이 있는데, 그 곡의 공연 이벤트 영상을 위한 그림을 지난 연말에 그려 주셨어. 그래서 새해 연휴에 찾아뵙겠다고 했더니 바쁜데 구태여 오지 말고 연휴 끝나고 오라고 하시더라고. 그런데 오늘 돌아 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소설 쓰는 박민규랑 통화하면서 한참 울었어.”

“아! 그랬군요. 원래 두 분이 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셨나 보죠?”

“그렇지는 않았어. 처음 만난 게 몇 달 전이야. ‘눈눈눈눈’ 곡에 그림으로 공연 영상을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만화가 협회에 연락해서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전화를 드렸지.
‘전인권입니다’라고 했더니 ‘알지요’ 하시더라고. ‘응답하라’에서 들었다고 하셨어.
내가 워낙 그분의 팬이었어. 그분의 만화는 항상 ‘정의와 우정’을 이야기 하셨잖아.
그리고 한 일 년 전에 미국에 있는 친구가 단편만화를 카톡으로 내게 보내줬었어.
그게 바로 이화백님의 ‘추억여행’이라는 단편만화였어.
치매 걸린 어머니를 위해 아들이 머리 깎고 교복을 입는 단편만화였는데 그림 하나하나가 감동이었어.
그래서 전화로 부탁을 드린 거야.”

원체 말투가 느린 전인권씨가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흔쾌히 허락하셨어. 광화문 아파트에 찾아가면, 찾기 어려울까봐 거리까지 나와서 기다리시더라고. 떠날 때는 추운데도 기어코 바깥에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시고…….”

“ 그림은 어떤 내용입니까?” ‘눈눈눈눈’이란 곡을 몰랐기에 어떤 그림인지 궁금했습니다.

“ 노래 가사 내용이 이래.
‘눈 내리는 새벽길을 너는 내게 찾아와 다시 나를 불러 일으켜 나가자 말하네.
너와 나는 새 생명을 상상하고 별은 하나 춥게 있어도 사랑을 말하네.’
이런 가사에 맞추어 그림을 그려 주셨어.
우리 멤버들이 다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어.
그 자리에서 부탁을 또 드렸어.
둘이 키스를 하고 나서 여자가 한 번 더 키스해달라고 하는 장면,
한 컷만 더 그려달라고 부탁했어.
그랬더니 ‘에이 그건 좀 장난스러운 데….’ 하시더라고.
그런데 그 다음날 그려서 보내 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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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전인권밴드의 멤버들이 다 왔습니다.
전인권씨에게 그 그림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가 그 자리에서 메일을 제게 보내줬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화백이 전인권씨에게 그림을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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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메일에 그림과 함께 이화백이 보낸 글이 있었습니다.
‘눈 이란 곡명이 아무래도 계절적으로 빨라야 좋을듯해서
서둘러 보내고 나니 마음이 무척 찝찝했습니다.
노랫말 중에 ‘별 하나 춥게 서있어...’란 구절이
계속 마음에 쓰였었기 때문입니다.
전인권씨는 상관없다 하셨지만
제가 느끼기엔 가장 시적인 표현이었다고 생각되어서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생각 끝에 눈이 내린 새벽,
눈이 멈추었다 별이 나타나고
다시 눈이 내리는 상황을 묘사해봤습니다.
이래놓으니 좀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입니다.
제 뜻에 동의하신다면 다시 보내는 것으로 바꿔 써도 좋을듯합니다.’

내용을 보니 이화백이 혼자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림을 추가해서 다시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글과 그림을 보는데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이화백을 어느 정도 알기에 그 마음이 보였습니다.
그 그림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유작이 되어 버렸습니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데, 전인권씨가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원래는 공연에 온 손님들에게만 공개하려고한 영상이야.
이상무님의 마음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이젠 공개해야겠어.
뮤직비디오처럼 영상을 만들어서 공개할까해.”

전인권씨가 돌아간 후, 이화백의 영정사진과 마주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명색이 사진쟁이로 살면서 처외삼촌의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었습니다.
언제나 옆에 계실 터이니 아무 때라도 찍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창졸간에 일을 당하고 보니 이미 늦어 버렸습니다.
핸드폰을 꺼냈습니다.
그 영정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었습니다.

다시 이화백의 딸과 마주했습니다.
전인권씨의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줬습니다.
딸은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전인권씨에게 바로 별세 소식을 알렸던 겁니다.

딸이 오히려 이화백의 이야기를 제게 들려줬습니다.
 
하루에 백번쯤은 ‘눈눈눈눈’ 노래를 따라 부르셨어요. 그런데도 아빠가 따라 부르기엔 어려운지 제게 불러보라고 하시기까지 했어요. 불러드렸더니 너는 어쩜 그렇게 잘하냐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따라 부르기 쉽지 않았나 봐요. 그래도 시시때때로 부르시며 너무 즐겁게 그림 작업을 하셨어요. 그리고 한번은 전인권씨의 ‘다시 이제부터’란 곡의 가사를 구해달라고도 하셨어요.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받아 적기 까지 하셨는데 정확히 알고 싶으셨나 봐요. 나중에 보니 작업책상 위에 그림과 함께 그 곡의 가사도 적어놓으셨더라고요. "

저 또한 ‘다시 이제부터’란 곡을 워낙 좋아 했습니다.
그러니 그 곡의 ‘다시 시작될 내일이 있으니’란 부분이 얼른 스쳤습니다.
‘다시 시작될 내일’이 아렸습니다.
제게 ‘다시 시작될 내일’과 이화백의 ‘다시 시작될 내일’은 그날부터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3일 내내 영안실을 찾았던 전인권씨가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세상과 공유해야할 이야기라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영상을 공유해도 되는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연히 그리해도 된다고 답했습니다.

오래 만난 사이도 아니었던 두 사람,
짧다면 짧은 사귐에도 ‘사람다움’을 서로 보여준 것만 같습니다.
그 덕에 고 이상무화백의 마지막 유작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모두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상무화백님, 부디 영면하십시오.

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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