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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 아닌 교감 앞세운 '대호', 관객은 낯설었다

할리우드 못지 않은 CG(컴퓨터그래픽) 기술력으로 되살려낸 조선 호랑이, 국내 최다 관객(1761만명)을 끌어들인 '명량'(2014, 김한민 감독)의 주역 최민식, 그리고 메가폰을 잡은 충무로의 대표적인 이야기꾼 박훈정 감독. '대호'는 이같은 진용만 봐도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보였다. 평단의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개봉 3주차에 접어든 지금, 성적표는 너무나 초라하다. 9일 현재 누적 관객 수는 174만명. 손익분기점(600만 관객)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치다. 170억원을 들인 대작영화 '대호'는 왜 더 많은 관객과 만나지 못한 것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그 원인을 되짚어봤다.

'대호'가 이렇게까지 심하게 무너질 영화가 아닌데…. 참 안타깝네요.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대호의 흥행실패 요인을 묻는 질문에 안타까운 탄식부터 토해냈다.
그만큼 '대호'의 영화적 성취를 높게 평가했다는 얘기다.

할리우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2012, 이안 감독)에 버금갈 정도로 정교한 호랑이 CG, 상투적이지 않은 결말과 심오한 주제의식 등이 그렇다. 언론 시사 직후 평단의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많은 영화 마케터들과 배급 관계자들은 "흥행하긴 힘들 것 같다"고 내다봤고, 그들의 예측은 현실이 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평단의 평가와 대중의 취향 간의 넓은 간극 탓으로 치부하기엔, '대호'의 흥행실패는 너무나 상처가 깊다.

기대와 다른 전개, 공감 어려워
전문가들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란 소재부터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역부족이었다고 지적한다. 겨울 대목을 겨냥한 대작영화의 소재치고는 관객과의 공감의 접점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보편적인 정서인 인간애와 의리를 앞세운 '히말라야'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최광희 영화평론가는 "대작 상업영화는 지금 그 영화를 봐야하는 뚜렷한 이유가 있거나 메시지가 보편적이어야 하는데, '대호'는 그 점이 부족했다"며 "'히말라야'처럼 사람들이 느끼고 싶어하는 감동 포인트로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도 같은 지적을 했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란 명제가 '국제시장'(2014, 윤제균 감독)에 담긴 아버지의 희생이나 정(情)만큼 보편적이지 않다.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정서의 폭이 매우 좁았다. 이런 소재의 영화를 170억원을 들여 만든 것 자체가 큰 위험 부담을 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가 대중의 기대와 어긋났다는 점도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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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는 포수 천만덕 역을 맡은 최민식과 마지막 조선호랑이 대호의 얼굴을 반쪽씩 보여준 포스터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했다. 1700만 흥행 배우 최민식의 비장미 어린 얼굴과, CG 기술력의 개가인 호랑이의 위용을 통해 대중의 관심과 기대를 끌어올리려는 포석이었다.

포스터만 보면, 조선 최고의 포수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간에 필사의 대결이 펼쳐질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영화는 대중의 예상과는 달랐다. 두 주인공이 대결을 하기는커녕, 동화처럼 만덕과 호랑이가 비슷한 처지에서 애틋하게 교감하는 내용에 적잖은 관객들이 당혹해했다.

10년 넘게 영화마케팅업계에 몸담아온 K씨는 "영화 내용과 다른 점을 부각시키며 마케팅하면 관객의 실망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봉 첫주부터 '히말라야'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J J 에이브럼스 감독)에 밀린 '대호'가 흥행세로 돌아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계기는 입소문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포장과 내용이 다르다는 실망감을 주면서 긍정적인 입소문 확산에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새로운 도전과 시도, 위축되지 말아야
보는 이들에 따라 다층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도 대작영화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었다는 지적이다.

대형 투자배급사 투자팀의 Y부장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반일(反日)인지, 부성애인지, 아니면 인간과 자연의 조화인지 종잡기 어렵다는 말들이 많다"며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는 상업영화인만큼 더 쉽고 뚜렷한 메시지로 관객과 소통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영화 홍보마케팅사의 K대표 또한 " '대호'는 다층적인 주제를 다룬 문학작품의 느낌이 강했다"며 "어렵고 지루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스토리 구성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왔다. 관객이 감정이입할 대상과, 이에 대적하는 안타고니스트 또한 존재감이 미약하다는 분석도 있다. 박훈정 감독은 만덕과 호랑이는 거울 같은 존재이며, 둘은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는 걸 얘기하려 했지만, 관객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들에 맞서는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포수 구경(정만식)·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류(정석원) 등도 관객을 몰입시킬만큼 충분히 적대적인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대형 투자배급사의 S팀장은 "관객이 감정이입할 대상이 확실하지 않다 보니,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결국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런 지적들을 종합해보면, '대호'는 출발점부터 상업 대작영화로서의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힘을 빼고 제작비 50억원 정도로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최광희 영화평론가)는 지적처럼, 소재와 규모의 어긋남이 흥행실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170억원짜리 예술영화'라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는 "만만치 않은 경쟁상황을 고려해 빠른 호흡으로 편집하거나, 좀 더 대중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등의 대처를 하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영화 홍보마케팅사 퍼스트룩의 이윤정 대표는 "소재 확장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대호'는 분명 의미 있는 영화다. '대호'의 흥행실패로 이런 용기있는 시도가 위축될까 우려된다"며 아쉬워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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