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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 수호신 ‘마조 여신’의 메카 … 문혁 때도 건재한 절대 존엄

뱃사람들의 수호신인 메이저우 마조 석상.



푸저우에서 취안저우로 가는 길, 외딴섬 메이저우다오(湄洲島)에 들렀다. 관광페리가 연신 사람을 실어 나른다. 메이저우다오는 선원들의 수호신인 마조(?祖) 여신의 메카와 같은 곳이다. 특히 배를 이용해 교역을 해온 화교들이 열렬히 숭배하는 항해의 수호신이다. 섬 전체가 성소(聖所)다. 문화혁명 시절 유교적 전통까지 타파 대상에 올려놓았던 ‘홍위병 열풍’에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마조야말로 과거에도 최고 존엄이었고 오늘도 격이 떨어지지 않는 절대 존엄이 아닐까.



취안저우 인근 섬 메이저우다오

마조는 송(宋) 태조 원년(960년) 3월 23일 푸젠성 메이저우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유력하다. 성은 임(林)이고 이름은 묵(默)이다. 임묵은 똑똑했다. 인지 능력이 남달라 불가사의한 힘으로 병을 고쳐주는 등 남을 헌신적으로 돕는 천부적인 품성을 지녔다. 무엇보다 어민들이 출항할 때 날씨를 예측하고 조난당한 어선을 구하곤 했다. 그러나 28세 되던 해 바다에서 사람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후세 사람들이 선행을 베푼 여인을 기려 섬에 사당을 지어 바다의 신에게 바쳤다. 항구마다 마조를 기리는 사당이 지어졌고, 여러 변신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천후(天后)라는 고귀한 칭호까지 받게 됐다. 곳곳에 세워진 천후궁은 모두 마조의 신전이다.



마조 신앙은 화교가 진출한 동남아는 물론이고 대만, 일본 나가사키, 필리핀,그리고 한반도 인천에까지 전파됐다. 신전 앞에선 말레이시아에서 왔다는 화교 관광객이 가짜 돈다발을 흔들어대면서 연신 복을 구하고 있다.



“마조가 없다면 우리 조상들이 배 타고 말레이까지 올 수도 없었지요.”



해안 선착장에서부터 마조 여신상이 서 있는 정상까지 향내가 바람을 타고 올라간다. 문득 마조 신앙이 왜 송나라 때 만들어졌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바다 교역이 번성했던 송대, 뱃사람과 상인들은 해상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으로부터 구원해줄 신의 출현을 간절히 소망했을 것이다. 이런 국내외적, 사회경제적 필요가 임묵이란 여인의 빙의(憑依)체험이 만들어낸 민중 신앙과 결합돼 마조 여신의 극적 출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국가적으로는 이 열광적인 ‘바다의 스타’를 천후궁에 봉안함으로써 국가권력과 민중의 믿음을 결합시키는 스토리텔링과 탁월한 전략을 구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뱃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마조 신앙이 퍼져나갔고 마조는 바닷길을 이어줬다.



남중국해 대만해협의 요로에 자리 잡은 펑후(澎湖)열도는 마조의 또 다른 본향이다. 마카오 자체가 마조란 뜻의 아마(阿?)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마카오의 상징으로 불리는 마조각은 마조를 모신 사당이다. 해마다 마조가 태어난 음력 3월 23일엔 마조 제전이 열리는데 여신에게 바치는 뜨거운 열풍이 대륙과 대만을 휩쓴다. 메이저우 마조묘는 전 세계 5000여 개의 으뜸 신전답게 전 세계에서 순례객이 모여든다. 마조묘 앞에서 이뤄지는 제례의식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마조 열풍은 이제 뱃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만 정치인치고 마조 제사에 게을리하고 당선된 사례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마조는 신앙을 뛰어넘어 ‘마 조정치’ ‘마조 경제’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힌두교·이슬람교·경교가 무역선을 타고 전파됐다면 마조 신앙은 중국 내의 상인들 배를 타고 북상했다.



마조 외에 뱃사람들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주는 생명의 손길을 꼽으라면 단연 관음 신앙이다. 취재팀의 탐사 루트 곳곳엔 마조 못지않게 관음상이 모셔져 있었다.



보타낙가산(普陀洛伽山)은 관음보살이 거주하는 산으로 ‘꽃과 나무가 가득한 작은 산’이란 뜻의 산스크리트어 포탈라카(potalaka)를 음역했다. 『화엄경』에 선재동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보타낙가산에 도착하는 구절이 나온다. 바다에 접한 아름다운 곳이라고 표시돼 있다. 현장법사도 “인도에 다녀와서 스리랑카로 가는 바닷길 가까이에 보타낙가산이 있다”고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7일 취재팀은 샤먼대를 찾았다. 대학 정문 앞은 관광객으로 들끓었다. 오로봉 자락의 남보타사(南普陀寺)를 찾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남보타사는 오대 시대에 창건됐다. 그 유명한 철불천수관음이 모셔진 대비전은 참배객이 너무 많아 밀려다닐 판이다. 남보타사에는 수만 권의 불경과 불상·서화가 보존된 장경각도 있다. 오로봉에 오르니 불자(佛字) 석각이 계곡마다 숨어 있다. 경주 남산처럼 오로봉 자체가 신성한 불국토의 산이다. 국제 항로가 오가는 바닷가에 강남 최대의 관음 사찰이 있어 열렬하게 신도들과 관광객을 이끌고 있다.



남보타사는 우리의 낙산사와 관련이 깊다. 신라 의상대사가 보타낙가산 불긍거선원에서 관음을 전수받아 양양의 낙산사를 세웠다. 샤먼에서 저우산열도를 거쳐 한반도의 양양에 이르기까지 바다의 비단길이 ‘관음의 바닷길’로 이어진 것이다. 해양 실크로드는 교역로이면서 동시에 색다른 문화와 종교를 전파, 이식시킨 융합의 길이었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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