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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는 안 된다 카이” … “이번엔 전에 하고 다릅니데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본거지인 대구 지역 총선 출마자들에게 최대의 마케팅 수단은 박 대통령과의 친분이다. 자칭·타칭 ‘진박’ 후보임을 내세우는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이 박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부각시킨 현수막을 앞다퉈 내걸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대구·경북(TK)이 20대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진실한 사람들’, 이른바 진박(眞朴) 후보와 현역 의원들이 새누리당 공천을 두고 건곤일척의 경선 승부를 벌이게 됐기 때문이다. ‘공천=당선’으로 통하는 TK에서 피 말리는 후보 쟁탈전이 벌어졌던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총선 후 당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박 대통령의 승부수로 인해 TK의 당내 경선은 본선을 능가하는 전국적 관심사가 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아성인 이곳에서 진박 후보들에 대한 민심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인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친박 핵심 인사들이 진박 후보 지역구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말도 나도는 등 혼돈이 가중되고 있다. 중앙SUNDAY가 대구 민심을 들어봤다.



[대구 현지르포] 진박 vs 비박 ‘TK 목장의 결투’ 민심은



6일 저녁 대구시 동구 방촌시장 인근의 한 주점에선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니 내기할래. 박통(박 대통령)이 찍었다 카마 여~서는 안 된다. 유승민이는 결국은 안 되게 돼 있는 기라.”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열을 올렸다. 그보다 열살쯤 어려 보이는 이가 맞받았다. “아이고~ 햄(형님)요, 이번엔 전에 하고 다릅니데이. 사람들이 그레 쉽게 (박 대통령) 말을 안 들을 낍니다. 내기하입시다.” 요즘 대구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광경이다. 주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의 국회의원 선거사무실이 있다. 사무실 한쪽 벽엔 그가 박 대통령과 찍은 사진과 함께 “동구, 대통령 지키겠습니다! 대한민국 박근혜, 진실한 이재만”이란 문구의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최근 홍문종·조원진 의원 등 친박 인사들이 이곳을 찾아 ‘이재만이야말로 진실한 사람’이란 ‘진박 인증’을 하면서 대구에서의 진박 대 비박 대결은 전국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 전 구청장의 경쟁자는 박 대통령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승민 의원이다.



지역 민심은 양 갈래였다. 6일 동촌시장에 장을 보러 온 박술희(59·여)씨는 “지가 누구 덕에 여까지 왔는데 우예 대통령을 배신하노. 대통령이 잘핸 기 얼마나 많은데 깎아내릴라 카고 …”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반면 동촌로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김현규(47)씨는 “박 대통령과 유승민 다 좋아하지만 선거 땐 유승민 찍을 끼다”며 “고마 박통이 유승민이 불러다가 ‘니가 내한테 이럴 수 있나’ 머라카고(야단치고) 치아뿌지 그레 독하게 할 이유가 있나 모르겠다”고 했다. 상당수 시민이 친박과 비박을 아예 다른 정당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비박 의원 지역구엔 자·타칭 진박 후보 난립 박 대통령의 아성인 대구에서 그를 비판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진박’을 자처하며 출사표를 던진 박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부에선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 전 구청장은 “지역 언론과 중앙 매체들이 진박 출마를 이슈화하면서 비판해 (유 의원에 대한) 동정 여론이 많이 생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 측 관계자도 “지난해 8~10월만 해도 유 의원 대하는 지역 어르신들 태도가 정말 싸늘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선 ‘고생한다’며 위로해주는 분이 많이 생겨났다”고 했다.



이런 기류는 여론조사 수치로 반영되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역 매체들과 함께 지난해 12월 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48.2% 대 38.4%로 유 의원이 앞섰다. 다만 새누리당 지지자 대상으로만 한정하면 이 전 구청장이 49.4%로 유 의원(44.9%)에 약간 앞섰다. 이 전 구청장 측은 “유 의원 지지는 야권 지지자들이 역선택을 한 것”이라며 “당원 투표가 반영되는 경선은 확실히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 측은 “경선이 지역 민심을 잘 반영한다면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다”고 자신한다.



지난해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와 ‘진실한 사람’ 발언이 새누리당 내에서 확산된 후 진박을 자처하는 대통령 전·현직 측근들의 TK행이 이어졌다. 현재 대구에선 유 의원과 가까운 류성걸(동구갑)·김희국(중-남구)·김상훈(서구)·권은희(북구갑)·이종진(달성군) 등 현역 의원 지역구에 진박 후보들이 진을 친 형국이다. 서구엔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일찌감치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고 달성군엔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중-남구엔 ‘진박 후보’를 자처한 이인선 전 경북 부지사와 조명희 경북대 교수를 비롯해 예비후보가 9명이나 난립하고 있다. 동구갑엔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출마설이 파다하다.



하지만 여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최근 지역 여론조사들에선 중-남구와 북구갑, 달성군, 달서구갑(홍지만 의원 지역구) 정도를 제외하면 도전자들이 현역 의원을 누를 만한 기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북구갑에 출사표를 던졌던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결국 고향인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군으로 선회했고 역시 북구갑에 나서려던 김종필 전 법무비서관은 출마를 포기했다. 이곳에서 권은희 의원이 다른 도전자들에 고전하는 형국임을 감안하면 청와대 출신이라는 ‘라벨’이 그다지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 보니 친박 진영 안에서 혼선도 표면화되고 있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의 달성군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보도들이 나오며 곽상도 전 수석이 중-남구로 이동할 것이란 설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곽 전 수석의 캠프 사무실은 황당하다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곽 전 수석은 8일 기자에게 “우리는 아무 언질도 전해 들은 바가 없다. 지지율이 낮아서 바꾸려고 한다는 보도를 보고 자체 여론조사까지 실시했는데 내가 이종진 의원에게 10%포인트 이상 앞서는 걸로 나오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최종적으로 지역구 조정이 필요하다는 결정이 나면 재고해 보겠지만 현재로선 지역구를 옮길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TK 지역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TK 친박의 좌장인 최경환 부총리가 측근인 추 실장의 배치에 힘을 싣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친박 정치인들의 세 확장 경쟁이 지역구 재조정의 변수가 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구매일신문이 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양자 대결 시 이종진(37.1)-곽상도(44.2), 이종진(45.9)-추경호(31.9)로 곽 전 수석이 우세한 결과가 나왔다. 달성군 화원삼거리의 한 식당에서 식사 중이던 이종학(59)씨는 “마카(모두) 다 지가 박근혜 사람이라 카는데 우리가 박통 마음을 우예 알겠노. 정신 사나바서 내는 마 신경 꺼뿔란다”고 했다.



대구 민심이 녹록하지 않은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진박 후보들의 인지도가 너무 낮다. 서구 평리동에서 피자 체인점을 운영하는 유재환(48)씨는 “진박이라 카는 사람들 중에 들어본 이름이 하나도 없다. 뭐 좀 거물급이 내려와야 찍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낀데…”라고 말했다. 대의명분과 자존심을 중시하는 이곳 정서도 한몫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이정수(가명·67·달서구 이곡동)씨는 “아무리 밉어도 (박 대통령이) 유승민 부친상 때 조화도 안 보내고 친박이라 카는 사람들이 빈소에서 물갈이 얘기하는 건 도리가 아이지”라고 했다. 이 지역 출신인 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청와대에서 내려보내면 우리는 군말 없이 찍으라는 메시지 같아 기분이 언짢다는 얘기들을 주변에서 듣는다”고 지적했다.



주민 자존심·낮은 인지도가 진박 신인엔 벽 ‘종편 효과’를 꼽는 이들도 있었다. 유승민 캠프의 한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낮에 내내 종편 채널을 틀어놔 정치판 돌아가는 걸 훤하게 꿰뚫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이번엔 누구를 찍어야 한다’는 외부의 메시지에 휘둘리기보다 주체적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박근혜 프리미엄이 진박 후보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친박 도전자들의 공세를 받고 있는 한 대구지역 의원 측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아직까진 명확한 사인을 준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방관적인 것 같다”며 “향후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멘트를 날리면 대구에서 그 파괴력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달서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양수(64)씨는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믄 찍어 주이께네 우리를 새피하게(하찮게) 본다. 전처럼 한번 엎어뿌자 카는 사람들이 요새 마이 생다”고 말했다.



과거 TK에서 집권당에 역풍을 불러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인 1985년 12대 총선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 중진 한병채 의원을 떨어뜨리고 재야운동가 유성환 후보를 당선시켜 신민당 돌풍을 주도한 곳이 대구였다. 96년 15대 총선 땐 김영삼 전 대통령의 ‘TK 홀대론’을 앞세운 김종필 전 총리의 자민련이 8명을 당선시키는 이변이 벌어졌다. 당시 무소속 3명, 집권당인 신한국당은 고작 2명의 당선자를 냈다.



 



 



대구=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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