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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협상 타결한 이란, 국제무대로 복귀 ‘이란 패권 저지’ 사우디 초강수는 계속

8일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금요기도회 직후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한 여성이 사우디 정부에 의해 처형된 시아파 성직자 셰이크 님르 바크르알님르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뉴시스]



새해 벽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시아파 성직자 처형에 항의하는 이란 시위대는 수도 테헤란에 있는 사우디 공관을 불태웠다. 사우디는 즉각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다음날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정치적 실수를 한 사우디는 순교자의 피로 곧 꼼짝 못하게 될 것”이라고 무시무시한 경고를 내놓았다.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이 ‘국가 차원’에서 맞붙기 시작했다. 항공편과 무역이 중단되는 등 양국 교류는 올스톱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다행히 아직 물리적 충돌은 없다.



[전문가 분석] 사우디·이란 국교 단절 이후

그러나 수단·바레인·지부티·소말리아·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카타르 등이 이미 사우디를 지지하며 외교적 조치를 취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레바논 등에서는 시아파가 연일 반(反)사우디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14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을 향해 유럽이 두 진영으로 나누어진 것과 흡사한 양상이다.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와 이란이 서서히 중동을 종파대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슬람 종교를 창시하고 국가를 건설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632년 사망하면서 시아파가 등장했다.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Ali), 즉 무함마드의 혈통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무리가 시아파다. 뜻대로 되지 않자 불만이 쌓였다. 어렵게 알리가 네 번째 후계자가 됐지만 암살당했다. 큰아들 하산도 독살당했다. 군사를 일으켜 저항하던 후세인은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무참히 처형됐다. 머리와 몸통이 분리돼 다른 곳에 묻혔다. 시아파는 이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매년 개최되는 최대 시아파 종교행사 아슈라(Ashura)에서 많은 젊은이가 채찍과 칼로 자기 몸을 때려 피를 흘리며 걷는다.



그러나 지난 1400년 동안 큰 충돌은 없었다. 시아파가 그럴 만한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리와 후세인을 추종하던 시아파는 핍박의 대상일 뿐이었다. 수니파 주도 국가권력에 도전할 힘이 없었다. 여러 소규모 시아파 왕조가 있었지만 대부분 변방에서 일어나 단명했다. 1501년 시아파를 국교로 선언한 국가가 등장했다. 이란의 사파비 왕조다. 이란이 시아파 종주국이 된 것도 이 왕조 덕이다. 그러나 사파비 왕조는 세속국가였다. 시아파 성직자들의 정치적 역할이나 권력은 미미했다.



전환점이 된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영국의 점령에서 벗어난 이란은 계속 시아파 국가였다. 그러나 친서방 세속적 지도자 팔레비 국왕이 다스렸다. 1971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시리아의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도 시아파의 일파인 알라위파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세속주의 지도자였다. 따라서 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은 역사상 최초로 시아파 성직자가 권력을 차지한 사건이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슬람공화국을 출범시킨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슬람혁명 수출’을 선언했다.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80년 이란을 침공해 8년간의 전쟁이 시작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라크 인구의 65%가 시아파였기에 소수파 후세인의 이란 침공은 정권 생존 차원의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우디와도 갈등이 발생했다. 87년 7월 성지순례 중이던 이란 출신 시아파가 메카를 장악하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과 충돌이 발생했다. 이란인 275명이 사망했다. 다음 해 사우디와 이란 간 외교관계가 중단됐다. 하지만 79년 이슬람혁명 이후에도 이란이 중동 내, 특히 사우디에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혁명 직후 발생한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현재까지 이란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핵 개발 의혹이 불거진 2002년 이후부터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등으로 이란은 국제사회에 의해 정치경제적으로 철저히 봉쇄돼 왔다.



제재 풀릴 이란, 패권국 부상 시간 문제그런데 지난해 7월 서방과 이란의 핵협상이 최종 타결됐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해제된다. 시아파 이슬람공화국 이란이 모든 족쇄를 풀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하늘이 열린 것이다. 군사력·인구·수자원·식량자급도와 제조업 수준 등에서 이란은 사우디를 훨씬 능가한다.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에서도 사우디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현재 최대 산유 지역인 걸프만과 차세대 에너지 보고인 카스피해를 모두 끼고 있는 나라다.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복귀하면 이란이 중동 내 패권국가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지난 몇 년 동안 서방-이란 간 핵협상에 어깃장을 놓았던 두 나라가 바로 사우디와 이스라엘이다. 이란의 패권국 부상은 양국의 안보와 주도권에 결정타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 공습을 여러 차례 엄포해왔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도 각을 세우고 있다. 사우디는 핵협상 타결 소식이 나오자마자 러시아로부터 무기 수입 협상에 들어갔다.



미국과 유럽이 친서방 국가인 사우디를 여전히 중동의 든든한 동맹으로 여기면서도 반서방·반이스라엘 국가인 이란에 미래를 투자하는 패러독스가 이란과 사우디 간 극한 대결을 부른 측면이 있다. 이란의 부상을 저지하려는 사우디의 강경 대응은 당분간 강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중동 안정 바라는 서방은 난감이란의 국제무대 복귀에 대한 견제와 우려는 이미 전초전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 양측 간의 충돌이 제한적이지만 이미 시작된 것이다. 예멘에서는 수도를 점령한 시아파 후티 반군을 이란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우디는 지난해 3월부터 수니파 예멘 정부를 도와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 하루에 2억 달러의 전비를 퍼붓고 있다. 시리아에서도 이란은 시아 분파인 알라위트파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군사적으로, 그리고 재정적으로 돕고 있다. 시아파인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이란의 도움을 받아 병력을 시리아에 파견했다. 반면 사우디는 세속주의 시리아 반군에 가장 많은 돈과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시리아와 예멘에서의 이란-사우디를 대리한 형태의 내전은 두 종주국의 이번 정면충돌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예멘 수도 사나에 있는 이란 대사관이 6일(현지시간) 사우디 공군의 공습으로 폭격을 당했다고 주장한 이란과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맞선 사우디 간의 신경전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중동사태 안정에 이란과 사우디의 도움이 절실한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등장도 수니-시아파 갈등의 산물이다. IS는 수니파 사담 후세인 정권 몰락 이후 이라크에 등장한 시아파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수니 반군테러세력이다. 권력과 기득권에서 철저히 배제된 수니파가 시리아의 반정부 수니파와 결합해 만든 조직이다. IS의 대표적인 구호는 ‘사파비(왕조) 시아파를 죽이자’다. 이란과 사우디 간 긴장 고조는 서방의 IS 격퇴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됐다. 이란이 지원하는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에 맞서 싸우는 수니 IS의 세력 근절을 위해서는 사우디의 협력이 절실한데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서정민 교수 amirseo@hufs.ac.kr?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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