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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중독·도전·의무·쾌락 … “니는 또 산에 갈 끼다”

김형일 대장이 이끈 K2 스팬틱 골든피크 원정대가 2009년 6월 히말라야의 골든피크(7027m)에 도전하고 있다. 김 대장은 최소 장비로 신속하게 정상에 오르는 알파인 스타일을 고집했다. [중앙포토]



영화 ‘히말라야’가 히트하면서 고산 등반을 하는 산악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엄홍길 대장을 비롯한 산(山)사람들은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실족사 한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찾아오기 위해 ‘휴먼 원정대’를 꾸립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분투와 인간미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무모한 도전을 해야 하는가’ ‘부모와 아내와 자식을 두고 사지(死地)로 떠나는 게 옳은가’하는 의문을 품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왜 히말라야로 떠났고, 또 지금도 그리로 향하고 있는 걸까요. 스포츠 오디세이가 만났습니다.



[2016 스포츠 오디세이-1-] 히말라야로 떠난 사람들

 



"부모님께 죄송한데, 결국 산으로 향해"형진씨가 사고를 당한 다음 해 김 대장의 여동생도 암으로 세상을 떴다. 김 대장의 어머니는 하나 남은 자식이 원정을 떠나면 돌아올 때까지 촛불을 켜 놓고 절대 꺼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 속이 얼마나 탈까요. 그거 불효라고 생각 안 합니까.



“…. 그렇게 생각합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업보인 것 같아요. 부모님 생각하면 죄송한데, 결국에 또 산으로 향합니다.”



-만약 결혼을 해서 예쁜 딸을 낳았는데 ‘나도 아빠처럼 히말라야 갈래’ 하면 어떨까요.“하하하하하, 하하하.”



한참을 웃은 김 대장의 눈가에 얼핏 물기가 보였다. 그가 대답했다. “저 하나로 끝나면 좋겠는데…. 너무 힘드니까요.”



 



위 대화는 2011년 2월 27일자 스포츠 오디세이 '가장 정직한 등산, 알파인’에 실린 내용이다. 김형일 대장(당시 43세)은 국내 알파인 등반의 선두주자로 꼽혔다. 알파인은 물량주의·성과주의 등반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인원·장비로 등정을 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김 대장은 1998년 국내 거벽 등반의 간판스타였던 동생 형진씨를 인도 탈레이사가르 북벽에서 잃었다. 그는 동생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산사람들과 친해지고 고산 등반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김 대장은 스포츠 오디세이와 인터뷰를 하고 아홉달 뒤인 2011년 11월 11일,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에서 사고를 당하고 만다. 장지명 대원이 먼저 추락하고, 그와 끈으로 연결돼 있던 김 대장이 이어 떨어졌다. 시신을 수습하러 간 김 대장의 사촌형 형선씨는 “시신이 너무 참혹해 차마 부모님께 보여드리지 못하고 화장했다”고 말했다.



형선씨는 “형일이는 입버릇처럼 ‘난 엄마보다 딱 일주일만 더 살고 갈 거다’고 했다. 자식 둘을 앞세운 부모 심정을 장남이 왜 모르겠나. 그래서 부모님께 더없이 잘 했고, 촐라체와 K2 등반만 마치면 아웃도어 매장이나 트래킹 업체를 운영하면서 결혼도 하고 부모님 모시고 살겠다고 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형선씨는 사고 뒤 한동안은 보초를 서듯 김 대장 부모님을 살폈다고 한다. 아침에 눈 뜨는 게 가장 무섭다던 부모님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지도 몰라서였다.





“장례식 인파 보니, 잘 살았구나”산악 다큐멘터리를 주로 찍는 영화감독 임일진씨는 김 대장의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제목은 ‘알피니스트’(가제)다. 김형일 대장의 2년 후배인 그는 촐라체 원정에 함께 했고, 김 대장과 무전으로 마지막 교신을 나눴다.



“촐라체 원정팀이 현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박영석 대장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 대장은 곧바로 헬기를 타고 안나푸르나로 날아가 수색 작업을 했다. 성과 없이 이틀만에 돌아왔지만 이미 거기서 체력을 많이 소진했다. 마지막 교신 때 ‘너무 힘들다. 탈수 증세가 왔고, 앉지 못하고 계속 벽에 매달려 있어야 해서 체력이 고갈됐다’는 말을 했다.”



김 대장은 원정을 앞두고 하루 8~9시간씩 지독하게 체력단련을 했다. 원정 끝난 뒤에 다시 피겠다며 좋아하던 담배도 끊었다. 그럼에도 그는 체력 고갈을 호소하며 삶의 끈을 놓쳐버렸다.



임 감독도 형선씨와 비슷한 말을 했다. 고산 등반을 오래 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원정 가기 전에 중고차 매매 사업 하는 형님에게 우리 둘 다 몇백만원씩 집어넣었다. 형일 형은 알파인 등반의 정신을 이해하는 후배(장지명)에게 자기 노하우와 이념을 전수하고 은퇴하려 했던 것 같다.”



2011년 11월 3일, 안나푸르나에 묻힌 박영석·신동민·강기석 대원의 합동영결식이 서울대병원에서 열렸다. 16일 뒤인 11월 19일, 김형일·장지명 대원의 영결식이 삼성의료원에서 엄수됐다. 형선씨는 “내 평생 장례식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온 걸 본 적이 없다. 보잘것없어 보이던 내 동생이 정말 대단한 친구였구나, 진짜 멋지게 살다 갔구나 싶었다”고 술회했다.



임 감독은 “김 대장의 인간적인 매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김 대장이 추구한 알파인 등반에 대한 지지와 응원이기도 했다”고 말했다.그는 “사실 극지법(기존 등반 방식)과 알파인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게 옳은 건 아니다. 어떤 게 더 위험하고 덜 위험한가를 나누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런데 그런 이분법적 분위기 속에서 형일 형이 차세대 등반의 파이오니어로 떠밀린 느낌도 있다”고 했다.



 



“스폰서에 대한 의무? 끼어들 틈이 없다”운명, 중독, 도전, 모험, 의무, 쾌락….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와 목적은 각양각색이다.



김창호 대장은 “인도에는 인구 수만큼 많은 신들이 있다고 한다. 산악인들에게 왜 산을 오르느냐고 묻는다면 같은 수의 답이 나올 거다”고 말했다. 그는 무산소로 에베레스트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이다. 그에게 산에 왜 가느냐고 묻자 “다른 어떤 행위에서도 얻을 수 없는, 존재의 충만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히말라야가 좋아 그곳에서 5년을 살았다. 김형일 대장도 촐라체 원정을 앞두고 그에게 전략과 정보를 물어봤다고 한다. 김창호 대장은 “원정을 앞두고는 눈사태·낙석·식량고갈·동료의 부상상 등 모든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극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잘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출발해야 한다. 베이스캠프까지 날아가서 정상을 바라볼 때 느낌이 딱 온다. 안 되겠구나 싶으면 미련 없이 돌아서야 한다”고 말했다.



원정 경비를 대는 후원사에 대한 압력이나 부담감이 있지 않겠냐고 묻자 그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산을 내려와서 드는 생각이다. 히말라야에서 정상에 오르느냐 아니냐는 생명이 달린 문제다. 삶과 죽음이 오락가락 하는데 이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실제로 그는 히말라야에서 무장 탈레반에게 잡혀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세 명이 권총으로 나를 겨낭했는데, 난 누가 내 머리에 총을 쏠 건지 알았다. 그 놈의 총구와 눈만 보이더라. 결국 그 놈이 내 머리를 향해 총을 쐈다. 본능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다행히 총알이 빗나가 그는 목숨을 건졌다.



김창호 대장도 2013년 5월, 친동생같은 후배 서성호 대원을 잃은 아픔이 있다. 김 대장과 함께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로 등정한 서 대원은 하산 후 캠프4(8050m)에서 잠을 자다 새벽에 숨졌다. 당시 김 대장은 “무산소를 고집하는 바람에 사고를 불렀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김 대장의 논리는 굳건했다. “당시 하산길에 산소통을 휴대한 의무진이 동행했다. 산소를 쓰라고 권했지만 본인이 ‘힘들지만 내려갈 수 있다’고 했다. 등반은 동료에 대한 100%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다. 대장이라고 뒤통수를 때리면서 ‘명령이야, 산소통 써’라고 할 수 없다. 그건 팀이 아니다.”



김 대장은 “최근 고산 등반은 기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가 어떤 루트를, 어떤 방식으로 올랐나,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산에 대한 존중과 자기 책임, 그리고 안전이 화두가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부산 출신인 서성호 대원의 장례식 날, 그의 어머니가 김 대장에게 울면서 말했다. “너거 둘이 형제라면서. 근데 니는 내려왔는데 니 동생은 와 안 내려왔노.”



한참 뒤 어머니가 또 말했다. “니, 또 산에 갈 끼가.” 곧바로 어머니가 정답을 내놨다.



“니는 또 갈 끼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가 ‘2016 스포츠 오디세이’를 시작합니다. 정 선임기자는 2011년 11월 20일자 축구선수 이영표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19회의 스포츠 오디세이를 연재한 바 있습니다. 정 선임기자는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맡아 2012 런던 올림픽, 2014 소치 올림픽과 브라질 월드컵, 인천 아시안게임, 그리고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까지 치렀습니다. 일선으로 복귀한 관록의 기자가 좀 더 깊어진 안목을 갖고 스포츠 현장 구석구석을 누빌 것입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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