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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됨됨이 살폈던 이동주 선생의 혜안

‘신선과 학’, 비단에 채색 43.3×28.5㎝. 이동주 선생은 자신이 소장했던 이 작품을 고려시대 그림으로 추정했다. [사진 이원복]



1917년 태어나 97년 별세한 이명동인(異名同人)이다. 한 몸으로 전혀 다른 두 분야에서 모두 탁월한 업적을 남긴 드문 연구자로 꼽힌다. 정치학자 이용희와 미술사학자 이동주는 그 어느 쪽도 소홀함 없이 팔십 평생을 결이 두텁게 살다 갔다. 국제정치학 이론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회화사 통사인 『한국회화소사』(1972)를 쓴 미술사가로서 그는 르네상스적 인물의 표본을 보여줬다.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이동주의 회화사 연구를 호사가의 취미쯤으로 여겨 일종의 딜레탕티즘이나 아마추어리즘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전공이 아닌 곁가지로 공부한 점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건데 그렇다 해도 한국 회화사의 맥을 잡고 초석을 놓은 업적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특히 “미술을 알기 위해서는 이론보다 철저하게 작품을 우선하라”는 실물 감상과 안목에 대한 강조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법론이었다.



내년 탄생 100주년, 타계 20주기를 앞두고 동주 선생 이름이 새삼 고미술계에 회자됐다. 1월 초 발간된 ‘미술자료(美術資料)’ 제88호에 이원복 문화재위원이 쓴 논문 「고려시대 그림으로 전하는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가 계기였다. 불화(佛畵)와 고분 벽화 외에는 전하는 작품이 거의 없어 회화의 조류나 화풍을 알기 어려운 것이 고려다. 이 위원은 국립중앙박물관 재직 시절이던 94년 소장품 도록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견한 ‘선인도(仙人圖)’ 두 점이 고려시대 그림일 것이라고 논증한다. 이 대목에서 그 근거로 등장하는 것이 이동주 선생이 소장했던 ‘신선과 학’이다. 자신이 저술한 책에도 몇 차례 고려 그림이라고 언급한 ‘신선과 학’에 대해 그는 조선그림과 확연히 다른 특징을 거론하면서 작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를 분석한다. “노송은 고아(古雅)하고 흰 구름이 특이하며, 인물의 선은 품위가 있고, 옷 주름은 날카롭고 필의(筆意)가 있다.”



재미난 사실은 이동주 선생의 회화사 공부에 조력한 것이 박정희 정권이었다는 점이다. 60년대 후반에 국제정치학회 회장을 맡은 선생이 민족주의와 근대화의 문제를 다룬 심포지엄에서 당시 박 정권의 조국 근대화 사업을 비판한 것이 화근이 되어 정치학 관계의 활동에 제동이 걸렸던 것이다(유홍준 지음 『정직한 관객』 268쪽). 전공을 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는 회화사에 열정을 쏟았다. 이때 아호인 동주를 필명 삼아 저술에 매진했으니 한국미술사학계로서는 복이었던 셈이다.



그림의 됨됨이를 잘 살펴 ‘그 무엇’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지 알아내고 감동하는 것이 그림의 올바른 감상이라고 설파했던 이동주 선생의 혜안은 40여 년이 흐른 지금 더 절실하다. 이원복 위원은 “전시회를 통해 공개된 적이 없는 ‘신선과 학’이 ‘선인도’ 두 점과 나란히 일반에 선보여 고려시대 회화에 대한 인식에 일조할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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