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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내가 소망하는 것

타이페이에서 열린 서화전에서.



2015년은 내게 매우 풍성한 한 해였다. 제주도와 타이페이에서 자선 전시회 성격의 개인 서화전을 열었고, 말레이시아 경제지 난양상바오(南洋商報)에 주 1회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시작한 일인데 글쓰기에 이렇게 깊은 애정을 갖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어서 한국의 중앙SUNDAY에도 기고를 하게 됐으니 어찌 풍년이 아닐 수 있겠는가. 어릴 적 책 읽기를 좋아하기는커녕 음악과 영화에만 미쳐있던 소녀가 2015년이 돼서야 파트 타임 칼럼니스트로 ‘전업’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천추샤 칼럼

거듭 말하지만 나는 이 일과 정말 사랑에 빠진 것 같다. 내가 한국 신문에 연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냐?” 그들은 어찌 세상에 번역가란 직업이 있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이 기회를 빌려 말하자면 나를 대신해 매번 수고해주는 ‘막후 공신’에게 정말이지 경탄과 감사를 표한다. 덕분에 한국 독자들과 시시콜콜한 생활 속의 희로애락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우편으로 온 중앙SUNDAY를 받거나 인터넷에서 기사를 찾아볼 때면 양아들 토니에게 한국어로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어쩔 땐 눈을 감고 완벽히 이해하는 것 마냥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하긴 본래 내가 쓴 문장이니 어찌 내가 이해를 못할 수 있겠는가.



최근엔 타이페이에서 서화전을 여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57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몇 달을 꼬박 매달린 탓에 몸이 버텨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드디어 12월 6일 개막 당일. 주최 측에서 내게 축사를 부탁한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바람에 원고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결국 200여명의 내빈 앞에 서서 마음 속의 말을 꺼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감동적인 연설은 원고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는 편이긴 하다. 진심이 담겨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나는 직업에 관한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나의 인생사전에 ‘직업’이란 단어가 처음 들어온 건 13살 때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면서였다. 17살 때 작곡 부문 홍콩 대표로 도쿄음악제에 참가하면서 그 의미는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 소녀가 출입국신고서의 ‘직업’란을 맞닥뜨렸으니 말이다. 자신있게 ‘가수’라고 적어넣자 왠지 모를 자부심이 밀려왔다. 그 후 7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가수에서 작곡가로, 다시 배우로 종종 직업을 바꿔왔다. 하지만 모두 예술 분야 안에서의 일이었다.



결혼 후 남편과 처음 출국을 하며 더 이상 직업란에 쓸 직업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가정주부’라고 써야 하나. 드라마 속 배역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서 역할 변경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나의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회사 이사라는 직함을 주었고 나는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었다. 30여년 동안 그 직함으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지만 예술계와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아이들도 다 컸고 나의 부담감도 한층 줄었다. 다시 예술계로 돌아간다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실은 무대가 종이로 바뀐 것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펜을 들고 먹을 갈아 창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화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욕심도 커져간다. 비록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오랜 세월의 노력이 필요할 듯하지만 말이다. 이제 새해가 됐으니 “2016년엔 뛰어난 서화가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소원을 빌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다시 입국할 때면 직업란에 ‘서화가’ 혹은 ‘작가’라고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중앙SUNDAY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두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천추샤(陳秋霞·진추하)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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