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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해 고교 때 290명 중 280등 … 시 쓴 게 밑거름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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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신자유주의와 죽음 이후의 미스터리에 관심이 크다는 채사장. 그에게 책은 현실과 신비를 잇는 다리와 같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두 시간 넘게 얘기를 했는데도 이 친구, 여전히 미스터리다. 현실에 뿌리를 내린 듯, 허공에서 날갯짓을 하는 듯 정체가 확 잡히지 않는다. 확실한 건 하나, 지난해 국내 저자로 가장 많은 책을 팔았다는 점이다.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전편에 못 미치는 속편)를 비웃듯 새해 직전에 낸 책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들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약칭 ‘지대넓얕’·전 2권)의 채사장(본명 채성호·35)이다.

 책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100% 무명작가였던 그의 ‘지대넓얕’은 지난해 인문학 열풍을 타고 70만 부 가까이 나갔다. 2015 종합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신간 『시민의 교양』도 기세를 이어 가고 있다. 두 책 모두 이 시대를 떠받치는 사회 구조를 들춰내는 데 힘을 쏟는다. 제목 그대로 ‘좁고 깊은’ 전문 지식이 아닌, ‘넓고 얕은’ 교양을 담고 있다. 역사부터 예술까지 인간사의 ‘거의 모든 것’을 굴비 엮듯 술술 풀어 간다. 옆 사람에게 얘기하는 듯한 대화체도 부담 없다. 그는 “살은 발라내고 뼈대만 간추렸다”고 말했다. ‘지금, 여기, 보통 사람을 위한 현실인문학’을 추구한다는 그를 지난 4일 만났다.

 - 내용 정리가 깔끔하다. 우등생이었나.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교 때 문과 290명 가운데 280등쯤 했다. 수학 점수는 최악이었다. 초·중·고 내내 ‘꾸준히’ 공부를 못했다. 그러다 고2 때 시를 알게 됐다. 시를 쓰는 친구가 멋져 보였다. 바로 문예반에 들어갔다. ‘시는 어떻게 쓰는가’부터 배웠다. 쓰고 쓰다 보니 백일장 장원도 여러 차례 했다.”

 - 성균관대 국문과를 들어갔다.

 “문학을 더 배우고 싶었다. 고3 때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정도였다. 평소 학습량이 적어 재수를 했다. 친구들이 그러더라. ‘너는 머리가 새것이라 대학에 갈 수 있었다’고. (웃음) 국문과에서는 비교문학, 혀의 구조, 이런 것을 가르쳤다. 흥미를 잃었다. 철학을 복수전공 했다.”

 - 대학 때 책 1000여 권을 읽었다는데.

 “3학년 때 학사장교(포병) 입대를 결정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많았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살았다. 책만 파고들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는데, 그때까지 ‘말도 안 돼’라며 무시했던 불교·이슬람에서 시작해 정치·경제·예술·과학 등으로 독서 폭을 넓혀 갔다. 평소 몰랐던, 불편해했던 책을 주로 골랐다. 새 세상과 만났다. 저마다 논리가 탄탄했다.”

 - 그렇다고 책을 쓰는 건 아니다.

 “고교 시절 시작(詩作)이 큰 도움이 됐다. 시를 쓸수록 동시에 끌렸는데, 동시는 적은 단어로 의미를 전해야 한다. 불필요한 수식어구를 배제해야 한다.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게 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 거다. 그래야 간결 명료해진다.”

 - 군대에서 작가의 꿈을 키웠나.

 “전혀 아니다. 월급을 처음으로 받게 됐다. 주식·부동산 등 재테크 책을 주로 읽었다. 인문학과 담을 쌓았다. 제대 이후 먹고살아야 했다. 대입 논술 강사, 화장품 회사 창업, 온라인 쇼핑몰 운영 등을 했다. 주식 전업투자자 생활도 했다. 돈만 아는 유물론자였다. 큰돈은 아니지만 벌고 싶었던 만큼 벌었던 것 같다.”

 - 왜 갑자기 방향을 180도 틀었나.

 “2011년 제주도 여행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동료 둘이 죽고,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 후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자리에서도 죽은 이들이 내 옆에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안과 환상에 시달렸다. 정신과 치료도 1년 받았다. 그간 해온 일을 모두 접었다. 견고하고 안정된 세계를 찾고 싶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 어떤 곳인지, 예부터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정리해 보았다. 2주 정도 걸린 것 같다. 그게 ‘지대넓얕’ 1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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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안내서인 『티베트 사자의 서』를 쓴 파드마삼바바. 무명의 티베트 화가가 그린 그림(부분)이다. 채사장이 많은 영감을 얻은 인물이다.

 보기 드문 반전 스토리다. 채사장은 『시민의 교양』에서 한국의 오늘에 집중한다. 세금부터 국가·자유·직업·교육을 거쳐 정의·미래 문제까지 다룬다. 자본과 노동에 대한 탐색도 여전하다. 소득·취업률·인구 등 통계자료를 인용하며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상살이를 들여다본다. 대통령·비서실장·시민이 등장하는 소설적 요소도 도입했다. 그리고 우리가 갈 길을 묻는다.

 - 필명이 채사장이다. 채회장은 어떤가.

 “하하하, 그건 생각 못했다. 사장이란 말에 대해 일부 거부감이 있다. 이 이름을 택한 배경은 간단하다. 삶의 교양을 보기 좋게 진열한 ‘지식가게’ 사장이라는 뜻이다. 사실 사장이 많은 사회가 좋지 않은가. 구멍가게 주인도 사장이다. 작은 규모라도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이 많은 사회가 건강하다. 중산층이 든든해야 한다.”

 -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부터 풀고 싶나.

 “이번 책은 세금을 올릴 것인가, 올린다면 누구의 세금을 올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다. 세금은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핵심 요인이다. 저는 보수적 자유주의자에 가깝지만 우리는 꽤 오랫동안 성장을 담보 삼아 분배를 희생시켜 왔다. 빈부격차·사회양극화가 위험한 상태다. 부유세를 도입하고, 복지를 강화하지 않을까 한다.”

 - 시민·교양은 19세기 서구 사회 용어다.

 “좋은 지적이다. 그런데 요즘 시민에는 자본가는 물론 노동자도 포함된다. 사회 전체의 일원이되 자기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주체적 인간을 가리킨다. 그들이 세상을 꾸역꾸역 앞으로 이끄는 주인공이다. 또 교양은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개별 지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쓸모없는 지식, 가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니까.”

 - 철 지난 마르크스주의도 등장하는데.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필요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캠퍼스에 운동권이 없었다. 아무도 이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과 노동의 대립, 하부구조(경제)와 상부구조(문화)의 관계는 ‘지금, 여기’를 분석하는 틀로 유용하다고 본다. 이념이 아니라 실용적 접근이다.”

 - 청년층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너무 안쓰럽다. 외부 강연도 자주 가는데 대학생 앞에만 서면 미안할 뿐이다. 그래도 두 가지 얘기는 빠뜨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눈앞의 어려움을 헤쳐 가는 자기만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또 젊은이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를 선택하라고 권한다. 정치도 본래 분배의 문제이지 않은가. 불만만 늘어놓아선 소용이 없다.”

 - 요즘 주요 관심사가 있다면.

 “인도·티베트 불교다. 마흔쯤 되면 그곳으로 떠날 생각도 있다. 지금 우리가 믿고 사는 신자유주의는 도도한 역사의 일부분일 뿐이다. 보편적 삶의 형태가 아니다. 매우 독특한 경험일 수 있다. 경쟁과 다툼 이전의 세상을 보고 싶다. 육체적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에도 관심이 크다. 우리는 잠시 인간이란 옷을 입고 사는 존재일지 모른다.”

 - 깜짝스타가 됐다. 느낌이 어떤가.

 “금방 잊힐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주식투자자로 돌아가지 않을까. 주식투자로 마음 다스리는 방법을 배웠다. 난무하는 정보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됐다. 책만으로는 세상을 알 수 없다. 실제 경험이 없으면 ‘반쪽이’에 불과하다. 각개전투 이론에 통달하다고 실전에 뛰어난 건 아닐 터다. 다만 인류의 정신사를 훑는 『총균쇠』 같은 책을 한번 쓰고 싶다.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S Box] 팟캐스트 ‘지대넓얕’ 월평균 다운로드 500만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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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이 즐겨 듣는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진행자들. 왼쪽부터 이덕실·김도인·깡선생·채사장.


채사장을 먼저 알아본 곳은 온라인 쪽이다. 2014년 4월 그와 지인 셋이 시작한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열기가 책으로까지 이어졌다. 출판 관계자들은 ‘모바일 퍼스트 전략’으로 평가하지만 정작 채사장의 생각은 다르다. “결과론적 해석입니다. 처음에는 책을 낼 계획이 전혀 없었거든요. 현실에 적응 못하고 둥둥 떠다녔던 우리들의 얘기를 재미 삼아 인터넷에 올려봤을 뿐입니다.”

팟캐스트 ‘지대넓얕’은 현재 83회까지 방송됐다. 매주 평균 1회 업데이트된다. 정치·과학·철학·종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각기 캐릭터가 다른 채사장·이덕실·김도인·깡선생이 지적 수다를 떤다. 월평균 다운로드 500만 건을 기록할 만큼 호응이 크다. 지난해 아이튠스가 선정한 팟캐스트 1위에도 올랐다. 2016년 첫 소재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모험담인 ‘길가메시 서사시’다.

“우리가 처음 팟빵(팟캐스트 포털)에 들어갔을 때 6000개 채널 가운데 바로 800위를 했어요. 믿기지 않았죠. ‘설마, 말도 안 돼’라고 했죠. 그러더니 7월에 100위권에, 12월에 20위권에 진입했습니다. 마침 써놓은 책이 있어 출판사 문을 두드렸어요. 팟캐스트도 역량이 닿는 데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지대넓얕’은 네이버 카페에서도 인기다. 회원 수가 2만7000명에 이른다. 지역·테마별 모임도 20여 개 생겼다. 반면 채사장은 이런 움직임에 심드렁하다. 카페·페이스북에 댓글을 달지 않는다. “인터넷 문화에 친숙하지 않아요. 거의 방치한 상태죠. 이런저런 반응에 감당할 자신도 없고요.”

글=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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