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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인사이드] 35년만에 손해배상 이긴 탄광노동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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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 탄광의 노동자들. 그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힘들게 일했다
[중앙 포토]

“쿵! 쾅! 퉁! 탁!”
강원도 정선 사북읍 탄광. 이곳은 대한민국 민영탄광 가운데 생산규모가 가장 큰 곳입니다.
광부들은 수백 미터 지하에 들어가 40도에 이르는 지열과 붕괴위험, 돌가루와 화학연기 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일했습니다.

1980년 이원갑(당시 40세)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이씨는 보안계원으로서 광부들의 안전과 작업의 보완을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씨와 동료 노동자들은 힘들게 생활했습니다. 겨울에는 수돗물이 끊기고 휴일에는 전기가 끊긴 채 살아야 했죠. 말도 안 되는 박봉에 이중 삼중의 임금 착취, 인격적 모욕과 천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광부들에게 회사는 석탄의 무게를 축소해서 계산하는 식으로 임금을 낮췄습니다. 노동자들은 이를 알고 분노했죠. 노조도 있었지만 힘을 쓸 수 없었습니다. 회사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몇몇 노조에 들어가 있었거든요.

결국 그해 4월 노동자들이 “노조 지부장이 부정선거로 뽑혔다. 직접선거로 다시 뽑자”며 선출 무효화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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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여명의 광부들이 임금협상과 노조지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사북리 시가지를 점거, 경찰과 대치하였다. [중앙포토]
 

왜 집회허가가 나오지 않느냐, 현 집행부 물러가라, 지부장 물러가라”
광부들은 허가없이 불법 집회를 했고 경찰들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경찰에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이씨는 순식간에 항쟁의 주동자가 됐습니다. 당시 신군부 계엄사령부는 이씨에게 “계엄포고령을 위반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들고 일어났다”며 소요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경찰에 끌려간 이씨는 20일 넘게 각목으로 구타를 당하거나 물고문을 받았습니다. 살인적인 가혹행위에 시달렸습니다. 이씨는 견디다 못해 수사관이 유도한 대로 진술을 했습니다. 이후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이듬해 재심대상결정을 받고 집행유예로 석방됐습니다.
그렇게 25년이 흘렀습니다.

2005년 8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이씨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하는 명예회복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2008년에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당시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와 허위자백이 있었다”며 “사북사건의 발생배경과 전개과정을 밝히라”고 진실 규명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또 7년이 지났습니다. 법원은 지난해 2월 “이씨의 범죄를 증명할 수 없다. 영장 없이 연행해 폭행으로 받아낸 자백은 증거로 볼 수 없는 불법행위다”라며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무죄가 선고되자 이씨와 가족들은 곧바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그동안의 서러움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을 받고자 한 것이죠. 결국 지난해 12월 28일 법원이 35년 만에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윤강열)는 “국가기관이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국민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했다는 점에서 위법성이 매우 크다”며 “이씨와 동료 신씨의 가족들에게 2억 9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씨의 가족은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정작 이씨는 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때문인데요. 이 법에서는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입었더라도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씨가 2008년과 2012년 생활지원금과 장해보상금 등의 명목으로 각각 약 2600만원ㆍ1700만원을 지급받았기 때문에 추가로 위자료를 지급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씨는 “배운 게 탄광일밖에 없는데 계엄령 위반과 소요죄가 걸려있어 어디 취직도 못했다”며 “생계를 위해 생활 지원금을 신청한 건데 이를 받을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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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씨처럼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소액의 보상금을 받았다가 재판상 화해한 것으로 간주돼 정작 민사소송에서는 손해배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법적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2014년 6월 한 남성이 “민주화운동 보상법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을 역차별한다. 이 법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신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입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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