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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금융분야의 순리와 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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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

사마천은 필생의 역작『사기』에서 공직자를 순리(循吏)와 혹리(酷吏)로 구분했다. 순리는 법을 엄격히 집행하되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품성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사회에 평안을 가져오는 관리다. 반면 원칙대로 법을 집행했으나 법령이 너무 가혹, 결국은 도적 증가와 같은 부작용으로 백성에게 피해를 준 관리들을 혹리로 불렀다.

 순리의 대표적 사례가 정나라때 자산(子産)이다. 자산이 재상이 되자 1년만에 노인의 과도한 노동이 줄고(극빈층 형편 개선), 3년째는 백성들이 밤에 문을 잠그는 일이 없어지고(치안 개선), 5년이 되자 정부의 명령이 없어도 백성들의 상복입는 기간(허례허식을 의미)이 잘 지켜졌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진(秦)나라 시절에도 법망은 촘촘했지만 간사함과 거짓이 극에 달했다’고 말한 사마천은 ‘통치의 근본은 혹독한 법령이 아니라 도덕’이라고 강조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금융산업은 그 어느 곳보다도 법령이 많다. 특히 자본시장법은 시행령 시행규칙 분량까지 합치면 법조문이 가장 많다는 민법보다도 분량이 방대하다. 법령에 수반되는 규제가 하도 강하다 보니 작은 금융회사가 큰 회사가 되기도 어렵고, 큰 회사가 작은 회사로 퇴보하기도 불가능하다는 우스개 소리가 회자되어 왔다.

 그런데 규제가 심하다는 금융분야에서 놀라운 반전이 벌어졌다. 금융위원회가 이달부터 시행하는 ‘금융규제·감독운영규정’은 반가움을 넘어 놀랍기까지 하다. 스스로 규제 남발을 옥죄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감독기관은 외부기관으로부터 의무적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또 금융규제 옴부즈맨 제도를 통해 당국의 규제에 대한 외부견제도 명문화했다.

 금융회사들이 법령보다 더 큰 규제로 느끼던 행정지도를 필요 최소한으로 줄이고, 금리·수수료 등과 같은 고유의 경영행위에 대한 행정지도를 금지하겠다는 내용도 또렷하게 밝혔다. 시장과 산업의 세세한 부문까지 개입해서 관치로 비판받던 규제기관이, 스스로 순리(循吏)적 금융규제 패러다임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감독방식이 전환된 만큼, 시장 참가자들은 자율에 대한 무거운 책임도 함께 져야한다. 규제완화로 업계가 뛸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 만큼 금융회사는 고객의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건전하게 영업하고, 내부통제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개혁 가운데서도 금융부문 개혁은 실물경제에 주는 영향이 크고, 중소벤처기업 등 신성장 산업을 키우는 핵심인프라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인수에 나서며 8조원대 초대형 증권사가 등장하고 중국의 자본이 밀려오는 등 종전과 다른 경쟁과 승부의 장이 예견된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환경 속에서 규제당국의 혁신적 시도와 시장 종사자들의 자율이 어우러져 금융산업이 국가경제에 활력을 창출해내는 산업으로 일어서길 기대해 본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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