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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유일호의 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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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재작년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에게 딱 세 가지 주문을 했었다. 첫째 가계부채 늘리지 말고 둘째 나랏빚 늘리지 말며 셋째 인사 독식 말라였다. 1년 반이 지나 ‘전역’ 날짜가 다 됐는데 돌아보니 제대로 지켜진 건 하나도 없다. 가계 빚은 1200조원으로 늘었고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게 됐으며 대한민국 곳곳이 경제부총리발 인사 잡음으로 시끄럽다.

 두 달 전엔 다음 경제부총리에 이런 분은 안 된다고 했다. 정권에 지분 있는 분, 정무형인 분, 정치인은 3불(不)이니 쓰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새 부총리 내정자는 정반대다. 박근혜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정권에 지분이 있으며 두루 여야 정치인과 통하는 정무형이고, 2선의 정치인이다. 그러니 오늘 또 3기 경제팀에 무슨 주문을 한들 한 귀로 흘려듣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는 11일 열린다. 본인이 정치인 출신이요, 총선이 코앞인 데다 야당이 집안 문제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큰 문제 없이 통과될 것이다. 유 내정자에겐 복이요 화다. 큰 벼슬을 얻는 건 복이지만 그 벼슬 떨어질 때까지 영일(寧日)이 없을 테니, 화다. 요즘 나라 안팎 경제 상황이 좀 만만한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내우외환 소리까지 나온다. 한 발 삐끗하면 천추에 죄인이 될 테니 화도 그런 화가 없다. 최경환 부총리는 사석에서 “욕만 원없이 먹었다. 내가 왜 이 자리를 맡아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유 내정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선 벌써 “유약한 학자 출신에 행정 경험은 8개월뿐인 정치인이 뭘 하겠느냐”며 반응이 차갑다. 하지만 그런 경력이 되레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유 내정자는 학자·장관·정치인 세 가지 얼굴로 세 가지 일을 해내야 한다.

 당신은 정치인이다. 대통령이 전임 최경환에 이어 3기 경제팀장도 정치인을 임명한 건 “입법하라”는 주문이다. 대통령은 국무회의 때마다 국회에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국회 때문에 더 힘들다고 질타했다. 당신은 경제 살리기 법안 통과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 필요하면 여의도에서 살아야 한다. 곧 총선에 이어 내년 대선까지 정치의 계절이 시작된다. 정치를 이겨내지 못하면 경제도 없다. 대통령의 복심이요, 이른바 진박(眞朴)인 당신이 그 자리에 앉는 이유다.

 당신은 학자다. 거시 이론에 빠꼼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 경제의 불안, 신흥국 위기, 저유가의 공습까지 올해 세계 경제는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새해 개장 첫날부터 중국 증시가 7% 급락해 긴장감은 더 커졌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호가 세계 경제의 뉴 애브노멀(New abnormal)에 갇혀 길을 잃지 않도록 당신은 유능한 조타수가 돼야 한다. 학자의 내공을 십분 발휘해 국내외 집단 지성의 힘을 적극 끌어내야 한다.

 당신은 행정가다. 비록 8개월이지만 장관직을 지냈다. 올해 우리 경제의 최대 화두는 구조개혁과 구조조정이다. 구조개혁이 거시적이라면 구조조정은 미시적이다. 미래의 구조개혁과 당장의 구조조정이 맞물려야 한국 경제에 미래가 있다. 구조조정은 피가 튀고 살이 부서지는 현장이다. 행정 경험을 살려 골육이 부서지는 현장을 장악해야 한다. 이때는 정치인·학자의 얼굴은 잊어야 한다. 학자의 유약함으로는 피와 살을 깎아낼 수 없다. 정치인의 포퓰리즘으론 고통과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

 나는 당장 오는 11일 청문회에서 당신의 세 얼굴을 보고 싶다. 가계부채며 주택 공급과잉이며 각종 현안에 대해 “취임 후 생각해보겠다”는 말은 제발 말아달라. 한국 경제에는 그럴 시간이 없다. 당신은 준비된 부총리여야만 한다. 모든 문제에 대안을 갖고 청문회에 앉아야 한다. 그걸 국민 앞에 내놓고 평가받아야 한다. 필요하면 국회를 설득하고 국민에 호소도 해야 한다. 그 자리는 최고의 전문가, 최고의 열정이 필요한 자리다. 못하겠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자리를 던지는 게 옳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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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