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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4차 핵실험] 첫 수소탄까지…북한은 23년간 준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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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2006년 10월 9일의 1차 핵실험(규모 3.7), 2009년 5월 25일의 2차 핵실험(규모 4.5), 2013년 2월12일의 3차 핵실험(규모 4.9)에 이어서다.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하며 핵개발을 시작했다. 2006년 10월 9일의 1차 핵실험은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가 부당하다는 명분으로 강행했다. 앞서 그해 7월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대포동 2호를 쏘는 등 치밀하게 준비된 행보였다.

북한은 이후엔 유화책을 구사했다. 다음 해인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고 12월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방북해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북한은 2008년엔 CNN 등 미국 언론까지 초청해 영변의 원자로 냉각탑 폭파를 전 세계에 중계하는 언론플레이도 구사했다.

그러나 오바마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09년 5월 북한은 2차 핵실험을 실시한다. 미국의 정권 교체 후 대북 정책이 완성되지 않은 전환기 상황을 이용해 핵실험으로 허를 찔렀다.

3차 핵실험은 후견인 역할을 해오던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2013년 12월 이뤄졌다. 이명박·오바마 체제에서 남북 관계가 침체되고, 북·미 대화도 지지부진하자 역시 오바마 2기 행정부 출범에 맞춰 3차 핵실험으로 강공을 구사했다.

그간 네 차례의 핵실험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발표는 북한이 핵무기 기술 확보를 일관되게 추진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과거 "지하 핵실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했다"(1차)→"폭발력과 조종기술에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진행됐다"(2차)→소형화·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했다"(3차)고 밝혔다. 첫 핵실험 성공→폭발력 강화→소형화 성공이라는 핵탄두 개량에 한발씩 접근한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 6일 "첫 수소탄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며 "수소탄시험은 우리 핵무력발전의 보다 높은 단계"라고 주장한 것은 한 발 더 나아간 행보인 셈이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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