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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명예교수 "정의도 한쪽선 눈물 흘려…지도층은 그런 점 헤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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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권혁재 기자]


올해 팔순을 맞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새 전집을 낸다. 200자 원고지로 자그마치 5만5000쪽, 전체 열아홉 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 등 19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출간된 기존 전집 다섯 권에 전집 이후의 글, 기타 단행본, 대담 원고 등을 보탠다. 1차로 기존 다섯 권에 6권 『보편 이념과 나날의 삶』, 7권 『문학과 그 너머』를 더한 일곱 권이 민음사에서 지난해 말 출간됐다. 완간은 내년 상반기로 잡혀 있다.

그를 시대의 대표적인 인문학자, 석학, 지성으로 꼽는 이유는 단순히 전집의 물리적 압도감 때문이 아니다. 이름(우창)의 어감과 비슷하게, 그의 텍스트는 ‘울창’한 숲 같다. 문학과 철학, 자연과학 등에 폭넓게 걸쳐 있는 데다 대상의 세부와 전체, 과거와 현재를 치열하게 살핀다. 그 안에서 길 잃고 헤매다 마주치는 진실은, 인간의 삶과 세상은 결코 한 줄 설명으로 해명되지 않는 복잡하면서도 신비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4일 인터뷰도 세상살이의 복잡함에 대한 얘기로 시작했다.

계기는 이날 사진을 찍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와 이름이 비슷한 과거 제자와의 일화를 떠올리면서다. 김 교수는 “1980년대 중반 제자들이 학생운동하다 경찰에 끌려가면 유치장 찾아다니며 만나고 그랬다. 면회 신청해 위로했다. 영문과 제자도 있고, 다른 과 제자도 있었다. 그 중 한 제자의 이름이 오늘 사진기자와 비슷하다. 그들에게 마음 편하게 가지란 얘기를 많이 해줬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니까 경찰을 너무 적대적으로 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 사람들도 선 자리가 달라 그런 거지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는 얘기를 해줬다.”

 
그래도 강압적으로 다루고 때리기도 하면 감정이 좋을 수 없다.
“그 사람들이라고 당시 정부에 큰 투자를 한 사람들도 아니고, 그저 먹고 살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나. 80년이었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을 때 나도 경찰서 유치장에 한 열흘 정도 구금된 적 있다. 나중에 나를 조사했던 경찰관을 민주화된 다음에 우연히 만났는데 반갑게 악수를 청했더니 쑥스러워 하더라. 그럴 거 뭐 있나. 그 사람은 그 사람이 할 일을 한 거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한 건데.”
 
선생님에게는 그래도 경찰이 심하게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점잖게 대해줬다. 당시 서대문 경찰서에 들어가 있었는데 나중에 서강대 총장을 지낸 박홍 신부가 함께 들어와 있었다. 한 번은 경찰관이 자기도 가톨릭 신자인데 신부님을 조사하게 돼서 미안해 하더란다. 그래서 박홍 신부가 ‘당신은 당신 일을 하는 거고, 나는 내일 하는 거다’라고 답해줬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신부가 역시 경찰서에 들어가 있을 땐데 어떤 사람이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화장실로 데려가 화장실 물로 세례를 해줬다고 했다. 박 신부는 워낙 우파적인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중에 욕도 많이 먹었는데 그 일화들을 듣고 나서 신부가 참 찬찬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선생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내 한 친구의 작은아버지가 일제 때 일본 동경에 유학 갔다가 학생운동 하다 붙잡혀 경찰에 붙잡혔다. 내 친구는 이름 대면 알 만한 사람이지만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 그 작은아버지가 형무소에 있을 때 일본 스님들이 자주 찾아와 설법을 하고 위로도 했는데, 그 중 한 스님과 친해져 나중에 출소한 후 그 스님의 딸과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가 일본 스님이 된 거다. 일본 사람이 된 거지. 내 친구는 해방 후 여러 해 만에 동경 가서 작은아버지를 만나고 일본인 사촌들도 만났다.

무슨 얘기냐 하면 사람 사는 게 그렇게 복잡한 얘기가 많다는 거다. 이번 박유하 선생 문제도 그렇다. 업자들이 위안부를 데려간 경우가 많기도 했고, 일본 병사와 한국 위안부 사이에 진짜 사랑 관계가 생긴 경우도 있다고 책에 썼다. 역시 그만큼 사람살이가 복잡하다는 얘기다.

박 교수가 그런 얘기 한 것까지는 좋은데 해석에 따라, 그래서 일본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얘기냐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고, 결국 문제가 커져 고소까지 당했다. 박 교수에게 내가 그랬다. 하고 싶은 얘기를 책에 쓴 건 좋은데 그래도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다는 점을 좀 더 강조했어야 했다, 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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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권혁재 기자]

 
어떤 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는 과정에서 애초의 입장이 더 강화되고 나중에는 결국 내 편, 네 편으로 패를 가르는 이분법 흑백 논리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공적인 부분은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이 있냐 없냐 판결을 해야 하니까. 판사는 아무리 전후 사정이 복잡해도 범죄 행위를 했느냐 안 했느냐를 따져야 한다. 정치 분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박 교수의 경우 사람 개인의 차원에서 이런 일도 있었지만 공적인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선 안 된다, 그런 얘기를 했어야 한다.

아까 내가 유치장에 있었던 얘기를 잠깐 했지만 그 안에서는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야 했다. 당시 유치장 안에서 우리를 감시하던 경찰이 평소에는 편하게 앉아 있도록 하다가 밖에서 상급자가 다가오면 우리에게 이를 알려 무릎 꿇는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작은 부분에서는 움직이는 게 다 다르다. 하지만 전체적인 책임, 공적인 책임은 문제가 다르다. 박유하 선생 케이스도 공적인 차원과 개인적 차원을 구분했더라면 좋았을 거다.”
 
실은 선생님의 지금까지의 작업 전체가 바로 그런 개인적 차원의 일과 공적인 차원의 관련성을 따지는 것이었다. 개인사를 다루는 문학의 사회적 의미를 따지는 게 바로 그런 일 아닌가.
“복잡하게 생각해야 할 일을 너무 단순하게 봐 버리면 인간 현실을 잘못 파악해 버린다. 가령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가 2차 대전 때 프랑스 군으로 참전했는데 이 사람 입장에서 아무리 전쟁터라지만 독일인을 죽일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총을 안 쏜다면 전쟁이 성립할 수 없고, 전체적인 판도가 이상하게 돼버린다. 문학의 호소력은 바로 그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 하는 점과 관련 있다.

반면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그런 개인적 차원만 헤아려 어떤 결단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살이에 그런 복잡함은 있게 마련이라는 사정을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학은 물론 모든 학문 분야에서 인문학 훈련이 필요하다. 삶의 복잡한 차원이 바로 문학이나 철학이 관련된 부분이다.”

“정의(正義)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슴 아픈 사연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 한데 우리는 조선시대부터 강력한 유교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세상은 반드시 정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대로만 하면 정의가 실현된다. 하지만 정의에 희생되는 사람도 많다.

동양의 유교 전통은 윤리를 강조하다 보니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쉽다. 서양 전통에서는 강약 대결에 대한 생각이 많아 경쟁에서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 강하지만. 우리는 사필귀정, 이런 생각이 강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에 대한 의식은 약하다. 좋은 것을 너무 강하게 얘기하는 것도 인간 현실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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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권혁재 기자]

 
인문학적 사고와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는.
“모순적인 관계에 있기 쉽다. 그걸 의식하는 게 필요하다. 완전히 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것과 정책 결단, 집단적인 결단 내리는 것 사이의 모순을 의식하면서 그 모순 속에서 모순된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걸 의식하는 게 필요하다. 모순을 알면서 모순 속에서 하나의 선택을 한다, 그게 정치적인 결정의 실상이다.”

문제는 선생님이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하셔도 정치인들이 그걸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문교육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은 인문학과 다 없애고 이공계로 가야 한다고들 하는데 앞으로 인문학은 교양교육에 치중해야 할 것 같다. 교육 면에서는. 연구는 별개의 문제이고. 교양 차원에서 전체를 생각할 수 있도록 인문학 교육을 시켜야 한다. 사서삼경 배운다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기본적인 교양으로 필요하다. 그런 게 다 없어지니까 사회 혼란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런 흐름을 막을 방법은.
"뾰족한 수는 없는데, 결국 사람 마음을 바꾸는 도리밖에 없을 것 같다. 정치나 경제나 너무 공리주의적인 사고에 지배되는 게 요즘 문제다. 가령 미국과의 관계에서 이런 정책을 같이 하면 한국도 이익이지만 미국 당신네들도 이익이다, 이런 식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미국 특유의 정치적, 도덕적 이상에 호소하면 어떨까 싶다. 어떤 정치적 이상도 그 안에는 도덕적 차원이 있다.

한때 ‘용미통중’이라는 말이 외교 분야에서 많이 쓰였는데, 미국사람들이 그렇게 바보 같아서 우리에게 이용당하기만 할 것 같은가. 우리와 공통된 미국의 이상에 호소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 공리적인 사고에 휘둘리고 있다. 경제든 국가 권력이든. 그것만 갖고는 지리멸렬하게 된다. 인간사회의 도덕적, 이상적인 차원을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 특히 마르크시즘 사망 이후 비판적 관점이 아주 약해졌다. 제도를 바꾸면 사람 마음이 그에 따라 바뀐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러려면 사람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제도를 바꾸지.”

“한번은 서울시청에서 시민들 상대로 강연한 적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심이 크다는 점을 알게 됐다. 어떤 여성 분이 우리 아이 어떻게 길러야 하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보며 살도록 가르치라고 답해줬다.

뭔가 묻는다는 것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뜻한다. 내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라면 선택을 할 필요가 없지 않겠나. 한데 내 선택에는 객관적 조건이 있게 마련이다. 아들을 법대에 보내느냐 의대에 보내느냐,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인 것 같지만 실은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서 선택하는 거다. 결국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주어진 여건과 자기 선택 사이에 교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한데 그 선택은 궁극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보람을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 보람 있는 삶에서 윤리적 도덕적 내용이 빠져 있는 경우는 없다. 도덕과 윤리라는 게 하느님이 정해 어느 날 내려주거나 임금이 하사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발견한 거다. 이것 없이 살기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굉장히 어렵다는 것, 그래서 사람 사는데 필수적이라는 것, 이것은 인간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미군 병사들이 자기 책임 하에 그런 게 아니지만 평생 괴로워하면 불행하게 살았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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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권혁재 기자]


결국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는 보람과 행복인가.
“하나 더 보탠다면 자기 존재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우주 전체의 질서, 자연의 질서, 인간의 질서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초월적인 차원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정당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종교가 굉장한 호소력을 갖는 건 그래서다. 교회 가면 그런 점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또한 거대한 전체 속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선생님은 종교는 없을 것 같은데 어디서 초월적 정당성을 찾나.
“사람은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면서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지금 인터뷰하는 장소인 이 호텔 같은 무거운 집도 만들어 놓고, 나도 공부해 봤지만, 열심히 공부할 때는 세상 이치를 다 알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나는 그런 얘기 한다. 인생이 뭐냐, 군 복무와 비슷하다. 너 이거 해야 돼 하니까 하는데 뭔지도 모르고 먹고 살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복무인지도 모르면서 하는 군생활인데 하여간 죽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한국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자기 삶의 신비에 대해 생각하면 내 인생이 내 인생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누구나 영성을 가지고 있다는 불교 말씀과 비슷하다.
“맹자가 ‘구방심(求放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마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은 흩어져 있는데 그걸 가져와 쓰는 것인데도 마치 자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말이다. 오늘 어디 가서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언뜻 자기 마음을 쓰는 것 같지만 실은 진짜 자기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구해 와야 한다는 것. 흩어져 있는 것을.

사실 그렇잖나. 내가 입고 있는 이 양복을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한복 입고 있었을 거다. 나도 가끔 좋은 양복이라고 말하는데 그 얘기도 결국 동네 양복점 주인이 시켜서 하는 소리지. 자기 마음이 뭐냐, 찾기 시작하면 굉장히 어렵다. 어쩌면 우리 마음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 있다는 것.

문제는 우리(한국)의 복무 규정이 어려워 좀 쉬워져야 한다는 것. 군생활의 가장 기본이 뭐냐.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니냐. 우리가 평등 문제 많이 이야기하는데 불평등 문제 해결을 얘기할 때도 형이상학적, 철학적 반성이 있어야 한다. 너만 먹기냐 나도 먹자, 이런 평등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최소한도의 생명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차원의 평등. 권리 얘기할 때도 권리는 내 것을 내가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당신 것을 내가 존중해 준다는 생각이 보다 근본적인 생각이다. 그게 더 큰 평등이고 권리다.

우리의 아이러니의 하나는 도덕 윤리를 너무 강조하면 오히려 그런 마음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걸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게 되고 그 순간 경쟁이 투쟁으로 성격이 바뀌게 된다. 우리 유교 사상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윤리를 저버린 사람을 짐승 같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 같은데 너는 짐승이야, 이러면 경쟁관계에서 투쟁관계로 넘어가게 된다. 투쟁이나 경쟁도 현실적으로 있어야 하지만, 없으면 안 되지만, 그것을 넘어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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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권혁재 기자]


전집 얘기를 해보자. 가장 애착 가는 글이나 책이 있나.
“없다. 대작을 못 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 나는 저널리스트였던 거다. 그때 그때 나오는 신문처럼. 왜 저널리스트가 됐냐. 세상 돌아가는 일에 너무 관심이 컸다. 사람 일이라는 게 모순 덩어리여서 세상 일에 관심없이 자기 것만 하다 보면 그게 세상에 굉장히 도움 된다. 그럼 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많이 가졌냐. 우리나라가 너무 문제가 많은 사회여서다. 모든 걸 바꾼 나라 아닌가. 한국 같은 나라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의자에 앉는 것부터 옷 입는 것, 먹는 것, 제도까지. 대통령이나 총리라는 표현 대신 기능이 비슷한데 임금이나 영의정이라고 해도 되지 않나. 나는 그게 이상하다. 미국이 제도상으로 가장 새로운 나라라고 하는데 250년 정도 새로운 나라다. 우리는 어떤가. 1987년부터 불과 몇십 년 안 됐다.”

만약 학문에 전념했더라면 뭘 했었을까.
“자연과학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사실 대학 갈 때 물리학과를 갈까도 했었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다. 한데 고등학교 때 문학·철학책을 많이 읽었고 대학도 처음에는 정치학과에 들어갔는데 인간 내면에 관심이 너무 적은 것 같아 공허함을 느껴 결국 영문과로 전공을 바꿨다.”

요즘 문학 얘기 좀 해보자. 문학 위기론은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은 리얼리즘보다 세계적으로 판타지가 대세인 것 같은데, 상상력은 문학의 중요 요소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인간 실존에 대한 실감을 전달해야 하는데 판타지의 상상력이 틀린 건 아니지만 인간 삶의 근본에 대한 느낌이 좀 줄어들어 문제라는 거다. 소설도 결국 뉴스의 일종이라고 보는데, 뉴스가 많아질수록 소설의 힘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동네 사람 어떻게 사느냐가 알고 싶어 소설 보는 건데 동네 사람 얘기가 TV, SNS에서 다 해결되니까 문학의 설 자리가 굉장히 약해졌다. 설 자리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일을 하려 하다 보니 기발한 소리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시 근본 바탕으로부터 분리된다. 문학작품에 들어 있기 마련인 이데올로기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이데올로기니까 문학은 이데올로기를 품을 수밖에 없는데 동시에 그걸 넘어서는 게 문학 안에 있어야 한다. 역시 이 부분에서 유교의 폐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바른 삶인지에 대해서 주로 생각하다 보니 윤리나 도덕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런 질문은 굉장히 좋은 거지만 답은 굉장히 한정되게 되어 있다. 사람 사는 일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부분을 상실하게 된다. 존재의 신비에 대한 느낌이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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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권혁재 기자]


인간의 신비에 부정적인 속성도 포함되는 건가.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인생을 만들었을까 하는 점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고생하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하겠지만. 19세기 영국 시인 키이츠가 성경의 ‘인생은 눈물의 골짜기’라는 표현에 대해 ‘인생은 정신을 단련하는 골짜기’라고 했다. 소울 포징(soul forging), 단련해서 무쇠를 만드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얘기다. 나쁜 요소, 심지어 악마적인 요소도 세상에 있을 수 있으니 단련하라는 얘기겠지.”

최근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등 문예지 개편 바람이 불고 있다. 어떻게 보나.
“재벌이 도와주면 모를까 잡지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돈도 벌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인간의 근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서로 도와 가면서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게 없으면 굉장히 상업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우리 패냐 아니냐 가르는 것도 중요해지고.”

외국소설에 비해 요즘 한국소설 재미없는 이유는.
“소설 역시 사람 사는 신비에 열려 있어야 하는데, 한국소설은 시장에 따라, 기존 문인들의 의견에 따라 또는 자기 소신에 따라 하려고만 하는 것 같다. 학문도 그렇지만 소설도 공학적 것을 넘어서 이론적인 측면이 있어야 한다. 계속적으로 질문을 던질 대상이 있어야 재미도 있는 거고. 공학적인 부분(테크닉)은 천천히 배워도 된다. 사람 사는 일의 미스테리에 대한 느낌이 열려 있어야, 그런 열림이 있어야 오래 재미있게 쓸 수 있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왜 먹어야 하나 질문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뭔가를 섭취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양쪽으로 열려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열려 있음에 대한 불안을 견디는 힘이 약한 것 같다. 우리 소설과 시의 전통은 굉장히 옅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우리의 문예 전통은 뿌리 깊지만 다 한문으로 했다.”

지난해 신경숙 표절 논란은 어떻게 봤나.
“크게 문제 삼을 게 없다. 표절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작품 자체가 좋은 거냐 그게 문제다.”

문학권력 얘기도 나왔다.
“그것도 과연 문제 삼을 게 있을까 싶다. 문학이 실은 모든 것에 열려 있으면서도 엄격한 서열의 세계다. 서열이 없다면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 아니냐. 가치가 있다면 가치가 더 있는 게 있고 적은 게 있기 마련이다. 편집자가 가치 판단을 얼마나 잘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편집자의 판단에 따라 좋고 나쁜 작품이 가려지는 건 당연하다. 우리나라 시인이 5000명에서 1만 명쯤이라는데 그 사람들을 다 평등하게 대접해주려 했다가는 국가재정이 파탄 날 거다. 편집자의 기준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문제지만 그런 가치 판단 자체를 두고 너무 문학권력 얘기를 많이 하면 이상하다.”

한국문학의 세계화 전망은. 좋은 번역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자주 나오는데.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본다. 번역이 잘 안 돼 세계화가 안 된다는 주장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국문학이 덜 알려져 번역원에서 돈 대주고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번역 때문에 세계화되지 못했다 하는 건 너무 간단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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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권혁재 기자]

 
새 전집을 내는 소감은.
“나이 들었다는 얘기 아닌가. 옛날 쓴 글들 중에 지금 내 마음에 안 맞는 거 많지만 20대의 나와 80대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 글 보고 나랑 마음에 안 맞는다 하는 얘기와 똑같은 얘기다. 지금의 내가 과거보다 더 현명하다, 얘기하기 어렵다. 한쪽이 더 미숙하고 한쪽이 더 성숙하고 그런 건 아니다. 한국처럼 작가나 지식인이 공적인 광장, 공간에 많이 동원돼 발언을 많이 하는 나라도 참 드물다. 그건 좋은 일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그렇게 돼 있는 거고. 조선시대에는 시 쓰는 장군이 있고, 영의정 되려면 시를 잘 써야 했는데 이런 나라가 없다. 귀중한 전통인데 그걸 현대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거다. 좀 기다려봐야지. 모든 역사의 시계는 과도기이지만 특히 우리는 과도기에 산다고 하는 게 더 맞을 테니까 기다려 보면 좋은 것들이 나올 거다. 아까 내가 저널리스트가 돼버렸다고 했는데 앞으로 거리를 가지고 문제를 생각하고 근본을 생각하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사회가 구조가 좀 달라져야 하고.”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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