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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의 노벨상 이야기] 노벨상을 받으려면 ④ 과학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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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거대한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물리학의 일부 “빅 사이언스”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노벨상 업적은 10여명 안팎의 작은 실험실에서 그 첫 발견이 이루어진다. 이런 소규모 연구실은 소속기관의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니 당연히 리더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과학의 경우 리더십이란 연구실장, 소장, 학부장, 총장 그리고 이들에 대해 인사권과 예산 배분권을 행사하는 정부 공무원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노벨상의 관점에서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한 리더쉽의 사례는 “노벨상 공장”이라 불리는 영국의 LMB를 설립한 맥스 페루스와 그를 도운 윌리암 브랙 교수이다. (LMB에 관해서는 11월 24일자 본 칼럼 참조)

1914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페루스는 22살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유학 와서 4년 후인 1940년에 박사를 받았다. 윌리암 브랙은 케임브리지대학 물리학과의 그 유명한 카벤디쉬 실험실(Cavendish Laboratory)을 이끄는 교수였다 그는 엑스선이라는 방사선을 이용해서 물질의 구조를 규명하는 분야를 개척하여 그의 아버지와 함께 191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사람이었다. 브랙은 광물과 유기물에서 큰 업적을 냈기 때문에 차세대 프로젝트로서 생체 물질을 대상으로 생각했고, 페루스는 박사 과정에서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규명하고 있었다.

1945년경 브랙은 페루스를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lectureship)로 밀었으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페루스는 우리말로 하면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펠로우쉽에 생활을 의존하고 있었다. 1947년 브랙 교수는 정부, 즉 MRC를 설득하여 연구비를 따내어 카벤디쉬 내에 ‘분자생물학 유닛’(Molecular Biology Unit)을 만들고 페루스가 이를 이끌도록 했다. MRC는 미국의 국립보건원(NIH)이나 우리나라의 ‘연구재단’ 정도에 해당하는 정부산하 연구비 관리기구이다. 이 실험실의 핵심 프로젝트는 단백질과 DNA 같은 생체물질의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설립 멤버는 사실상 페루스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던 존 켄드류 두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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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lipartof.com, dreamstime.com, 123rf.com]

많은 젊은이들이 페루스의 접근 방법에 관심을 갖고 ‘유닛’에 들어왔다. 1949년 33세의 만학도 프란시스 크릭을 필두로 제임스 왓슨, 시드니 브레너, 알레산더 리치, 세이무어 벤저 등 추후 생물학사에서 굵직한 업적을 낼 젊은이들이 합류했다.

임시직 연구원으로 구성된 수십명 규모의 ‘유닛’에서 1953년에는 왓슨과 크릭이 DNA를, 57년에는 켄드류가 미오글로빈을, 59년에는 페루스 자신이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밝혀냈다. 이들 4명은 1962년 생리의학상과 화학상을 휩쓸었다. 이들의 예산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아무리 많아야 연간 50억원이 되지 않으니, 우리나라 상황에 비유한다면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만들었다는 IBS(기초과학연구원)의 한 개 사업 규모이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페루스는 MRC를 설득하여 예산을 따내고 1962년에 LMB를 설립하였고, 이후 다시 1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더 배출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LMB에서 연구하고 다른 직장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추가로 11명이나 되니 LMB가 ’노벨상 공장‘이라는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은 것이다. LMB는 지금도 유닛의 원래 정신과 문화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비록 오랜된 일이지만 ‘유닛’의 성공 비결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도 적용될 수 있는 시사점들이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유닛‘은 당대 과학계의 뜨거운 감자인 ‘생체물질의 구조와 기능과의 관계’를 연구했다는 것이다. 주제의 파악이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라는 말이다. 유념할 점은 ‘Big Question’의 하위단계에 속하는 ‘세밀한’ 정보와 지식은 아무리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수십 편 실어도 노벨상 수상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관장이 사람을 뽑을 때도, 유명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편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연구 주제가 갖는 과학적 파괴력과 그의 동기부여와 실험 능력을 평가해야함을 의미한다.

상급자 혹은 기관장이 인재를 발굴하고 관리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브랙은 외국에서 온 30대 청년인 페루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적극 후원했다. 반면 페루스는 수다스럽고 공격적 토론으로 악명이 높았던 크릭을 영입하고, 그 후에도 개성이 강하지만 동기부여가 높은 젊은이들을 많이 받아들였다.

이들은 실험실에서 살벌한 ‘자유토론’을 많이 벌였다. 페루스는 왓슨과 크릭이 매일 싸움하듯이 토론해서 시끄러워 혼났다고 했다. 왓슨과 크릭이 처음에 제시한 DNA 모델이 틀려서 카벤디쉬의 수장(首長)이던 브랙이 망신을 당하자, 브랙은 이들이 DNA 연구하는 것 자체를 금지시켰다. 엑스선 사용의 선구자인 자신보다 더 많이 엑스선을 알고 있다는 듯이 거만을 떠는 수다쟁이 크릭에게 감정이 상해서 그랬다는 풍문도 있다. 그러나 몇 달 후 크릭이 미국의 경쟁자 라이너스 폴링의 모델도 틀리다면서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브랙을 설득하자 그는 금지령을 풀고 다시 그 연구를 허락했다. 이로부터 불과 몇 주 후 왓슨과 크릭은 역사적인 ‘이중나선’ 구조를 푼다. 사적인 감정보다는 과학의 추구와 진보를 더욱 중요시 여기는 상급자의 덕목을 엿볼 수 있다.

LMB 설립 후 페루스는 그 자신이 연구원 모두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세미나는 지적 순발력이 뛰어나지만 무례할 정도로 거친 비평을 서슴지 않는 크릭이 주관하도록 했다. 과학의 치어리더와 코치 역할에 적격인 사람을 고른 것이다. 페루스는 구내식당의 분위기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아침에는 커피를, 점심에는 식사를 같이 하면서 많은 토론을 했다. 이러한 만남에서 역사는 시작되고 성숙되었다.

페루스는 연구자들의 이기심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연구소에서 모든 기기는 공유하였고 실험실도 상호 개방하여 특정 개인이 독점하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정부 지원으로 구입한 기기와 시설의 사유화는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 하나를 소개한다. 왓슨과 크릭 등 많은 젊은이들은 페루스 밑에서 일하는 구조였고, 브랙은 페루스의 상급자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랙과 페루스는 이들의 업적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아이디어와 실험 그리고 데이터 분석을 젊은 과학인들이 주도하였기에 그랬겠지만, 포닥 혹은 연구교수 같은 아래 사람들의 업적은 다 자기 것이라 생각하는 우리나라 시니어 교수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 몇 년간 과학고 출신 학생들을 접해 보니 ‘유닛’의 젊은이들과 같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젊은이들이 꽤 있는 것 같다. 똑똑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연구를 하고 싶어한다. 특히 노벨상 같은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젊은 나이부터 이들이 야망을 갖고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기(氣)와 흥(興)을 살려주는 문화의 조성이 필요하다.

페루스와 같은 운영 방식이 우리나라에서 작동할 수 있을까? 그가 한 것이라야 시대의 중요한 과학 이슈를 연구주제로 선정하고, 능력과 동기부여가 높은 인재를 뽑고, 그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이런 운영 방식을 도입하는 데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해당 분야에서만이라도 과학의 거시적 흐름을 이해하고 이를 인재 선발과 연구 관리에 적용할 수 있는 현명한 리더가 있으면 된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리더가 안 나오는 것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해당 분야에서조차 거시적 차원에서의 이해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드문데다, 관리 능력까지 갖춘 리더는 더욱 희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전근대적 연공서열 문화 속에서 젊은이들이 창의성과 기(氣)를 펴기 힘든 대학, 예산배분권을 갖고 미세한 부분까지 개입하며 단기 실적을 요구하는 관(官), 합리적 감시보다는 폭로를 선호하는 국회 등 R&D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들 간에 복잡한 정치상황이 깔려있다. 다음 회에서는 LMB 사례를 중심으로 예산권을 가진 사람들이 가져야할 리더십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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