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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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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새해가 밝았다. 어릴 적 받은 교육의 효과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해야 할까.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마다 반복되는 이 작업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실패한 경험이 적지 않은지라 계획이 잘 실행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벌써부터 앞서기 때문이다. 계획이 클수록, 그리고 시도가 새로운 것일수록 그러한 불안은 커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예술가다. 그중에서도 특히 작곡가가 그렇다.

 소설이나 그림은 작가의 손을 떠나자마자 바로 감상될 수 있지만 음악은 작곡가가 어렵사리 작품을 완성했다 해도 즉시 감상될 수 없다. 악기나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파장으로 변환돼 우리 귀에 들리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음악이 탄생되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종이 위에 창작을 해놓았더라도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그러니 작품이 최초로 연주되는 초연은 음악의 본격적인 탄생을 알리는 매우 특별한 사건이다. 초연에는 늘 기대와 불안이 상존한다. 그리고 초연일이 다가올수록 기대보다는 불안이 커지는 법이다. 처음 연주해 보는 작품이다 보니 연주자들에게 곡이 낯설기도 하고 연습도 충분하지 못해 이래저래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청중이다. 처음 듣는 생소한 작품에 청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소란스러웠던 초연은 스트라빈스키의 유명한 발레 음악 ‘봄의 제전’일 것이다. 객석은 공연이 시작되고 처음 2분까지만 조용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여기저기 “부우” 하는 소리와 함께 조롱과 비웃음이 터져나왔다. 마치 홈경기에서 패배했을 때 광팬들이 보이는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청중은 큰 소리로 발을 구르거나 휘파람을 불어댔으며 손에 잡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무대를 향해 던졌다. 봄의 신을 달래기 위해 젊은 처녀를 희생 제물로 바친다는 발레의 내용도 생경했지만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역시 당시 청중에게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소란 속에서도 음악이 중단되지 않고 끝까지 연주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회상한다. 소동이 더 심해지자 결국 경찰이 출동했고 스트라빈스키는 도망가듯 무대 뒤쪽 창문을 통해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초연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평은 크게 엇갈렸다. 스트라빈스키의 실수를 질타하고 조롱하는 비평가도 있었지만 광분한 관객 때문에 공연을 제대로 듣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비평가도 있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이 혹독한 초연이 서른한 살의 스트라빈스키를 파리 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로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초연이 실패한 사례는 그 밖에도 많다. 비제의 ‘카르멘’ 역시 실패한 초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오페라는 내용이 너무 과격해 애초에 극장으로부터 상연 허가를 얻어내는 데도 애를 먹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서민적이면서도 우아한 오페라 코미크가 유행하고 있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줄거리는 심각하지 않아야 하고 마지막은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했다. 음악도 크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친숙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을 선호했다. 이에 반해 비제의 오페라는 치정과 밀수, 살인같이 매우 거칠고 잔혹한 내용에다 생명보다 자유를 갈구하는 팜파탈을 부각시켰으니 그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관객의 차가운 외면 속에 초연은 참담한 실패를 기록하고 만다.

 초연에 실패했다고 해서 끝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봄의 제전’도 ‘카르멘’도 실패한 초연 덕분에 뜻밖의 관심과 유명세를 얻었으니까. 혹시 새해를 맞아 새롭게 시작하려던 계획이 있는가. 불안해도 꼭 한번 시도해 볼 일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예 성공할 기회조차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오히려 새해인데도 아무런 기대나 계획조차 없는 것이 아닐까. 지난해가 아무리 힘들었어도 새해는 긴장과 설렘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삶이 우리를 배신할지라도 언젠가 기쁨의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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