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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자만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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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김
CBOL 대표
태평양세기연구소 공동창립자

가끔씩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곤 한다.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가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스낵을 먹고 있다. 승리와 수상의 순간들이 담긴 비디오를 보고 있는 챔피언의 배는 불룩하다.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면서 앞으로의 경기에서도 힘든 훈련을 거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있다.

 사업가인 나는 혹시 우리 회사를 곤경에 빠뜨릴지도 모르는 새로운 트렌드를 간과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달고 다닌다. 그래서 언제나 변화에 대해 안테나를 세우고 미래에 시선을 집중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나는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자주 한국을 찾곤 했다. 최근에는 몇 달 정도 장기 체류한 적도 있다. 오랫동안 머물다 보니 고국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국이 자만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앞서 언급한 뚱보 챔피언처럼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가 그저 편하게 지내고 있으면 앞으로의 역경도 무난하게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최근 서울에 머물며 한국 사무소에서 근무할 젊은 인력을 선발하기 위한 면접을 하기도 하고 한국의 엘리트 그룹과 토론 모임도 열고, 안보 포럼에 나가 강연을 하기도 했다. 서울 거리를 거닐며 두루 살펴보기도 하고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들로부터 그들만의 특별한 지혜가 담긴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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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에 대해 시급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그저 재벌들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겠지, 그들이 고용을 늘리도록 다그쳐서 실업과 저고용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방안이 유일한 것처럼 보인다. 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따르는 근로자의 재교육이나 구조조정 문제도 재벌이 비용을 떠맡도록 하는 방안 말이다.

 경제의 활력은 새로운 회사와 새로운 기업의 성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세계 각국의 연구와 실험 결과다. 고용 붐의 창출도 중소기업으로부터 오게 돼 있다. 이런 중소기업들이 고용이나 해고를 보다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도록 고용 관련 규정을 바꾸려는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경직된 노동관계법은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을 만들어내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1인 가정의 증가나 낮은 출산율 등 사회적인 문제까지 야기하게 된다.

 내가 면접을 본 몇몇 대학 졸업자의 태도에서도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국내외에서 부모들의 돈을 써가며 서류상으로는 인상적인 경력을 만들었지만 열성적으로 일하려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지나치게 부풀려 평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해 5월 취업준비생 63만3000명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 결과 34.9%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고 18.9%만이 사기업에 취직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 한국 젊은이 10명 가운데 3~4명이 공직을 원하고 있으니 공무원 일자리를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무원을 먹여 살리는 부(富)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민간 기업 분야다.

 정치적으로도 보수나 진보 양 진영 인사 모두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데는 분명히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그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시급성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경찰과 시위대 양측을 합쳐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돈과 인력이라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시위에 낭비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정착된 질서정연한 민주적 절차가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그런 절차는 교착상태에 빠지곤 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교과서가 가짜라고 생각이 들면 교사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상관없이 교과 내용과 관련된 수천 가지의 대체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디서나 흔히 보게 되는 지정학적 자만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한·미 동맹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북한 문제나 중국의 부상, 일본의 재무장이나 러시아의 태평양 중시 정책에 과민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듯하다. 보수든 진보든 미국이 우리를 보살펴주고 있으니 미래에 대비한 초당적이고 결속력 있는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헐뜯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중국·일본·러시아라는 고래에 둘러싸인 새우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물론 한·미 동맹이 기반이 돼야 하겠지만 남북한 모두 각성해 태평양 시대인 21세기에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굳건한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20세기 초에도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 한국은 이제 그만 소파에서 일어나 몸을 만들어야 한다.

스펜서 김 CBOL 대표·태평양세기연구소 공동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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