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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 34회] 최상용 전 주일대사 "불가역적 한일 위안부 협상, 현실성 없다"

광복 70주년·한일협정 50주년을 맞은 지난해 말, 한일 양국 간의 최대 외교 현안이었던 한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됐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시민단체,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 ‘오랜만에 타결된 협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4일 오후 2시 30분에 생방송 된 중앙일보 인터넷 방송 ‘직격인터뷰’ 34회엔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전 주일대사)가 출연했다. 최상용 교수는 도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2000년 초부터 2년 동안 주일 대사를 지냈다. 이날 방송은 위안부 협상을 화두로, 한일 관계 전망에 대해 다뤘다.
 
다음은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와 최상연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일문일답 전문.

-한·일 양국이 지난주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격 합의했다. 위안부 동원의 책임을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피해 할머니 지원 사업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최교수는 한·일 간의 위안부 협상을 어떻게 보나.
“이번 합의는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결단에 미국의 권고가 더해져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는 ‘한일 관계에 있어서 최악의 상황은 막아보자’라는 노력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겠으나, 그 협상 과정을 관찰해보면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 오판이 있다. 하나는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과의 의미 있는 소통이 부재했다는 거다. 설명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소통을 해야했다. 소통을 하기 위한 대통령의 능력은 충분했으나, 이를 진행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사후설명에 그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최종적 및 비가역적 해결이었다는 거다. 일본에서는 ‘우리에게 계속 사과를 거듭해서 요구한다. 이제 끝을 내자’ 하는 분위기가 있어왔다. 따라서 아마 일본으로부터 강력한 요구가 있었을 거다. 우리 입장에서는 과거부터 언제나 '망언 논란'이 있었다. ‘이제 그만 하자’는 양국의 희망사항이 있어서 타결되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미숙한 것 같다. 한일간의 문제를 비가역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첫 번째로는 소통 부재라고 하는 태만적 요소가 문제였고, 두 번째로는 미숙함이 문제였다.”

-불씨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위안부 문제는 일단 협상이 타결돼 한·일 관계는 큰 고비를 넘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일 간에는 독도 문제·야스쿠니 신사·역사 교과서 왜곡 등 휘발성 강한 현안들이 상존해 있다. 최 교수가 주일 대사로 근무하던 김대중 정부 때도 일본 교과서 문제가 급부상해 정부로부터 일시 귀국 조치당한 적이 있다고 알고 있다. 교과서 문제도 완전히 끝난 게 아니지 않은가.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한일 간에, 어쩌면 영원한 3대 난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독도문제고, 둘째는 교과서문제이며, 셋째는 야스쿠니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5천만 우리 국민과 1억 2천만 일본 국민 모두가 대만족 하는 결론을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차선, 때로는 차악의 선택해야 한다. 교과서 문제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의 2년 대사 시절을 회고할 때 사람들이 그 때를 ‘한일 밀월 시대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전반부 1년은 밀월이 아니었다. 정말 어려웠다. 외교용어로는 ‘외교협상차’라고 했지만, 사실상 소환을 당하기도 했다. 그만큼 어려웠다. 이처럼 교과서 문제, 역사 문제는 보통이 아니다. 나의 경우 역사 문제에 있어서는 우선 사실의 확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 다음에는 사실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 이때 확인된 사실은 고쳐서도 안 되고 은폐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문장을 인용하고는 한다. 하나는 우리 모두가 아는 세계적인 역사 학자인 랑케가 한 말로, ‘하나의 확인된 사실은 하나의 신이다’라는 말이다. 그만큼 확인된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나는 조금더 부드럽게 ‘확인된 사실은 모래 위에 쓴 글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건 인정해야한다. 문제는 해석이다. 같은 사실을 가지고도 해석에 있어서는 남녀가 다르고, 국적에 따라 다르고, 같은 일본사람끼리도 다르다. 적어도 해석의 다양성, 즉 해석의 차이는 지적 관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과서 문제는 이 두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독도 문제는 역시 한·일간에 가장 큰 현안이다. 앞으로도 이 문제는 계속 반복될 텐데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독도 문제와 교과서 문제는 간접적으로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교과서 문제를 먼저 마무리 짓겠다. 외교를 할 때에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면서 하기 때문에, 우리가 납득이 되는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대다수의 일본인도 그것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가령, 아까 말한 데로 후반부 1년은 좋았다. 특히 우리가 문제 삼던 교과서를 일본에서 채택한 비율의 숫자를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0.039%였다. 이는 우리 국민이 가장 나쁘고 왜곡되었다고 보는 교과서를 채택한 일본 국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주국가의 교육위원회가 아무런 압력 없이 자발적 선택했을 때 0.039%가 나왔다는 것은 0%보다 설득력이 있다. 우리의 주장이 상당히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합리적으로 말하면 교과서 문제를 극복 할 수 있듯, 독도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독도 문제도 교과서 문제처럼 모든 국민이 찬성할 수 있는 모범 답안은 낼 수 없다. 다만 내가 보기에 독도 문제의 최선의 결론은 ‘현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책임자라면 그 길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라 본다. 우리가 보통 '현상 유지'라고 하면 매력적이라고 하지 않지만, 우리가 말하는 현상은 한국의 실효지배를 포함하는 것이다. 영토문제에서는 대게 실효지배한 쪽이 유리하다. 이것을 평화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무력을 사용한다든가 도전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도전을 일본이 먼저 해서 우리가 울분을 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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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간의 영원한 문제 중 야스쿠니 문제를 언급했다. 지난달 위안부 협상이 타결되는 날에도 아베 총리 부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서 위안부 협상의 진정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도 계속 현안이 될 것 같다.
"과잉 기대를 하면 실망하게 마련이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야스쿠니 문제는 독도나 교과서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일본 자신의 문제다.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 서너 가지의 답이 나와있다. 첫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련해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이웃나라도 문제를 제기하니까 별도로 제 3 시설을 만들자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과 중국이 문제 삼는 것이 14명의 전범 문제이니, 이에 관련해서는 분사하자는 거다. 심지어 분영, 영혼을 따로 하자는 말도 나온다. 세 번째는 참배를 하되 이웃나라가 문제를 제기하니, 적어도 총리는 참배를 자제하자는 거다. 지금 누구보다 참배를 하고싶어 하는 건 아베 총리다. 그렇지만 자제중이다. 즉, 일본이 세 번째 답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 내에서 답이 나와있는 거다. 우리가 너무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상황에 따라 비례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과잉 대응이나 과잉 기대는 자제해야한다."

- 사실 김대중 정부는 한·일 관계에 관한 한 역대 정부 중 성과를 많이 냈던 시기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게 한·일 관계의 전범으로 꼽히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인 것 같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떤 점 때문에 그런 성과가 나왔다고 보나.
“‘김대중-오구치 공동선언’에 내가 참여했기에 기억이 생생하다. 우선 일본에서는 ‘그 이상의 합의가 없다. 역사 문제에 대해서 양국의 수뇌가 합의한 가장 훌륭한 모델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별로 안 한다. 어떻게 보면 김대중 정권 때의 합의니까 피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합의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라야마 총리는 상당히 양심적이었지만, 당시의 담화에서는 일본의 전후 문제를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기만 했다. 거기엔 한국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김대중-오구치 공동선언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에 대해서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한다'고, 당시 사회당이 아닌 자민당 총리가, 즉 아베 총리의 선배와 우리나라 대통령이 합의한 거다. 그 이상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것만 잘 지키면 큰 문제는 없다.“

-최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1998년 일본을 국빈 방문할 특별수행원으로 도쿄에 가서 김 대통령의 국회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다. ‘기적은 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만들어 냈다고 알고 있다. 어떤 의미를 담았는가.
"처음에는 'Miracle doesn't happen miraculously'라고 영어로 생각했다. 우리의 기적은 한강의 기적이고 이건 전세계가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의 민주화도 기적이다. 아시아의 28개 나라 중 피를 흘려서 민주주의 쟁취한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일본은 150여년의 세월 동안 학습을 통해 민주주의를 천천히 이루어나간 선진국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얻은 것이다. 이것도 기적이라고 보고,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적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한·일 두 나라가 1965년 국교를 수립할 때까지 회담 과정엔 1960년부터 파란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이런 선택을 어떻게 보는가. 더 나아가 정치학자로서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또 이승만, 김대중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나.
“우선 그때도 한일 협정 반대운동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한일 회담 반대 운동에 참가하지 못했다. 당시 군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원해서 군대에서 훈련받고 있던 때라 상황 판단도 할 수 없었다. 한일회담을 포함해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내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동안 나는 정치학자로서 '정치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인가'하는 자문을 수없이 해왔다. 정치가는 정치과정에서 정치권력 투쟁을 하고,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고,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업적을 내서 종합적으로 평가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큰 정치가는 찬반토론을 치열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건국에 종사한 이승만 대통령, 산업화를 이루어낸 박정희 대통령, 민주화를 이루어낸 김대중 대통령이 큰 정치가라고 본다. 나는 4.19혁명 때 나갔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승만의 탁견을 높게 평가한다. 또,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박해받은 사람이긴 하지만 산업화의 공적은 움직일 수 없다고 본다."

-새해를 맞아 이제 막 최 교수의 말하자면 회고록이 출판됐다. 그런데 집필 방식이 좀 특이해 보인다. 회고록이라면 보통 본인이 쓴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가 4명의 일본 정치학자이고, 최 교수가 정치학자의 한·일관계 대한 질문에 답한 것을 그대로 풀어놓았다. 한마디로 녹음 자료다. 그래서 책 제목은 ‘중용의 삶’이라고 돼 있지만 ‘한일관계에 대한 성찰, 오럴 히스토리 기록’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듯하다. 오럴 히스토리(oral history)가 뭔가.
“국제 관계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으로 회고록·참회록·독백·고백이 대단히 중요한 1차 자료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이렇게 하면 주관적인 판단과 선택이 앞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 정당화의 모습이 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오랄 히스토리, 즉 구술사는 전문가가 문제의식에 따라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고, 이를 토대로 대답을 끄집에내기 때문에 객관성이 높다. 이는 국제 연구의 한 가지 방법이고 그 대상이 내가 된 거다. 내가 대상이 되었을 뿐이지만, 책에는 대화 인용뿐만이 아니라 나의 70년 인생이 들어있다. 그래서 책이 ‘1942년 경주에서 태어나다’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나로서는 두렵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했다. 물론 큰 시각은 한일관계다. 또한 이건 일본에서 나온 '책'이 아니라 '연구 보고서'다. 이걸 우리가 처음으로 한국어로 번역해서 출판한 것이다.”


정리 김유진 인턴기자 kim.yoojin@joongang.co.kr
촬영 김세희·이진우·임건·장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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