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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들어라, 의재 허백련 선생 일갈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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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련

‘전통회화 최후의 거장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겨울바람에 나부끼는 현수막에서 유독 ‘최후’라는 말이 눈에 걸린다. 그 앞에 놓인 ‘전통회화’가 맘에 걸리고, ‘거장’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광주광역시 하서로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조현종)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오랜만에 희미해진 단어들을 만났다. 의재 허백련(1891~1977) 특별전은 이 모든 의미들을 되새기게 만드는 자리다. 오늘 우리가 흔히 부르는 ‘예향(藝鄕)’의 연원을 더듬는 길이기도 하다.

국립광주박물관서 특별전시회
남도 예향 일군 전통 남종화 거장
그림·글씨 100여 점에 화실도 재현

 거장이 떠난 방은 고즈넉했다. 기획전시실 안쪽에 재현한 의재 허백련의 화실은 정갈하면서도 준엄한 향취를 풍겼다. 흰 화선지 앞에 가지런히 놓인 붓과 먹은 40년 전 떠난 큰 어른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전통에 충실한 남종화(南宗畵·동양화의 한 분파로 북종화에 대비해 감흥을 존중하며 부드러운 준법을 쓰는 화풍)의 맥을 이어 최후의 꽃을 피운 의재의 예술혼이 100여 점의 그림과 글씨로 피어났다. 고인의 일갈이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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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광주박물관 2층에 재현된 의재 허백련의 ‘춘설헌’ 화실. 의재의 손때 묻은 붓과 먹이 가지런하다. 소박하고 부드러운 그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品)이다. 본래 화품(畵品)이란 것은 기교가 있은 뒤에 그 기교를 초탈한 자유의 경지에서 나오는 법이다. 따라서 선인 대가들의 전통과 기교를 배우고 난 뒤라야 형상을 벗어난 영원한 생명의 자기 예술이 가능한 것이다.”

 광주 운림동 춘설헌(春雪軒)에 머물며 후학들을 모아 연진회(鍊眞會)를 만든 의재는 수백 명 제자를 기르며 남도 전통화단의 밭을 일궜다. 그의 산수화는 선이 부드럽고 소박하며 흥이 넘쳐 한국적이면서 호남(湖南)의 정취를 담았다는 평을 들었다. 사군자를 비롯해 화조와 영모화는 물론 서예와 문장도 두루 출중했다.

의재가 즐겨 쓴 ‘홍익인간(弘益人間·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은 하늘과 땅, 사람을 사랑하자는 자신의 ‘삼애사상(三愛思想)’과 만나 농업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회교육가로 뻗어나가는 의재의 핵심 사상이 되었다. 그는 1937년 광주에 정착한 뒤 77년 86세로 타계할 때까지 오로지 남도와 남도인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을 보냈다.

 전시를 기획한 박해훈 학예연구관은 “날로 심화되는 한국화의 위기 속에서 전통회화가 어떻게 정체성을 지키고 자생력을 키울 것인지, 보수성과 형식주의 경향을 극복하고 어떻게 동시대성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인지, 의재가 걸어간 발자취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현종 관장은 “왜 광주를 예향이라 부르게 됐는지 뿌리를 되새겨야겠다는 뜻을 읽어 달라”며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머물지 않고 교육자이자 사상가로 지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의재의 선비 정신을 기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람객은 사진가 주명덕(76)씨가 1970년대에 찍은 의재의 초상화 여섯 점을 만난다. 흑백 사진 속에서 형형한 의재의 자태는 새삼 거인이 광주 지역에 드리운 그림자를 엿보게 한다. 전시는 2월 21일까지. 062-570-7000.

 광주광역시=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허백련=근·현대를 대표하는 한국화가. 1891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8세 무렵부터 운림산방을 드나들며 일가인 미산 허형에게 그림을, 유배된 대학자 정만조로부터 한학과 시문, 글씨를 수련했다. 1912년 일본에 유학해 남종화의 정신과 기법을 닦아 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1등 없는 2등상을 받았다. 광주에 정착한 뒤 고법(古法)에 충실한 남종화 부흥운동을 벌이는 한편으로 춘설차(春雪茶)를 생산하고 농촌지도자 교육과 단군사상 부활 등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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