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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성이 없으면 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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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논설위원

어지러운 첫날이다. 결국 혼돈 속에서 새해를 맞고 말았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지난해와 차이 날 것 같지 않은 올해지만 그래도 굳이 낡은 것과 새것을 구별하는 건 뭔가 끊고 맺음, 새로 펼침을 위해설진대 지난해의 구차한 뒤꽁무니를 잘라내지 못하고 끌어내오고야 말았다.

혼돈 속에서 맞은 병신년 새해
동주공제로 도약할 수 있으려면
올해 총선에서 누굴 뽑아야 할지
눈을 부라려 제대로 살펴야 한다


 백성들의 삶보다는 자당, 계파의 생존만 보이는 정치권이 초래한 입법 마비는 말하기조차 입 아프다. 석 달여밖에 남지 않은 총선의 선거구 획정을 안 하고 있고, 여야가 어렵게 합의해 올린 안건조차 법사위 테이블에서 정쟁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국가비상상황’으로 치달아(또는 내몰아) 대통령이 긴급명령권을 발동한다는 음산한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다. 그럴 경우 정국이 요동칠 게 뻔하고 가뜩이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우리 경제는 또 한차례 딴죽이 걸려 뒷걸음질치고 말 게 자명하다.

 좀 더 걱정스러운 건 한·일 관계다. 미래를 위한 상생의 기회라는 기대와는 달리 양국 외교장관 합의에 대한 비판이 점점 거세지는 모양새다. “내가 사과할게. 그런데….” 개인 간에도 결코 사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 ‘토 달림’이 두 나라 정부와 민간이 복잡하게 얽힌 관계에서 진정한 사과로 들릴 리 만무하다.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과 “총리 자격으로의 사죄와 반성”이라는 제법 의미 있는 진전이 “이제 더 이상 사과 없다”는 토의 그림자에 묻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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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더 딱한 것은 우리 정부다.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일본의 딴소리를 두남두는 사정이다. 일본 언론 보도가 계속 나왔는데도(게다가 거의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사전에 위안부 할머니들한테 설명 한마디 없었다는 것은 나중에 설득하려고 차관을 보낸 것만큼이나 큰 실수요 문제다. 우리 스스로 위하지 않는데 어찌 일본이 위해주기를 기대할 수 있겠나 말이다. 그런 무심함들이 나름 애쓴 보람을 날려버리고 한·일 간의 긴장을 올해까지 끌고 온 것이다. 그런 갈등이 얼마나 더 연장돼 앞으로 나아가는 데 써도 모자랄 에너지를 소모시킬지 걱정이 앞선다.

 위정자들에게 기대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늘 그렇듯 백성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정부의 무능에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중소기업들이 우선 그렇다. 그들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가장 어려운 한 해가 됐을 지난해를 ‘불요불굴(不撓不屈)’로 요약했다. 어떠한 악조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견뎌냈음을 스스로 대견해하는 것이다.

 60%가 넘는 중소기업들이 2016년 경영전략으로 ‘경영 내실화’를 꼽을 만큼 대내외 경제여건이 좋지 않을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동주공제(同舟共濟)’를 선택했다. 철천지원수인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들이라도 한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과거처럼 싸우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손자(孫子)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말이다. “양쪽 어깨에 붙은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처럼 서로 도울 것이다.”

 철 지난 이념 갈등, 끓어오르는 세대 갈등을 모두 접고, 난국을 이겨내는 데 힘을 모으자는 중소기업인들의 염원이 담겼다. 원수도 손을 잡는데 풍전등화 속에서 한 민족 한 백성끼리 다툴 일이 뭐 있겠나 말이다. 제발 정쟁을 멈추고 어려운 경제환경을 극복하도록 도와달라는 위정자들을 향한 절절한 바람이다.

 새해를 맞는 상공인들의 소망도 눈물겹다.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이 올해의 한자로 ‘도약할 도(跳)’를 꼽았다고 한다. 지난해를 ‘어려울 난(難)’으로 풀이했던 그들이 올해는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경제상황을 뛰어넘어 새롭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어찌 그들만의 소망이랴. 절망적인 청년실업의 그늘 속에서 신음하며 ‘헬조선’ ‘흙수저·금수저’를 외치는 젊은 세대와 그에 공감하면서도 전혀 도움이 돼주지 못하고 있는 기성세대 모두의 바람이 같을 것이다.

 한 배를 타고 힘을 합쳐 폭풍우를 이겨내기 위해, 그래서 다시 한번 재도약하기 위해 올해는 참으로 중요한 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올해 우리의 숙제를 한 글자로 잘 요약했다. 바로 ‘살필 성(省)’이다.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대로 된 선량을 잘 살펴 뽑아야 한다는 말이다.

 19대 국회가 국민의 80% 이상이 잘못했다고 평가하는 문자 그대로 ‘공해(公害)’에 가까운 최악의 국회였다지만 그게 다 유권자들 책임이다. 산적한 민생법안 처리를 나 몰라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 불체포특권 포기, 국고보조금 사용처 공개·검증 같은 약속은 안 지키며 대신 신용카드 단말기를 사무실에 비치해놓고 시집을 팔고, 로스쿨 졸업시험에 낙방한 아들을 구제하려고 학교를 찾아가며, 보좌관의 월급을 자기 개인 경비로 쓰는 사람들을 우리 손으로 뽑은 것이다. 그런 ‘대(對)국민 사기꾼’들한테 이 나라 정치를 맡겨놓았으니 갈수록 힘들어지는 살림살이가 어찌 되지 않을 수 있겠나 말이다.

 어떤 사람을 국민의 대표로 뽑느냐는 국가경쟁력뿐만 아니라 내 삶의 질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어떤 실력자와 친하다고, 어느 지역 어느 학교 출신이라고, 누가 싫다고 다른 사람 아무나 뽑아서는 그런 사기를 또 당하고 만다. 누가 국민만을 바라보고 양심을 지키며 열과 성을 다해 일할 사람인지 잘 살펴야 한다. 성(省)이 없으면 도(跳)도 없다.

글=이훈범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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