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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위안부 문제,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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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광복 70주년, 한일협정 50주년을 맞는 지난해 세밑에 타결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과 일본 두 정부의 ‘최종 해결’ 선언은 우리를 깊은 인간적 당혹감과 부끄러움으로 몰아넣는다. 이 시대 인간과 세계시민에게 위안부 문제는 국가의 국가됨과 인간의 인간됨을 가장 아프게 묻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장 도덕적이며 가장 보편적인 인권 문제요 인간 문제로서 결코 한·일 간의 민족주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에게 가한 전체주의의 전쟁범죄와 성폭력에 대해 세계가 어떤 자세로 접근할 것인지를 묻는 세계 문제인 것이다. 전체주의의 전쟁범죄가 ‘국가 간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선언으로 종식된다면 법적 시효조차 없는 ‘반(反)인도 범죄’와 ‘반평화 범죄’에 대해 인류는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가해자가 피해자 윽박지르게 될
초유의 역전 상황이 초래됐다
본질적 인간 윤리문제 제기할
피해자와 세계 시민들을
옹졸한 인간들로 만들어버린
우리가 너무 부끄럽다

 국가 간 공방을 넘어 차분하게 묻자. 그동안 무엇이 규명되고 해결되었는가? 첫째, 진상규명이다. 한·일 두 정부나 국제기구에 의한 공동 진상조사와 보고는 있었는가? 둘째, 국제법적·인도적 전쟁범죄의 공식 인정과 사과가 있었는가? 셋째, 보상과 배상은 있었는가? 넷째, 인류가 함께 기억할 추모시설은 건립하였는가? 다섯째, 재발 방지 약속이 있었는가?

 아직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최종 해결을 말하는 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관용에 관한 이론들이 말하듯, 피해자가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이전에 가해자가 먼저 그것을 말하는 것은 2차 가해다. 추모를 위한 민간 자율의 장소마저 정부 간 합의를 통해 철거하고 이동할 수 있다는 오만은 2차 가해의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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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의 동의 없는 가해자에 의한 종결 선언은 있어선 안 된다. 대통령이 강조한 ‘피해자들과 국민이 납득할 수준’을 말한다. 그러나 합의 이전에 피해자들과의 최소한의 대화조차 없었다. 청와대·정부·관료·여당이 피해자들의 납득을 숙고했다면 이런 일방통행은 없었을 것이다. 경멸은 언제나 자기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를 경멸하기 이전에 인간은 누구로부터도 먼저 경멸당하지 않는다. 특히 국가는 국민을 먼저 경멸받게 해선 결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말한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국가의 국민 경멸로 인해 이제 갈등의 한 축이 한국사회 내부로 옮겨오는 상황을 맞고 말았다.

 게다가 ‘피해자가 납득하지 않은’ 약속 때문에 이제부터는 ‘가해-피해’ 갈등전선에 더해 약속위반 공방이 더해질 것이다. 이 문제는 당연히 가해국이 더 공세적일 것이다. 민간사회의 국제기구에의 호소와 위안부 인권운동조차 합의 위반이라고 공격받게 될 것이다. 전쟁범죄와 인권에 대한 국제법과 국제합의의 역사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윽박지르게 될 초유의 이 역전 상황은 피해 국가의 동의하에 초래되었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이는 “병든 자들이 건강한 자들을 병들게 하는” ‘전도된 세계’다. 그러나 “그렇게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틀림없이 지구상에서 우리의 최상의 관심사여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말한 ‘시간적 시급성과 현실적 여건’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건국 과정의 반공과 친일의 교환이라는 이중기준은 재연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5·24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 과거사 사과,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해 정부는 매우 비타협적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대승적이다. 위안부 ‘인권 문제’를 넘은 한·미·일 ‘군사협력’은 이제 가속화할 것이다. 건국 과정에서 친일을 덮으려 반공을 앞세우고, 반공을 위해 친일을 포용했던 오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는 동일한 전체주의의 산물인 ‘위안부 인권’은 경제 지원으로 무마하고, ‘북한 인권’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체제 문제라는 이분법은 거둬들이기 바란다. 위안부 인권 문제는 한·일 협력을 위해 희생돼야 하나 북한 인권 문제는 남북협력이 필요하더라도 양보해선 안 된다는 이중 기준도 거둬들이기 바란다.

 이번 합의는 대통령이 설정한 최후선인 ‘피해자들과 국민의 납득’이 없었으므로 무효다. 정부는 협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회는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한·일 두 나라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위한 공동 진상조사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세계 양심 인사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감사했던 이유는 묻혀 있던 인류의 집단범죄가 그분들의 감연한 자기희생적 용기로 인해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숭고한 결단을 이렇게 봉합해 본질적인 인간윤리 문제를 계속 제기할 피해자들과 세계시민들을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옹졸한 인간들로 만들어버린 우리가 너무 부끄럽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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