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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87만 종 보관 ‘씨앗계 노아의 방주’…전기 끊겨도 200년간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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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스발바르 종자보관소. 100여 개국에서 보내온 쌀·콩·밀 등 다양한 종자들이 있고, 특히 콩만 4만 종이 넘는다. 핵전쟁, 소행성 충돌, 지진 등에도 견디도록 설계돼 있다. [홈페이지]


 세계가 테러로 몸살을 앓는 와중에도 인류 공동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하고 있는 곳이 있다. 100여 개국에서 온 씨앗들이 보관되는 세계 종자(種子)보관소가 그곳이다. 종자보관소는 약 87만 종의 종자 샘플을 보관 중이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종자보관소’ 헬렌 소장
재해·핵폭발로 인한 식량위기 대비
미·독 등 100여 개 국가서 보관 의뢰
스발바르섬, 평균 영하 18도 자연 냉동
내진 설계돼 소행성 충돌에도 견뎌


 종자보관소가 자리 잡은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섬은 북극점에서 1300㎞ 떨어진 영구 동토층의 산속이다. 이곳은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 산하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과 노르웨이 정부가 주도해 2008년 2월 문을 열었다. 2억 달러(약 2350억원)를 출연해 설립된 이 종자보관소의 후원자 중에는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도 포함돼 있다.

 보관소는 홍수·가뭄 등 자연재해, 핵폭발·지진, 테러, 질병 등 각종 사태에 대비해 세계 식용식물의 씨앗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 때문에 ‘최후의 날 저장고’, 씨앗계의 ‘노아의 방주’라 불린다.

 수장은 노르웨이 농업부 출신의 종자 과학자 그레테 헬렌 소장이다. 세계식량기구(FAO)와도 협업 경험이 있는 그레테 헬렌 소장은 e메일 인터뷰에서 “인류 생존에 필수적인 먹거리를 지키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도, 각지에서 발생하는 전쟁도 식물들의 생존에는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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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보관소 안에서 미소 짓고 있는 헬렌 소장.

 - 2008년 설립된 이래 올해 보관소 씨앗이 처음으로 인출됐다.

 “내전 중인 시리아의 농업연구센터에서 지난 10월 씨앗을 인출해 갔다. 시리아 알레포에 본부를 뒀던 국제건조지역농업연구센터(ICARDA)가 맡겼던 밀, 보리, 병아리콩, 야생콩 등의 샘플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종자가 일부 유실된 탓에 종자 표본 중 일부가 필요해졌다는 요청이었다. 노르웨이 종자보관소에 맡겼던 3만8073개 종자 표본을 선박편으로 레바논과 모로코로 보냈다. 현재 시리아는 내전이 지속되고 있어 농사를 짓기 어렵다. 따라서 씨앗은 인근 레바논과 모로코의 농장에 뿌려져 기를 예정이다. 내전이 끝나면 이 씨앗들이 시리아에 옮겨 심어져 농작물이 되고 사람들의 식량이 될 것이다. 이들이 인출한 종자 표본은 인류 최초의 농경문화 발상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생산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노르웨이 종자보관소를 소개한다면.

 “세계 정부·유전자은행·연구소 등이 보유한 콩·쌀·밀 등 각종 종자를 맡아 보관하고 있다. 씨앗 종류는 2008년 18만7000종에서 매년 늘어 현재 약 86만5000종이 있다. 보관소는 샘플 450만 종을 저장할 수 있는데 종자 샘플 하나당 500개의 씨앗이 보관된다. 즉 최대 22억5000만 개의 씨앗을 보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 종자보관소가 노르웨이에 있는 이유는.

 “종자를 보관하기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종자 보관을 위해서는 낮은 온도와 습도가 필요하다. 스발바르섬의 60%는 빙하다. 천재지변으로 전원이 끊어지더라도 자연 냉동 상태라 종자가 200년은 견딜 수 있다. 평균온도는 영하 18도이고 여름에도 영하 3~4도 정도다. 소행성 충돌도 견딜 수 있고 내진 설계도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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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자를 맡긴 나라들은.

 “미국·캐나다·독일·네덜란드 등 100여 개국에서 온 씨앗들이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참여했지만 중국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보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자 보관함도 나란히 놓여 있다. 북한도 종자를 맡겼다. 종자 보관은 노르웨이 정부가 관할하고 있지만, 보관함은 종자를 맡긴 국가의 요청이 아니면 열 수 없다. 유엔과 국제기구들이 보관하는 마스터 키들이 모두 조합돼야 열 수 있을 정도로 철통보안 속에 관리되고 있다.”

 - 한국도 씨앗을 맡겼다.

 “한국이 노르웨이 종자보관소에 보내온 씨앗은 기장·벼·옥수수·보리·참깨 등 31개 작물 1만3185개의 종자다. ”

 - 어려움이 있다면.

 “우선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지는 농업환경, 그리고 기후변화 등과 맞서 싸워야 한다. 종자 보관에 있어서는 내전이나 뜻하지 않은 화재도 위협이 된다. 아프가니스탄은 1990년대에 무장단체 탈레반을 피해 도망가면서 종자를 숨겼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씨앗들의 상당수가 소실됐다. 필리핀은 2012년 종자 창고가 불타기도 했다.”

 - 종자 다양성은 왜 중요할까.

 “종자 다양성은 인류의 식량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에서 1845년 감자의 잎마름병이 유행해 1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주식으로 한 가지 종류의 감자만 심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수백만 명이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종이 단순하면 해충의 출현이나 기후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최악의 경우 멸종될 수도 있다. 종자 다양성은 향후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 2100년 지구 인구는 110억 명으로 늘어난다. 이때 영양도 풍부하면서 빈곤층도 살 수 있는 저렴한 식량을 계속 공급하기 위해선 종자 다양성이 지켜져야 한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S BOX] 러시아 연구원들, 전쟁 때 종자 안 먹고 지키다 굶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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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프(左), 시바(右)


종자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선구적으로 나선 사람들이 있다.

 종자보관소 설립에 기여하거나 토종 종자 살리기 운동을 펼친 이들이다.

 브릭스(BRICs) 국가 중에서는 러시아와 인도가 대표적이다. 옛 소련 식물육종학자인 고(故)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는 그의 이름을 딴 바빌로프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종자를 연구했다. 1929~39년 소련 농업과학 아카데미 총재를 지냈다. 바빌로프연구소는 러시아 전역에 12곳의 연구 기지를 두고 있다. 이곳이 다른 종자보관소와 차별화되는 점은 산딸기와 과일 종자를 다수 보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빌로프연구소 연구원들이 전쟁 중에도 종자를 먹지 않고 지켜내다가 끝내 아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63)는 토종 종자 살리기 운동가다. 원래 핵물리학자였다가 생태운동에 투신했다. 유전자재조합식품(GMO)에 반대하며 식량·종자 주권을 지키자는 주장을 펴왔다. 그가 이끄는 시민단체 ‘나브다냐(Navdanya·9개의 씨앗)’는 토종 종자를 보존하고 유기농법 농사를 짓는 법을 인도 전역에 보급한다. 『물전쟁』 등 저서를 펴냈으며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씨앗을 품다’가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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