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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맺힌 손가락 증언 “이 사기꾼들이 가족·꿈 앗아 갔어요”

지난해 발생한 사기 사건은 24만4000여 건, 피해액은 8조원에 이른다. 반면 사기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은 관대한 편이다. 피해 금액 가운데 회수된 돈은 1%도 안 되는 730억원에 그쳤다. 사기를 당한 이들의 고통을 듣기 위해 대형 사기사건 피해자 3명을 직접 만났다.

사기 당하는 대한민국 <하> 피해자들의 피눈물
대형사기 피해 3인 만나보니

“노후자금 투자해 4억 빚더미 … 아들은 학업 중단
아침 굶었고, 점심 컵라면, 저녁도 컵라면 먹겠죠”

“3억3900만원 맡긴 돈, 돌려받은 건 5000여만원
충격 받은 아버지, 암 걸려 투병하다 끝내 숨져”

“처음엔 소액, 돈 꼬박꼬박 들어오자 1억 빚내 투자
빚 갚으려 일하


◆해피소닉글로벌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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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소닉글로벌 사기 사건의 피해자 유수종(51)씨가 해피소닉글로벌의 남응태 회장이 나온 잡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유씨는 “의료기기 임대업을 통해 연 30~40%의 수익률을 보장해 준다”는 말에 6억여원을 투자했지만 2년 반 만에 투자금 4억원을 날렸다. [한영익 기자]


 대형병원 원무과 과장으로 근무하던 유수종(51)씨는 2012년 6월 해피소닉글로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노후를 위해 뭔가 다른 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변 얘기를 듣던 중에 아내의 전언으로 처음 해피소닉을 접하고서였다. 막상 찾아가서 처음에는 다단계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절대 다단계가 아니라며 화를 내더라고요. 연 30~40% 수익이 난다고 계속 권유하니 결국 시작하게 됐죠.”

 유씨는 2012년 11월 매장을 열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매장 운영보다 ‘운동(의료기기) 위탁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수백만원짜리 기계를 구입하면 매달 수십만원씩을 1년간 지급해주고 이후 기계를 회사에 넘기면 구입비의 60%를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믿고 투자했어요. 몇 달도 안 돼 약속한 돈이 들어오지 않았죠. 나중에 확인하니 기계 제조번호와 공증서에 있는 번호들이 안 맞더라고요.”

 해피소닉글로벌 사건은 ‘제2의 조희팔 사건’이라 불린다. 의료기기 임대업을 가장해 2013~2014년 투자자 1만 명 대상으로 8000억원을 가로챘다. 유씨는 6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지만 결국 4억원을 날렸다. 사업 시작 전 가지고 있던 아파트 등 재산은 모두 담보로 잡혔다. 빌린 돈만 2억원이 넘는다. 유씨의 둘째 아들은 급하게 학업을 중단하고 36개월 동안 복무하는 유급병으로 지원해 군에 입대했다.

 “아파서 2년간 입·퇴원을 반복했던 부모님 병문안도 한 번밖에 못 갔어요. 돈이 없어서요. 이런 불효자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은 굶었고, 점심은 컵라면을 먹었어요. 아마 저녁도 똑같이 컵라면을 먹겠죠. 그래도 전 나은 편이에요. 피해자들 중엔 자살한 사람도 있거든요.”

 ◆교수공제회 사건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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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공제회 사건 피해자 고(故) 강엽(70) 부산대 영문과 교수의 아들 강신영(43)씨가 지난 7월 법원에서 받은 1000여만원의 배당금 통지서를 가리키고 있다. 강 교수는 3억 39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강엽 교수는 사건 이후 췌장암을 앓다 2013년 별세했다. [한영익 기자]


 “제 아버지는 책만 보던 분이셨는데….”

 강신영(43)씨는 긴 한숨과 함께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2013년 췌장암으로 숨진 고(故) 강엽(70) 부산대 영문과 교수다. 강씨는 “아버지가 2012년 교수공제회 자산이 동결됐다는 기사를 보고 ‘이거 뭐냐’는 외마디 탄식을 내뱉었다”고 회상했다.

 “그해 8월 31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사실 아버지께서 그렇게 큰돈을 맡겼는지 몰랐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뒤에 알았던 거죠.”

 강씨의 아버지는 평소 가족들에게 앓는 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70 평생 새벽기도를 하루도 쉬지 않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런 아버지가 교수공제회에 맡긴 돈이 3억3900만원에 이른다는 사실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고 했다.

 “오래전 미국으로 교환 교수를 가셨던 적이 있어요. 보통은 다 쓰고 오는데 아버지는 400만원이 남았다고 그걸 학교에 반환하신 분이에요. 그런 분에게 어떻게….”

 교수공제회 사건은 2000~2012년 이창조(62)씨 등이 인허가도 없이 ‘교수공제회’를 설립해 대학 교수 5500명에게 6800억원을 가로챈 사건이다. 사건 직후 피해자들은 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에 나섰다. 강씨가 이렇게 돌려받은 돈은 피해금액의 14%인 5000여만원에 불과하다. 잃은 돈보다 사무치는 건 아버지의 죽음이다.

 “사건이 있고 나서 아버지께서 많이 변하셨어요. 항상 정돈된 삶을 사셨는데 매일 같이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피해자 카페를 들여다보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강 교수는 2013년 4월 건강검진 도중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몇 개월간 투병생활 끝에 숨을 거뒀다.

 ◆조희팔 사건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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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 사건의 피해자 박상빈(54)씨가 지난 2008년 부산에서 조희팔을 만나 찍은 사진을 들고 있다. 당시 조희팔은 “요트 대여 사업에 투자하라”며 박씨 등을 부산으로 불러 설명회를 열었다. 박씨는 조희팔 사건으로 인해 1억2000여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한영익 기자]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몸이 좋지 않은 아내가 바깥일을 쉬도록 하는 게 유일한 소망이었어요.”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 박상빈(54)씨는 1990년대 초 고향인 전남 고흥을 떠나 아내와 함께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영업직 사원과 관광버스 기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조희팔의 의료기기 대여사업 다단계 업체에 처음 걸려든 게 2007년이었다.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는 말에 처음에는 400만원 정도 소액 투자를 했죠.”

 하루 몇 만원씩 꼬박꼬박 돈이 들어오는 걸 본 박씨는 부인과 상의해 투자금액을 늘렸다. 살던 다세대 빌라를 담보로 대출을 받고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아 1억2000여만원을 투자했다. 2008년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는 “요트 회사를 만들 테니 투자하라”는 조희팔을 부산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뒤 건국 이래 최대 규모 사기 사건이라는 보도와 함께 그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그가 투자했던 부천의 대리점 앞은 피해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사건 이후 박씨는 빚을 갚기 위해 밤낮없이 일을 했다. 2012년 6월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네 번의 수술과 33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고향에서 여전히 투병생활 중인 그가 나지막이 되뇌었다.

 “아내를 쉬게 해주려고 시작한 일 때문에 제가 병을 얻어 지금은 아내가 일해 생계를 꾸려 가고 있습니다. 저는 조희팔이 죽었다고 생각 안 해요. 우리나라는 사기꾼 천국입니다.”

한영익·윤정민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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