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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만에 도청 품은 진주 낙후된 서부경남 발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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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남 진주시 초전동 경남도청 서부청사에서 참석자들이 현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경남도청은 1925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갔다. [사진 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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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에서 부산을 거쳐 창원으로 갔던 경남도청의 일부가 지난 17일 진주시 초전동(옛 진주의료원)으로 되돌아왔다. 경남도청이 1925년 4월 1일 진주시 남성동에서 부산 서구 부민동(현 동아대 캠퍼스)으로 떠나간 지 90년 만이다.

 물론 경남도청 전부가 옮긴 것은 아니다. 경남도청에 있던 서부권개발본부·농정국·산림환경국 등 3개 국과 인재개발원·보건환경연구원 등 2개 기관이 서부청사로 옮겨왔다. 하지만 진주시 등 서부경남 주민들에겐 ‘역사적 사건’으로 불릴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

 이는 ‘빼앗겼던’ 도청을 되찾았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경상남도라는 행정구역은 조선 말기인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누면서 붙여졌다. 당시 도청 소재지는 진주였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 입장에서 진주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큰 패배를 했던 곳이었다. 게다가 군수물자와 수탈한 물품을 옮기기에도 불편했다. 그렇게 도청은 정치적·지리적 이유로 지역민들도 모르게 야반도주하듯 부산으로 옮겨갔다. 당시 부산은 경남의 관할이었다.

 이후 63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돼 경남에서 분리되자 서부경남 주민들은 도청 되찾기에 나섰다. 옛 마산시와 도청 유치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81년 3월 국회가 해산되고 만들어진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창원으로 도청 이전을 결정했다. 대신 진주에는 경남도 문화예술회관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2년 뒤 도청은 창원으로 옮겼고, 그로부터 32년 만에 서부경남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드디어 이뤄지게 됐다.

 서부청사는 서부경남 주민에게 경제발전 기대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서부경남은 경남 전체의 절반 정도 면적(5451㎢)이지만 인구는 22%, 지역내총생산(GRDP)은 17%에 불과하다. 경남도청이 이전한 뒤 정부 국토개발계획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전국 6대 낙후지역으로 꼽힐 만큼 상실감과 소외감이 컸다. 하지만 서부경남 발전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서부청사가 들어서면서 진주 혁신도시 활성화, 남부내륙철도 조기 건설, 초전 신도심 개발, 항공우주산업 육성 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허허벌판이던 진주시 문산읍 일대는 8년 만에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 408만㎡ 부지에 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11개 공공기관이 들어섰다. 고층 아파트와 근린 생활시설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경남도와 진주시는 혁신도시로 인해 2조6000억원의 지역경제 유발 효과와 1조1000억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 3만1000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서부청사 주변의 신도심 개발 사업도 본격화된다. 경남도는 경남농업기술원 부지 42만2000㎡를 ‘진주의 강남’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진주·사천 일대로 확정된 항공산업국가산단도 빼놓을 수 없는 성장동력이다. 또 경북 김천~진주~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가 개통되면 서부경남과 수도권이 2시간 생활권이 돼 관광산업 발전의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이창희 진주시장은 “서부청사 개청으로 그동안 낙후됐던 진주 등 서부경남이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진주=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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