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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설계 건축가, 공사 현장 얼씬 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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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화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건축계는 요즘 이 화두를 놓고 치열하게 공방 중이다. “자식은 부모가 키워야 한다.” 건물을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웬 육아론인가 싶은데 풀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건축물(자식)은 설계한 건축가(부모)가 감리해야 한다(키워야 한다).”

“설계·감리 분리는 시대 역행”
사흘 새 전국서 2000명 지지


 21일 오전 11시께 서울 명동성당의 K-아트홀에 모인 200여 명의 건축가들의 목소리였다.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은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사흘 만에 전국의 건축가 2000여 명이 지지했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 제출된 건축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 대한 반대 입장이다. 25조 1항이 특히 문제라고 했다. 소규모 건축물(연면적 2000㎡ 이하)에도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고, 지자체가 감리자를 지정하게끔 명시한 내용이다.

 감리는 건물이 원래 설계한 대로 잘 지어지고 있는지 공사 과정을 감독하는 일이다. 시공자가 원래 설계와 다르게 건물을 짓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제도다. 통상 외국에서는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감리도 한다. 도면을 그리고 계획한 사람이 현장을 잘 감독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공공건축물과 30세대 이상 아파트에서는 설계자가 감리를 할 수 없게끔 법으로 명시해놨다. 이번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거의 대부분의 건축물 공사에서 설계와 감리를 분리해야 한다. 2012년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발의했으나 업계의 반발로 계류되다, 최근 국토부가 수정안을 다시 제출해 추진되고 있다.

 설계자가 감리를 못한다는 게 뭐가 문제일까. 건축가들은 최근 현장의 예를 하나 든다. 2012년 완공한 서울시청사 공사 현장의 이야기다. 시청사의 건축가 유걸씨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을 짓고 있는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공공건축물의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는 법에 따라, 관리 감독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서울시는 유씨에게 ‘총괄 디자이너’로서 뒤늦게 감리에 참여하게 했다. 하지만 공사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진척된 상황이었다. 이런 좌충우돌은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 홀’에 고스란히 담겼다. 건축가 이배화는 “건축감리는 작품행위의 일부다. 만약 불법적인 행위가 발생하면 다른 특별조항을 설치해 감시감독하면 된다”고 했다.

 사실 설계자와 감리자를 분리하는 법은 건축계의 흑역사와 이어져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정부에서는 재발 방지 차원에서 이 제도를 만들었다. 이번 개정안의 목적도 건축물의 안전 관리다. 흑역사로 인해 만들어진 법안이나 그간 시행되면서 서울시청사 같은 사건으로 논란이 계속됐다. 건축물 안전을 조사·검사하는 일과 원 설계안의 디자인 방향이 잘 지켜지는지 감독하는 일을 한데 묶는 통에 건축가들이 현장에서 쫓겨나는 흑역사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긴급 기자회견장에서 건축가 황두진의 외침에 건축가들의 표정은 망연해졌다. “현장에서 일하는 건축사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나라에서 어떤 건축문화를 기대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한은화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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