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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부터 70년, 연극으로 쓴 현대사

1954년 유엔군 위문 공연을 위해 방한한 마릴린 먼로(왼쪽)와 백성희. 당시 백성희는 배우 최은희와 함께 대구 동촌비행장으로 먼로를 마중나갔다. [사진 백성희·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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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배우 백성희 선생의 회고록이 출간됐다. 그의 70년 연기인생을 총정리한 책 『연극의 정석』(연극과인간)이다. 연극평론가인 김남석 부경대 국문과 교수가 백 선생의 구술을 정리해 엮었다. 선생은 올 가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현재 서울의 한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 투병 중이다. 201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3월의 눈’과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바냐아저씨'가 가장 최근작이다.

투병 중 『연극의 정석』 출간
연기 기본은 기교 아닌 성실함
한때 배우끼리 연애도 못했죠
오늘‘국립극단 65년’심포지엄


 ◆전쟁터에서도 지킨 무대=그의 삶은 한국 연극의 역사다. 1925년 서울에서 태어난 선생(본명 이어순이)은 1943년 극단 현대극장에 입단,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부 독재 등 현대사의 험난한 고비고비를 거치면서도 그는 한결같이 무대를 지켰다.

 해방 전 연극 ‘봉선화’ 지방 공연 때의 일이다. 대본 검열을 받아야 공연을 할 수 있던 시대였다. 해당 주재소에서 갑자기 한국어 대사를 모두 일본어로 바꾸라고 했다. 서툰 일본어로 대사를 급조해 무대에 섰다. 말도 안 되는 대사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결국 순사들이 공연을 중지시키고 배우 몇몇을 연행했다. 그러자 관객들이 주재소를 몰려갔고, 그 기세에 놀란 순사들이 배우들을 풀어줬다. 선생은 “그날 사건은 ‘연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으로 내게 남았다. 연극은 분명 사회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회고했다.

 6·25 발발 이후 전쟁터에서도 연극은 계속됐다. 선생은 대구·경남 일대 피난지에서 ‘통곡’ ‘바다’ ‘무영탑’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70∼80년대엔 ‘정부의 입김’이란 장애물을 넘어야했다. 선생은 “수난의 시기, 외국 명작의 번역극이 톡톡히 효자노릇을 했다”고 했다.

 회고록 제목 ‘정석’은 선생이 즐겨쓰는 단어다. 기교나 현혹이 아닌 성실함과 기본기를 뜻한다. 선생의 연기관은 정석에 따른다. “작품은 가려서 선택하지만 배역은 가리지 않는다”고 했고, “발음과 대사에 공을 들인다”고 했다. “배우는 슬픔에 메여 울어도 대사만큼은 틀림없이 들리게 해야한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지켰다. 그는 분석력을 배우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극 중 인물의 성격 분석은 보편적 이해에 기반해야 하지만 평범하거나 상투적이어선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는 64년 구포댁 역으로 출연한 연극 ‘만선’을 잊지 못했다. 시골 어부의 실성한 아내 역이었다. “사투리 쓰는 해변가 여자라고 하면 으레 거칠게 생각하거든. 나는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마음을 꺼내보고 싶었어. 누추한 현실을 살지만 마음은 아름다운 여자…” 그는 구포댁을 ‘슬프고 여리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연기했고, 그 작품으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현 백상예술대상)을 받았다.

 ◆국립극단 단원생활 65년=선생의 평생은 국립극단과 함께였다. 해방 후 연출가 이해랑의 극단 신협에서 활동하다 50년 신협이 국립극장 전속 극단이 되면서 국립극단 창단 배우가 됐다. 이후 두 차례(72∼74년, 91∼93년) 단장을 역임했고, 2010년 국립극단 법인화로 상주단원이 없어진 이후에도 원로단원으로 남았다.

 회고록에는 국립극단 창단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다. “유치진 초대 국립극장 극장장은 입장료 수입 중 제작비를 뺀 나머지의 30%를 출연료로 지급했다. 당시 배우 월급은 보통 회사원 월급의 2∼3배에 달했다”는 게 선생의 기억이다. 배우들의 사기는 높아졌고, 사명감도 커졌다. 국립극단 위상에 맞는 품위와 실력을 갖추기 위해 배우들에게 책 읽기와 규칙적인 생활을 강조했다. 배우로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때는 선배들이 단호하게 질책했다. 배우끼리 연애도 금지됐다. 선생은 “이런 태도는 요즘 배우들도 본받아야 한다”고 짚었다.

 국립극단은 책 출간에 맞춰 22일 서계동 국립극단 스튜디오 하나에서 심포지엄 ‘국립극단 65년과 백성희’를 열 예정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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