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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한국은 ‘잃어버린 10년’도 못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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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일본 도요타차의 노사는 매년 똑같은 장소에서 노사합의문에 서명한다. 1950년 도요다 기이치로 사장의 집무실이다. “그해 파산 직전의 도요타는 8000명 중 1500명을 해고했다. 노조원들은 사무실 앞에 퇴직권고장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며 저항했다. 75일간 파업이 이어졌다. 노조는 기이치로 사장이 물러나는 조건으로 해고를 받아들였다.”(『도요타시 1번지』, 요미우리신문) 그 아픔 이후 도요타는 53년간 한 번도 파업이 없었다.

 2003년부터 한동안 한국에는 도요타 열풍이 불었다. 수많은 책이 쏟아졌고 간반방식, JIT(just in time) 시스템은 보통명사가 됐다. 그해 도요타의 매출 165조원, 영업이익 14조4000억원에 자극받은 것이다. 아시아 최고 기록이었다. 정작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노조가 먼저 기본급 동결을 제안했다. “실적의 절반 이상은 해외 법인 덕분이다. 영업이익의 40%는 엔저에 따른 착시 효과다. 언제 엔고가 올지 모른다. 물가도 마이너스이니 기본급 동결은 당연하다.” 감동 먹은 회사는 60세 정년 연장으로 화답했다.

 ‘잃어버린 20년’간 일본 기업은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한쪽은 미국식 경영으로 돌아섰다. 일본 상장기업의 절반이 스톡옵션과 실적연동형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그 대표 주자가 닛코. 미국 컬럼비아대 MBA 출신의 가네코 회장은 2006년 최고 실적을 낸 뒤 “외국 투자자의 요구대로 하면 된다”고 자랑했다. 미 시티그룹과 손잡고 저수익 부문을 가차 없이 폐쇄하고 직원은 무더기로 잘랐다. 그에겐 “일본 얼굴을 한 미국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이듬해 닛코는 거액의 보너스를 노린 회계 부정이 발각돼 곧바로 거덜이 났다. 이럴 경우 일본 최고경영자(CEO)들은 흔히 자살로 마감한다. 하지만 가네코는 대저택에서 40세 연하와 호화롭게 살고 있다.

 정반대가 일본식 경영을 고수한 도요타다. 오랜 불황에도 인원 삭감 없이 종신 고용을 끝까지 지켰다. 대신 임원 연봉은 근로자 임금의 3배를 절대 못 넘게 했다. 오쿠다 회장은 입버릇처럼 “고용 보장은 경영자의 의무”라 말했다. “종업원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 개념이다. 당장 어렵다고 쉽게 내보내면 회사가 통째로 망할 수 있다.”(『도요타』 김태진 등 지음) 그는 르노닛산의 카를로스 곤이 직원 2000명을 해고하자 “사람 자르는 서양 귀신”이라 비난했다. 도요타 직원들은 이런 회사를 믿으며 매년 가이젠(改善)을 통해 평균 1조원씩 생산비용을 절감해냈다. “도요타맨은 월급이 아니라 연구개발비를 받아먹고 산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다시 도요타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얼마 전 여의도연구원의 14쪽짜리 비공개 보고서 때문이다. 보고서는 “한국은 일본식 ‘잃어버린 10년’에도 못 견딜 것”이라 진단했다. 끔찍하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묵시록이다. 오늘도 이 땅의 귀족노조들은 ‘민중총궐기’의 광화문광장으로 달려간다. “파업 없는 나라를 알려달라. 그러면 자유가 없는 나라를 보여주겠다”는 새뮤얼 곰퍼스의 낡은 주문을 되뇌면서…. 요즘 경영권을 물려받기 시작한 대기업 3세들도 미덥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대개 미국 MBA 출신들로 ‘한국식 경영’의 마인드 자체가 없다. 수익성 전망에 따라 냉혹하게 칼질한다.

곧 닥쳐올 시련은 길고, 험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구조적 저성장에다 미국 금리 인상, 중국의 성장 둔화가 겹치는 복합골절이다. ‘기업가 정신’이 사라진 신세대 CEO와 강경 노조가 맞부딪치면 명예롭지 못한 명예퇴직, 희망 없는 희망퇴직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이미 거제도부터 무더기 해고의 칼바람이 불고, 울산은 울고 있다. 우리 노사가 이제라도 함께 도요타의 지혜를 따라 배웠으면 한다. 기이치로 사장실도 둘러보고 말이다. 참고로, 미국식 경영의 목표는 시장가치 제고다. 그럼에도 시가총액은 현대·기아(55조원)<포드(64조원)<혼다(68조원)<벤츠(83조원)<폭스바겐(90조원) 순이다. 정반대로 간 도요타만 250조원으로 압도적 1위다.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한국 경제도 살길이 열린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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