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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의사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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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뉴디지털실장

몰래카메라(몰카)는 결코 만만한 범죄가 아니다. 한 회사원은 2013년 대형마트에서 20대 여성의 치마 속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단순 벌금형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겠지만 성폭력처벌특례법 위반으로 기소된 끝에 벌금 300만원과 함께 최근 신상정보 등록 20년이 확정됐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피해 당사자이기도 한 여자친구의 신고로 여성 183명의 치마 속 몰카를 찍은 남성이 최근 검찰에 넘겨졌으나 기소유예로 그냥 풀려났으니 말이다. “우발적 범행이고 뉘우치고 있다”는 게 검찰이 선처를 베푼 이유다. 8개월 동안 183명을 500번 이상 촬영한 동영상 파일을 휴대전화에 보관한 죄질로 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신상정보 공개 20년’과 ‘기소유예’를 가른 차이는 뭘까. 183명 몰카 변호인의 소견서에 결정적인 답이 들어 있었다. 여기엔 “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벌금 이상이 나오면 의사로서의 꿈이 좌절될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 한마디로 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졸업해 최고 명문대를 나온 똑똑한 인재의 앞길을 고작 몰카 사건 따위로 막지 말아 달라는 요청인 셈이다. 그리고 검사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SNS에는 당장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으면 (의사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꿈이 좌절될 수 있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는 식의 비아냥이 줄을 잇는다. 누구는 이를 ‘사짜(의사·검사 등)들의 카르텔’이라고 비아냥댄다.

 그러고 보니 이게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에도 여자친구를 밤새도록 감금·폭행하고서도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제적될 우려가 있다”는 배려를 받아 벌금형만 선고받은 의전원생이 있었다. 법의 냉혹한 잣대가 학벌 좋은 엘리트 앞에선 유독 무뎌지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예일대 영문과 교수였던 윌리엄 데레저위츠가 엘리트 교육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공부의 배신-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엘리트란 원래 사회를 이끌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엘리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엘리트 교육의 단점은 나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엘리트 교육에 누구나 목을 메는 우리 사회에서는 대입을 위한 스펙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유망한 직업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한 엘리트끼리만 통하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반의 상식과 거리가 먼 일이 이렇게 자주 벌어질 리가 없지 않나.

안혜리 뉴디지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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