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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중국의 런민비(위안화) 이야기

국제통화기금(IMF)이 11월 30일 중국의 런민비(renminbi 人民幣)를 2016년 10월부터 특별인출권(SDR 特別提款權) 구성통화에 포함한다고 발표하였다. 현재의 구성비는 미국의 달러(41.73%) 유로(30.93%)에 이어 제3위(10.92%)로 일본의 엔(8.33%) 영국의 파운드(8.09%)가 런민비를 따르고 있다.
런민비가 이제 국제 주요통화의 엘리트 클럽에 당당히 가입하게 되어 국제무역과 금융거래에서 달러 유로 다음의 주요통화로 공인받은 것이다. 사람들은 ‘런민비의 굴기’를 이야기 하고 국제무역 거래에서 한손에는 링컨의 ‘그린백(Greenback 미달러)’ 다른 한 손에는 마오쩌둥의 ‘레드백(Redback 런민비)’을 손에 쥐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20년 전 중국 베이징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런민비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정부에서 달러로 봉급을 주므로 중국은행에 달러 구좌를 개설하였다. 런민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물건 구입에 필요한 만큼 런민비를 그때그때 바꾸어 사용하면 되었다. 중국을 떠날 때는 다 사용하지 못한 런민비를 모두 달러로 환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런민비는 중국에서나 필요한 돈이지 중국 밖을 나가면 아무 쓸 데가 없는 돈으로 보였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당시 화폐의 종이 질도 나빠서 금새 걸레처럼 헤어져 만지고 싶지 않은 돈이었다.
돈의 이름이 ‘런민비’(人民幣)고 발행기관도 인민은행이다. 처음에는 중국은행이 우리의 한국은행처럼 중앙은행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인민은행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중국에는 인민이 최 상위 개념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정당이고 군인도 국가의 군인(國軍)이 아니고 인민을 해방시킨 공산당의 군대(黨軍 인민해방군)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인민은 영어 people의 번역어로 본래 보편적인 민주주의 제도에서 사용되어 왔다. 국민국가(nation state)의 국민보다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세기 공산주의가 대두하면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국적 개념이 있는 국민(nation)보다 국적과 관계없이 사상과 이념으로 통합하는 ‘인민(people)’을 선호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유주의 시장경제 국가에서는 사상적으로 ‘인민’이란 말을 기피하여 중국 돈의 이름도 ‘런민비’ 보다는 ‘위안화(元貨’)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중국의 중앙은행으로서 발권은행인 인민은행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에 창설되었다. 당시 중국은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 간의 내전 중이었다. 마오쩌둥은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공산당 지배지 즉 인민 해방구인 화북지방을 중심으로 화폐를 발행했다. 당시 화북은행과 서북 농민은행 등을 합병하여 화북의 중심지 스자좡(石家莊)에서 인민은행 창설과 함께 런민비를 발행하였다. 1948년 12월 1일이었다.
그 후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하고 1949년 10월 1일 신 중국이 건국되자 런민비는 중국의 법정통화(legal tender)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인민 해방구에 쓰이던 군표(軍票)같이 보잘 것 없던 런민비가 중국의 발전과 함께 세계 3위의 주요 통화가 된 것이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내전)의 자금마련을 위해 그린백을 처음으로 발행하기 시작한 배경이 연상된다.
런민비는 경화(금속화폐)와 지폐가 있다. 주로 지폐가 많이 사용되는데 위안(元)표기로는 1위안, 5위안, 10위안, 20위안, 50위안 그리고 100위안 등이 있고 지아오(角)표기에는 1지아오, 5지아오가 있다. 1위안은 10지아오이다. 위안(元)은 본래 위안(圓)의 약자이다. 동양권에서 고대부터 돈은 둥근 형태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와 일본도 돈의 단위가 원(환 ?) 또는 엔(円)이다. 모두 둥글다는 의미이다
미 달러를 그린백이라고 부르는 것은 달러 뒷면이 모두 그린(綠)칼라이기 때문이다. 미 재무성 색깔이라고 한다. 런민비는 중국 공산당 색깔인 레드(紅)가 들어 있어 외국에서는 레드백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100위안 지폐를 빼놓고는 가지각색이다. 1위안 지폐는 녹색, 5위안은 자색, 10위안은 청색, 20위안은 갈색, 50위안은 청록색이고 100위안만이 붉은 색깔이다.
런민비 뒷면의 도안의 풍경화는 항저우 서호, 산동성 태산, 장강 삼협, 계림산수, 티베트의 포타라궁,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등 다양하지만 앞면의 초상화는 모두 마오쩌둥이다. 런민비를 ‘마오비(毛幣)’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지아오화의 초상화에는 소수 민족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개혁 개방으로 중국경제가 일본을 제치게 되자 중국은 런민비를 SDR의 구성통화에 넣고 싶어 했다. IMF는 매 5년마다 SDR의 구성통화를 검토한다. 1999년 유로가 달러 엔 파운드 다음으로 4번째의 구성통화가 되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5년 전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 된 중국은 정식으로 SDR 구성통화에 런민비를 신청을 하였다. IMF는 구성통화 자격으로 무역 규모와 거래 자유화 정도에 따라 결정하는데 당시 런민비 경우 무역 규모는 충분하였으나 거래의 자유화에서 거부되었다. 그러나 5년 후인 금년에는 거래의 자유화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본 것이다.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의 통계에 의하면 국제결제에서 런민비의 순위는 5년 전 35위에서 4위로 상승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은 14억 국민들을 이끌어 가는 데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우면서 깊은 뜻(grand design)이 있는 메시지를 던지기를 좋아한다. 첫 번째가 ‘중국몽(中國夢)’이고 두 번째가 ‘일대일로(一帶一路)’이다. ‘뉴 실크로드’라고도 부르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는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유라시아에 걸친 거대한 인프라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당연히 자금이 필요하다.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을 만든 것도 자금을 끌어 오기 위해서다. 마지막 남은 수단이 누구든 안심하고 손쉽게 런민비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런민비를 안정적인 국제통화로 만드는 것이다. 런민비의 국제화는 시진핑 주석이 주장하는 중국몽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런민비가 주요통화로 결정되자 금리가 낮은 중국내(on shore) 런민비 표시 채권(판다본드)발행이 늘어나면서 홍콩(off shore) 등에서 발행하던 런민비 표시 채권(딤섬본드)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판다가 부드러운 딤섬을 먹어 치운다고 비유한다.
우리정부도 중국에서 국채로서는 최초로 30억 위안(5444억원)규모의 판다본드(런민비 외평채)를 발행하기로 하였고 증국정부(인민은행)의 승인도 받아 두었다. 우리정부는 달러 중심의 외화보유고에 런민비 비중을 높이는 한편 중국 진출 기업의 판다본드 발행을 장려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한다.
런민비는 다른 주요 통화에 비해 규제가 많다. 런민비가 진정한 국제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하고 주요통화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중국정부도 런민비가 SDR에 편입되는 내년 10월까지 지속적인 금융개혁을 이루어 내며 지금의 관리변동환율제에서 자유변동환율제 이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기준금리인상과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로 런민비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3대 통화로 굴기한 런민비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4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수출을 유지해서 경기를 살리려면 런민비를 절하해야 하지만, 가파른 절하는 외국 투자자들의 중국 이탈을 부추겨 중국 경제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SDR 편입을 앞두고 과거처럼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할 수도 없다. 딜레마에 빠진 중국정부(인민은행)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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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