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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오르면 셰르파는 350만원…셰르파의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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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8일 새벽 6시 45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1만4000톤의 눈이 갑자기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당시 산에 오르고 있던 등산객 16명이 숨지게 되면서 에베레스트에서 발생한 역대 최악의 인명 사고로 평가됐다. 사망자 중에서는 셰르파들도 포함돼 있었다.

히말라야 고산가이드를 뜻하는 ‘셰르파’는 원래 티베트어로 동쪽 사람이라는 뜻인 동시에 네팔의 종족 이름이기도 하다. 셰르파는 히말라야를 등산할 때 없어서는 안되는 등산 안내자이다.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에 세계 최초로 오른 사람은 뉴질랜드 출신 산악인 에드문드 힐러리(1919~2008)와 네팔 출신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다. 1953년 5월 29일 두 사람은 인류 사상 처음으로 8000m가 넘는 봉 14좌를 모두 올랐다. 두 산악인의 초등 소식은 나흘이 지난 6월 2일 런던발로 전세계에 퍼져나갔다. 힐러리의 등정 이후 지금까지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지난 16일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데스존에 묻힌 후배 대원을 찾기 위한 엄홍길 원정대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에베레스트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최고 9만 달러(1억6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이런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산을 오르고 싶어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서구에서 온 외국인들이다. 비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셰르파는 네팔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들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의 GDP 3%를 차지한다.(2013년 기준) 2012년 네팔 정부는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인증서를 발급하고 받는 비용으로 2012년에만 330만 달러(39억720만원)를 받아챙겼다.

에베레스트 때문에 네팔에 들어온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은 호텔과 레스토랑 등을 방문한다. 여행사들은 모두 현지 주민들로 채워져있다. 네팔의 평균 연소득은 700달러 안팎. 그러나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는 셰르파의 평균 임금은 3000~5000달러(355~592만원)를 호가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에베레스트 경제는 많이 악화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산 아래 베이스캠프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공급과잉 상태가 됐다. 이와는 별개로 산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이들에 대한 별다른 제재가 없게되자, 에베레스트산에서는 ‘세계 최악의 교통체증’이 시작됐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네팔 현지에서도 갈수록 떨어지는 셰르파의 위상이다. 1953년 힐러리와 노르게이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을 때 힐러리는 먼훗날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노르게이는 제외됐다. 아무도 숨은 그의 역할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오늘날 네팔 젊은이들은 노르게이의 역할을 자처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만 봐도 그렇다. 세계 최고봉에 도전하는 서구 출신의 젊은이들에게는 온갖 찬사가 쏟아지지만, 정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셰르파의 역할에 대해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캠프를 꾸리는 것도, 장비를 챙기는 것도, 등산 중 사치품이라 할 수 있는 큰 스크린의 TV까지도 모두 셰르파가 챙겨야하는 것들이다.

셰르파들은 말못할 어려움을 모두 감수한다. 서양인 등산객들은 위험하기 이를데 없는 아이스폴(빙하가 수직 또는 거의 수직에 가깝게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상태)과 금때문에 쩍쩍 갈라져있는 절벽을 헤치고 가려고 하고 한다.

셰르파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세르파’를 기획, 제작한 감독 제니퍼 피돔은 오직 셰르파의 관점에서 이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담으려고 했다. 주인공으로 점찍은 푸르바 타시 셰르파는 에베레스트만 21회 등정하는 등 8000m급을 총 28회 등정한, 셰르파의 살아있는 역사다. 타시 역시 세계 최다 등정 기록을 보유한 셰르파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피돔 감독과 타시가 의도치않게 담은 첫 장면은 지난 4월 25일 지진으로 인한 눈사태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덮쳐 외국인 산악인 등 19명이 숨졌던 그 사고였다.

동료의 시체라도 찾기 위한 셰르파들의 노력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동시에 셰르파들은 조급해졌다. 만약 사고 장소가 다시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게되면 잃어버린 동료의 시신을 찾을 길은 더욱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이후 네팔 정부가 보상금으로 희생자 가족들에게 고작 1인당 400달러를 지급하려고 하자 유가족들의 슬픔은 금세 분노로 바뀌었다. 셰르파들을 관리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러셀 브라이스는 타시를 고용한 클라이언트(등산객)과 타시의 고달픈 삶에 대해 좌절하고 또 분노했다. 차분하면서도 생기있고,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보조적 역할을 하는 셰르파들의 삶이 가여웠기 때문이다.

피돔 감독의 영화가 세상에 제대로 빛을 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 영화가 대중들에게 공개하면 그 어떤 기록물보다도 셰르파들의 비극을 잘 그려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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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