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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못 들 만큼 힘들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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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은 데뷔 이후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지면서도 묵묵히 마운드를 지켰다. 4월 22일 열린 LG와의 경기 도중 김성근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 권혁의 뺨을 쓰다듬고 있다. [뉴시스]

2015년 한화 이글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왼손투수 권혁(32·한화)은 던지고 또 던졌다.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정규시즌에서 그는 절반이 넘는 78경기에 나왔다. 구원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112이닝을 소화했다. 올 시즌 그의 기록은 9승 6홀드 17세이브 13패. 2002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권혁은 생애 처음으로 두자릿수 세이브를 올렸지만 동시에 프로야구 최다패를 당하는 불명예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평균자책점은 4.98. 그는 시즌 막판 체력이 떨어졌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마운드에 올랐다. 불꽃 투혼을 불살랐다해서 ‘불꽃 남자’ 라는 별명이 붙은 권혁을 최근 만나 시즌을 마친 소감을 들어봤다.

 - 2015년을 되돌아본다면.

 “힘들었지만 재미있게 공을 던졌다. 오랫동안 삼성에서 뛰다 처음으로 다른 팀에서 뛰었다. 한화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을 받으면서 즐겁게 던졌다.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물론 힘든 시간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팔 드는 것이 부담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역할은 아무나 맡는 게 아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다고 할까. 예전엔 아침에 눈 뜨면 ‘오늘도 야구장 가야하나. 오늘도 공을 던져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야구장 가는 길이 즐겁다.”

 권혁은 2009년 홀드왕(21개)을 차지하는 등 삼성 불펜의 중심을 맡았다. 그러나 2013년부터 등판 횟수가 줄었다. 2014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그는 한화와 계약(4년 32억원)했다. 올해 너무 많이 던져서 ‘혹사를 당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권혁에겐 반등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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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지 못할 경기나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

 “잘했던 때 보다 못했던 경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좋지 않았던 던 걸 기억해야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올 시즌 성적은 아쉽다.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건 2006년 이후 처음이다. 내년에는 평균자책점을 낮추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팀 성적이다. 이기는 경기에 꾸준히 나가서 실점을 막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래서 내 몸관리가 중요하다. 첫째도, 둘째도 다치지 않아야 한다.”

 - 지난 4월과 6월 김성근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 볼을 어루만져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올해 내내 그 장면이 화제가 됐다. 온라인 상에 패러디해서 돌아다니는 사진을 보고 나도 많이 웃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나도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김성근 감독님은 평소 선수들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으신다. 경기 중 마운드에 올라와서 (특별한 말씀 없이) 볼을 만지신 것도 무언의 메시지였다. ‘힘내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 뒤에도 두세 번 하신 것 같은데 몇 차례인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다. 삼성 시절 선동열 전 감독님이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하지만 경기 중 ‘볼터치’를 한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 자유계약(FA)선수인 정우람과 심수창이 한화로 왔다.

 “잘하는 투수들이 왔다고 해서 부담을 덜게 됐다고 생각하진 않겠다. 심수창 선배, (정)우람이와 함께 배우고, 서로 자극을 받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당연히 나도 더 분발해야 한다. 박정진 선배와 윤규진까지 있으니 한화의 불펜은 훨씬 좋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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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시즌 목표는.

 “시즌 끝까지 2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고 싶다. 승리투수가 되거나 개인 타이틀을 따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홀드와 세이브 기록은 타선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평균자책점은 투수의 능력으로 만드는 기록이다. 평균자책점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 1남2녀, 세 아이의 아빠인데.

 “아이들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서 여기까지만 낳겠다.(웃음) 아내가 대학에서 플루트를 전공했는데 유학을 포기하고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 셋을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맏딸과 아들은 나를 닮았다. 둘째인 아들이 네 살인데 야구를 하겠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소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집에서 장난감 던질 때 보면 멀리 던지긴 하더라.”

 - 지난달 ‘저축왕’에 뽑혀 표창장도 받았는데.

 “미혼일 때는 돈을 버는 대로 어머니에게 다 가져다드렸다. 결혼 후에는 아내에게 다 맡긴다.(웃음) 원래 의미없는 곳에 큰 돈을 쓰거나 사치를 하는 편이 아니다.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면 ‘아들이 팔 빠져라 던져서 번 돈이라 못쓰겠다’고 하신다.”

 -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을 꼽으라면.

 “야구선수로선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간의 구위가 가장 좋았다. 성적은 그 때가 좋았지만 올해처럼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꼽으라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싶다.”

서지영 기자 saltdol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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