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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 찾아오고 ‘명량’ 성공하고 … CG업계 별 하나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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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산동 디지털단지에 있는 매크로그래프에서 20일 이인호(48·왼쪽) 사장이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들어간 영화 ‘명량’ 등 대표작 앞에 섰다. 회사 직원들이 이 사장의 얼굴을 본딴 ‘디지털 배우’(오른쪽)를 만들어 악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사진·CG 매크로그래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일주일 뒤에 회사문을 닫겠습니다.”

 런던 올림픽이 한창이던 2012년 여름 어느 날, 이인호(48) 매크로그래프 사장이 회의실에 모인 직원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밀린 월급은 당장 줄 수 없으니 회사 내에 있는 카메라라도 가져가세요….”

 해야 할 말만 간신히 하고 당황해하는 직원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듯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다 내 잘못이다. 어디부터 잘못된 거지. 난 왜 운이 안좋지. 이제 아내와 아이들은 어디서 살아야 하지….’

 이 사장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1주일 뒤 돌아올 4억원의 돈을 막지 못하면 회사가 사라질 판이었다. 집은 이미 아내 몰래 담보로 잡아놨고, 더이상 손을 벌릴 친구조차 없었다. 그때 사무실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왜 회사 문을 닫아야 합니까?” 그의 방으로 몰려온 열댓명의 직원들은 화가 나있었다.

 2007년 의기투합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시각특수효과(VFX) ‘디지털 액터’팀 연구원들이 서울 논현동에 회사를 세웠다. 협력사를 포함해 직원 수만 100명에 달하는 규모였다. 실제 카메라 촬영으론 표현할 수 없는 장면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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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저우싱츠 감독의 ‘서유기’에 나온 사오정 괴물. 물고기와 호랑이·돼지를 결합한 괴물을 만들어 달라는 감독의 말에 매크로그래프는 민화를 바탕으로 호랑이 얼굴 괴물을 만들었다. [사진 매크로그래프]

 팀장인 이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회사 설립 후 첫 작품이 ‘라이온 킹’을 만든 롭 민코프 감독의 ‘포비든 킹덤’(2008년 개봉). 회사를 차리자마자 할리우드 진출 꿈을 이뤘다. 영화 관련 해외 유명 잡지에 기사가 실렸다. 아시아 최초 할리우드 개봉작 컴퓨터 그래픽(CG)을 모두 무명회사가 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할리우드 영화 계약 건이 들어왔다. 이 사장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기술만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영업이 되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운은 그를 비껴갔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할리우드 영화는 제작비 절반을 은행에서 빌리는데, 모든 것이 정지상태가 됐다. 그는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영화사의 말을 믿었다. “어차피 하게 될 일인데 미리 만들어 놓자.” 십수명의 직원들과 함께 ‘연구개발(R&D)’에만 매달렸다. 돈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돈이 없었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도 은행에 잡혔다. 그러기를 몇 년, 2012년 여름이 되어 있었다.

 그의 방문을 밀고 들어온 직원들은 “필요한 돈이 얼마냐”고 물었다. 4억원이란 소리에 직원들은 은행으로 달려갔다. 우리은행 논현지점장이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사장님 맞으시죠? 직원들이 떼로 몰려와서 대출을 받는다는데, 이거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직원들의 대출로 급한 돈을 막고 영화 ‘알투비’(2012년 8월 개봉) 작업을 마쳤다.

 이 사장은 당시의 위기를 “기술만 있으면 다 된다고 믿었던 탓”이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첫 작품부터 너무 큰 작업을 하면서 눈이 높아진 것도 문제였다. 세만 한달에 3000만원이나 하는 사무실도 그때서야 접었다. 이후 서울 가산동 디지털단지에 입주해 간판도 달지 않은 채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다. 위기를 한 번 맞고 나니 일을 대하는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케팅이라는 걸 해보자. 영업도 직접 뛰어보자.” 직원들과 이를 악다물었다.

 그를 비껴갔던 운이 돌아돌아 그를 찾아왔다. 가산동 그의 사무실에 ‘홍콩 코미디의 왕’이자 한국인에게 ‘주성치’로 불리는 저우싱츠(周星馳·53) 감독이 찾아왔다. ‘서유기’(2015년 개봉) CG를 담당할 한국 기업을 찾는다고 했다. 이 사장은 대뜸 ‘괴물2’를 감안해 만들어둔 괴물 이미지를 마치 준비라도 한 듯 그의 앞에 내놨다. 우연은 계약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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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장은 “회사 설립하고 몇 년간 R&D만 해온 게 그날 빛을 봤다”고 했다. 저우싱츠는 특별한 사오정 괴물을 원했다. ‘물고기와 호랑이, 돼지를 결합한 괴물’이란 키워드만 던져줬다. 이 사장은 직원들과 머리를 짜냈다. 원형이 되는 호랑이는 우리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로 하고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발은 돼지발에 꼬리는 물고기로 그려나갔다. 서유기에 흡족했던 저우싱츠는 다음 작품인 ‘미인어’(미개봉) 계약을 하자고 했다.

 그 사이 새 일이 들어왔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었다. 해상전투신 재현에 욕심이 난 이 사장은 컨설팅 업체에 문의를 했다. 컨설팅 회사는 “이 일은 도저히 매크로그래프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며 사업을 맡아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덤벼들기로 했다. R&D에만 매진하던 때 만들어놓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써볼 수 있겠단 생각에서였다. 이순신 장군의 울돌목 전투장면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에서 날밤을 새며 일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문화기술(CT) 연구개발(R&D) 지원도 이어졌다. 조선 수군 12척의 배와 왜선 330척의 배는 실제 촬영한 8척의 배로 만들어 냈다. 영화 상영시간 128분 중 61분에 달하는 해상 전투장면의 90% 이상이 매크로그래프 직원들의 책상에서 태어났다. 명량은 지난해 1760만 관객몰이를 하며 대박 기록을 세웠다.

 이 사장은 “이젠 좋은 회사가 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올 여름엔 처음으로 삽겹살 회식이 아닌 ‘호텔 회식’도 했다. 직원들의 가족을 초청한 자리에서 그는 약속을 하나 했다.

 “더 튼튼한 회사,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연간 20~30%대의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 시장에 집중하면서 2013년 70억원이던 매출이 2014년엔 100억원으로 늘었다. 그는 “내년엔 200억원까지 내다보고 있다”며 “연간 30%씩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160명의 직원들에게 드디어 뭔가 돌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는 “구글과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가상현실(VR) 시장에 맞는 콘텐츠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곳이 CG 회사”라며 “가상현실 시장에 곧 진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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