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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모란봉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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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

모란봉은 평양 대동강변의 야트막한 봉우리다. 가장 높은 최승대(最勝臺)에서 금수산까지 이어진 산세가 마치 금방 피어난 모란꽃을 방불케 한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해발 95m인 이곳을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자기 시대의 핵심 통치 아이콘으로 꼽았다. 높이 2744m의 한반도 최고봉을 끌어들여 ‘백두혈통’ 신화를 조작해낸 아버지 김정일과 차이 난다. 모란봉 을밀대는 저녁식사를 마친 주민들이 마실을 가는 근린공원 격이다. 그만큼 ‘인민과 함께하는 지도자’라는 친근한 이미지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으로서는 갈급했다.

김정은 통치 아이콘인 모란봉악단
‘숭배’ 공연으로 베이징서 회군
공포정치에 북·중 간 절충 못 해
개혁·개방 기대 부른 희망봉 사라져


 모란봉악단은 그런 김정은식 정치의 중심에 있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레퍼토리에 전자악기의 친숙한 멜로디를 곁들였다. 무대에서 내려온 가수들은 관객석까지 파고들어 팬미팅처럼 껴안고 꽃다발을 주고받거나 휴대전화 사진을 함께 찍는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말대로 ‘노래정치’이자 ‘음악폭탄’이다. 노동신문은 “강성국가 건설을 선도하는 제일 나팔수”라고 극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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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지난 주말 김정은의 친솔(親率) 악단이 베이징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공연 3시간을 남기고 돌연 평양으로 철수해버린 것이다. 방중 공연이 불발된 구체적 배경은 베일에 싸였다. 그저 “공작(사업) 측면에서 서로 간의 소통에 원인이 있다”고 중국 측이 비공식적으로 밝혔을 뿐이다. 함구하는 평양과 베이징의 속내를 알아내려 주변국에선 촉각을 곤두세웠다.

 단서는 베이징~평양 간 국제통화에서 풀렸다고 한다. 공산당 간부 등 3000여 명의 관객맞이를 앞두고 벌어진 긴박한 상황은 평양에 실시간으로 보고됐다. 미국 등 서방의 정보 당국은 이를 놓치지 않고 감청했다. 국가정보원이 “김정은 숭배 내용 때문”이라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것도 이를 토대로 한 것이란 게 대북 정보 관계자의 귀띔이다.

 북한 조선중앙TV의 모란봉공연 실황중계를 꼼꼼히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몇몇 노래를 빼고 대부분 김정은과 그 가계(家系) 찬양 일색이다.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는 대표곡은 “위대한 김정은 동지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를 되풀이한다. 김정일 시기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고 외치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그렇지만 중국 당국을 손사래 치게 한 건 노래가 아니다. 중국어로 부르는 것도 아닌데 북한 찬양 가요 몇 곡에 발끈할 속 좁은 베이징 영도그룹이 아니다. 리허설 단계에서부터 초청 측의 심기를 건드린 건 무대 영상이다.

 서정적 가요로 무대를 여는 모란봉악단은 중·후반부에 가면 찬양 농도와 곡의 스피드를 한껏 높인다. 클라이맥스다 싶은 순간이 오면 무대 배경화면에 김정은의 이른바 ‘현지지도’ 영상이 클로즈업된다. 장거리 로켓 ‘은하3호’의 시험 발사 버튼을 누르는 장면이다. 이에 맞춰 전체 관객이 기립해 끊임없이 박수를 치는 것으로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음악을 통한 숭배와 찬양, 이를 통해 충성 유도와 체제 결속을 꾀하려는 말 그대로 ‘음악정치’다.

 북·중 양측이 협상과 절충의 여지는 없었을까. 무엇보다 평양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최고존엄’이라 불리는 김정은 제1위원장 집무실의 문고리를 열고 들어가 공연 내용을 일부 수정하자고 말할 수 있는 참모가 없다. 평양역에서 악단을 전송했던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기획총책이다. 그런데 지난봄 그는 업무실책으로 숙청됐다 기사회생했다. 한참 후배인 선전선동부 간부들이 주석단에 앉은 행사를 그는 객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김기남은 “황천길목에서 돌아온 게 엊그제인데…”라며 망설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날은 12·12였다. 우리에겐 1979년 신군부의 반란으로 기억되지만 김정은에겐 다르다. 2년 전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국가 반역죄’로 무참히 처형한 날이다. 고모 김경희의 정치적 생명도 같은 날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런 끔찍한 기억 속에서 시달리고 있을 질풍노도의 31살 최고지도자다. 이런 심기의 김 제1위원장 책상에 ‘전격 철수’라는 보고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을 게 분명하다.

 모란봉악단의 철수를 보고받은 김정은은 창단 공연 때를 회상했을지 모른다. 집권 첫해인 2012년 7월 열린 첫 공연은 부인 이설주를 공개석상에 데뷔시킨 자리다. 짧은 치마와 어깨가 다 드러나는 악단 여가수의 패션스타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원쑤(怨讐)의 나라’ 미국을 상징하는 디즈니와 곰돌이 푸 캐릭터 인형이 등장하고, 화면에서 백설공주 영상과 영화 ‘록키’의 주제가가 흘렀다. 지상낙원을 주장하던 ‘이 좋은 세상’이란 노래 가사는 ‘이 좁은 세상’으로 둔갑했다. 평양판 걸그룹의 등장이란 외신의 반응이 쏟아졌다. 스위스 유학파인 청년 지도자 김정은이 개혁·개방을 결심했다는 관측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모란봉 회군(回軍)’은 김정은 체제의 한계를 오롯이 드러냈다. 젊은 최고지도자의 등장을 계기로 우상화의 낡은 옷을 벗어던질 것이라던 희망봉은 사라졌다.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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