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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계적 메가 FTA 열풍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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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달 15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중대한 무역협상이 시작됐다. 세계무역기구(WTO) 10차 각료회의다. 이 회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개도국에서 열리는 국제무역협상이다. 하지만 주목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2001년 11월 시작된 도하라운드 협상이 사실상 막을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TPP 등 메가 FTA로 가는 지구촌
한·중 FTA로 안심해선 안 될 때
정책방향 보호→개방으로 바꾸고
기업도 글로벌 역량 확보 힘써야


 도하라운드는 공산품과 농산물 관세를 다 함께 내리는 걸 목표로 해 왔다. 하지만 2008년 12월 합의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뒤 지금까지 14년을 끌어오고 있다. 이 협상은 올해 9월 미국 정부가 지금까지의 농산물 관세협상안을 뒤엎고 우루과이라운드(UR) 방식으로 되돌리자고 제안하면서 벼랑 끝에 서게 됐다. 도하라운드의 농산물 관세가 상대적으로 개도국에 유리한 반면 UR 방식은 선진국이나 개도국 모두 같은 기준으로 관세를 내려야 한다. 당연히 개도국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번 회의에서 도하라운드의 수명이 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이 강경으로 선회한 배경에는 지난 11월 12일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있다. TPP 협상 타결로 통상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고 WTO를 활용할 필요성이 떨어진 것이다. 12개국이 참여한 TPP가 WTO 162개 회원국이 참여한 도하라운드의 운명을 좌우할지 모르게 된 셈이다. TPP가 WTO를 사실상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금 세계엔 전례 없는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흉내에 그친 수많은 기존의 FTA와는 다르게 거대 경제권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가 한꺼번에 참여해 세계 무역 판도를 바꾸는 FTA 협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TPP 협상이 타결되면서 당장 일본과 유럽연합(EU) 간의 FTA가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또한 EU와 내년 초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초안을 확정해 문안 수정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TTIP는 단순히 두 국가 간 FTA가 아니라 사실상 또 하나의 라운드와 맞먹는 무역협상이다. 더욱이 멕시코와 캐나다가 이미 EU와 FTA를 체결한 점을 감안하면 TTIP는 세계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북미 경제권과 EU 경제권의 시장 통합을 위한 초석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메가 FTA 경쟁은 FTA 허브라는 한국의 장점을 급속히 축소시킬 수 있다. 좋든 싫든 한·중 FTA 발효 뒤 정부의 통상정책이 메가 FTA로 옮겨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는 이미 TPP 참여의사를 밝히고 한·중·일 FTA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남미 6개국과의 FTA도 추진하며 메가 FTA 협상 전선에서 만회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메가 FTA 경쟁구도에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개방을 향한 우리의 확고한 방향성 정립이다. 예를 들어 산업계 반발로 무산된 일본과의 FTA는 이제 한·중·일 FTA, RCEP, TPP 협상에서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 특히 양자 간 협상에서 지키고 보호하려던 산업계 이해가 3국 간, 다자간의 중첩된 협상구도 속에서 관철되기는 매우 어려운 구조다. 따라서 메가 FTA 경쟁의 종착점에서 갖추게 될 사회, 문화, 법제도 및 경제환경의 국제기준을 수용할 정책의지와 방향부터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책의 일관성 결여로 혼란이 가중될 뿐 아니라 유효기간이 길지 않은 정책들에 과도한 행정자원과 재원이 소진되는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우리 산업계도 메가 FTA에 대비해 하루속히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은 더 이상 대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정책 보호의 품 안에서 키워진 중소기업들도 곧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게 된다. 우리 산업계가 조달·판매·인사 등 경영 전반에 있어 최소한 싱가포르·상하이(上海)·홍콩 기업들과 맞먹는 수준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하루빨리 갖춰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회사들마다 글로벌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이고 언어환경도 보다 국제화해야 한다.

 지난 수년간 꾸준히 지속되는 무역흑자는 우리 경제에 오히려 함정이 될지 모른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국내 경기 악화로 투자가 총저축에 미치지 못하는 불황과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의 경상수지 흑자 확대는 지난 ‘잃어버린 20년’ 때의 일본 상황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일본 아베노믹스의 마지막 화살이다. 아베노믹스의 마지막 화살은 특정 산업을 지원하거나 수입을 막아 무역흑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TPP 타결로 국영기업의 경쟁조건을 강화하고 농업 부문 개혁을 앞당겼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메가 FTA 경쟁시대에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카드도 끝까지 보호장벽을 지켜내는 게 아니다. 어느 때보다 험난한 개방 파고를 헤치며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려는 정부의 용기와 이를 떠받치는 우리 산업계의 노력이 절실하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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