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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하룻밤’ 윤계상 & 한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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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상&한예리. [사진=전소윤(STUDIO 706)]


“푸핫핫! 예리 지금 엄청 불편해요.” 윤계상(37)의 폭로에 그의 무릎을 베고 귀엽게 누워 있던 한예리(31)도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연인처럼 편안한 포즈를 주문했더니, 쑥스러운 눈치다. 짓궂은 표정으로 장난칠 때가 외려 더 편해 보인다. 틈만 나면 만담하듯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영락없이 ‘극적인 하룻밤’(12월 3일 개봉, 하기호 감독)의 정훈과 시후 같다.

드라마 ‘로드 넘버원’(MBC, 2010)에서 국군 장교(윤계상)와 인민군 간호사(한예리)로 처음 만난 둘은 2년 전 윤계상이 한예리의 소속사에 들어오며 더 가까워졌다. 한예리의 말처럼 “별 일 없어도 다들 그냥 자주 만난다”는 소속사 분위기도 한 몫 했지만, 서로에게 닮은 구석이 있다는 걸 은연중에 느꼈기 때문이다. 서로를 편안하게 배려하면서도, 상대방이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이. 그건 영화 속 정훈과 시후도 다르지 않다. ‘극적인 하룻밤’에서 둘은 각자 전 애인의 결혼식에 왔다가 만난 처량한 관계다. 실연의 아픔 탓에 함께 한 하룻밤은 뜻밖에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된다. 열 칸짜리 커피 쿠폰을 다 채울 때까지만 더 자기로 ‘쿨’하게 약속했는데, 둘 사이엔 어느 새 설레는 감정이 싹을 튼다. 다소 비현실적인 로맨스가 문득문득 사람 냄새를 풍기는 건 전적으로 두 배우 덕분이다.

‘극적인 하룻밤’이 개봉한 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윤계상과 한예리를 만났다. 새벽부터 내린 함박눈이 거짓말처럼 녹아 사라지고, 기분 좋은 설렘이 어둠과 함께 찾아들었다. 두 사람은 느긋하고 허심탄회하게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는 주연급 여배우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잖아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여배우를 위한 시나리오가 많이 없어지기도 했고요.” 첫 로코 출연 소감을 묻자 한예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데뷔 8년차 배우의 뼈 있는 겸손으로 들렸다. 사랑스러운 매력과 시선을 사로잡는 연기력. 로코 여주인공의 덕목이 이 두 가지라면 오래 전부터 그는 차고 넘치는 배우였으니까.

의리 있는 북한 탁구 선수(코리아)부터 조선시대 백정의 야무진 누이 동생(군도: 민란의 시대), 거친 바다 사내들 틈에서 가까스로 살아남는 조선족 처녀(해무)까지 상업영화에서 한예리는 주로 북부지역의 생활력 강한 질박한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다르다. 엉뚱한 상황도 철썩 같이 믿게 만드는 한예리의 독특한 현실감각은 미쟝센영화제 수상 단편 ‘백년해로외전’(2009, 강진아 감독)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이 영화에서 그는 편의점 알바생 혁근(이종필)의 죽은 여자친구 차경을 연기했다. 차경을 잊지 못한 혁근의 환상 속에서 그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처참한 순간마저 눈부시고, 그래서 더 애처롭다. 영화에서 한예리가 사랑스럽다면 거기에는 늘 이유가 있었다.

‘극적인 하룻밤’에서 박봉의 직업과 동떨어진 그림 같은 집에 살며 예쁘장한 의상을 패션쇼 하듯 갈아입는 시후가 낯설었던 이유다.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한 것도 조금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현실에 발붙여서 연기할 배우를 찾으셨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에선 시후가 ‘몸친’ 관계에 대해 훨씬 더 쿨하고 와일드하거든요. ‘여자는 안 그런데’ 싶은 장면은 감독님과 상의해서 바꿔 나갔죠.”

“오그라드는 건 못 참는” 한예리가 “매 순간 시후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던 건” 윤계상의 힘이 컸다. “영화 속 정훈이 윤계상과 빼닮았다”는 그는 시후가 만나기 싫은 전 애인의 개업식에 가던 날 정훈이 곁을 지켜준 장면을 떠올렸다. “사려 깊게 확실한 내 편이 돼주는 것만큼 멋진 모습도 없는 것 같아요.”

‘극적인 하룻밤’은 한예리가 아껴왔던 예쁜 모습을 마음껏 보여준 영화지만 여러 모로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혹독한 영화 속 경험도 훌훌 털어낼 줄 아는 배우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에게 무용은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가장 강력한 처방이다. “무대에서 춤을 출 때 가장 섹시해진 기분이 들어요(웃음). 지금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친구들과 공연을 해요. 올해 못해서 내년엔 꼭 공연을 하는 게 목표에요.”

요즘 한예리는 드라마 ‘상상고양이’(MBC every1)에서 고양이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가족같은 고양이 금손이를 추억하고, 대선배 안성기와 금광을 둘러싼 액션 영화 ‘사냥’(내년 개봉, 이우철 감독)을 촬영하며 쉴 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년 초에는 김종관 감독의 장편 영화 ‘최악의 영화’가 개봉한다. 김고은, 박소담 등 자신처럼 쌍거풀 없는 여배우들이 경쟁하듯 인기를 얻는 상황이 조금은 불안하지 않을까? “오히려 반갑죠. 미의 기준이 다양해진 만큼 시장도 더 넓어질 거라고 기대해요. 여배우를 위한 더 다양한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혜로운 여배우의 우문 현답이다.
 
'현실 남친'. 윤계상의 별명 중 하나다. 스크린 속 모습이 현실적인 남자 친구 같다는 의미에서다. 개구지고 밝지만, 연애와 진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옆집 오빠나 대학 선배 같은 남자들을 윤계상은 늘 담백하게 연기했다.

'극적인 하룻밤'의 정훈은 앞날이 불안한 직업 때문에 새로운 연애 앞에서 머뭇거리는 청년이다. 그 모습이 연애가 생활이 돼버린 홈쇼핑 PD 재영('6년째 연애중'), 부박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좇는 에로영화 감독 정우('레드 카펫')와 다른 듯 비슷하다.

"사람들이 힘을 빼고, 편안한 제 모습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한동안 ‘소수의견’(6월 24일 개봉, 김성제 감독)처럼 무겁고 진지한 작품을 좋아했었거든요." 돌이켜보면 윤계상은 지난 10년간 21편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스스로를 너무 혹사시킨다는 느낌이 들만큼. “1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어요.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 나를 극단으로 내몰았어요. 몸도 많이 상했죠.”

그가 심경의 변화를 느낀 건 2년 전, ‘소수의견’의 개봉이 미뤄지면서다. “내가 고갈돼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바닥을 친 거죠. ‘난 왜 미친 듯이 연기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그제야 날 도와주던 사람들이 보였죠. 연기에 대한 걱정과 고집을 이젠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허심탄회하게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놓는 그에게서 단단하게 여문 심지가 엿보였다. 그는 현실 앞에 나약해지는 정훈에 공감했다고 했다.

“한국 남자들은 사랑에 대한 ‘주입식 책임감’같은 게 있어요. 떳떳한 남자가 돼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대개 정훈처럼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은 낮아요. 저도 그랬고요.” 윤계상은 한예리의 귀여우면서도 진지하고, 또 연기에 깊게 몰입하는 면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극중 시후와 정훈이 속마음을 드러내며 싸우는 장면이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예리가 자학하는 정훈에게 울먹거리며 ‘나도 싫어,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 나도 싫다고’라고 하잖아요. 분노와 슬픔이 뒤엉킨 감정을 내뿜을 때 연기인 걸 알면서도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그는 최근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어촌편2’(tvN)에 출연, 순진무구한 면모를 보여주며 화제를 모았다. “조심하려고 했는데, 성격을 다 들켜버렸어요(웃음). 원래 어떤 것에 몰두하면 미친 듯이 빠져들어요. 달라진 면도 있죠. 20대의 윤계상은 일밖에 몰랐는데, 지금 전 일보다 더 소중한 게 생겼어요. 가족, 애완견과 함께 하는 일상이죠.” 그는 쉬엄쉬엄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또 다시 다음 작품을 고민 중이다. “다음 작품은 멜로나 코미디는 아닐 거예요. 관성대로 연기할 순 없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색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찾아뵐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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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