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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 파이터로 나섰지만 … 한은, 돈 풀기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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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은 한국은행이 받드는 신줏단지다. 그동안엔 뛰는 물가를 끌어내리는 일방통행이었다. 물가상승률이 2013년부터 2년 연속 1%대로 가라앉는데도 한은은 일방통행을 고집했다.

그러나 올해 물가상승률이 0%대로 가라앉자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공식화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힘없이 떨어지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는 상황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겪었다. 서영경 한은 부총재보는 “한국 경제의 적정 인플레이션은 2% 수준”이라며 “1%대 물가는 경제 활력을 떨어뜨려 성장을 제약한다”고 말했다.

 2016~2018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는 2.0%다. 물가안정 목표제를 도입한 국가 중 경제가 안정된 선진국은 대부분 2%로 설정한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이 물가목표제를 도입한 1998년 이후 가장 낮다. 단순히 낮은 게 아니라 관리하려는 방향이 바뀌었다. 과거엔 목표치 아래로 끌어내리는 게 목적이었지만 앞으로 3년 동안은 최소한 목표치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한데 2% 목표마저 녹록지 않다. 올해 정부가 추산하는 물가상승률은 0.7%다. 내년 전망치도 1.5%에 불과하다.

 정부가 경상(명목)성장률을 관리지표로 삼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향후 경상성장률 5%대(실질성장률 3%대 +소비자물가 상승률 2%대)를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경상성장률은 물가가 반영된 지표다. 디플레이션과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와 한은의 이런 변화는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시기에 진입한 데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상승률이 3%대 이상을 기록한 과거와 달리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년 이후 물가 여건도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국제 유가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은 러시아와 중동·중남미 산유국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 그만큼 한국 수출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과 싸울 최적의 무기는 돈과 환율이다. 주류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돈을 풀면 물가는 오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이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편 건 이 때문이다.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려도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품 가격은 내려가고 수입품 가격은 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가지 다 현재로선 쓰기가 쉽지 않은 카드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에 투자돼 있던 달러가 대거 미국으로 환류할 위험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원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정책을 썼다간 외국인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외환시장을 흔들 수 있다.

 정부와 한은이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도 누가 어떤 무기로 싸울지에 대한 구체적 복안을 밝히지 않은 건 이런 고민에서다. 한은이 내놓은 대책이라곤 ‘설명책임’이 고작이다. 물가상승률이 6개월 이상 2%에서 ±0.5%포인트 넘게 벗어나면 총재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원인·전망과 통화신용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키로 했다. 그래도 목표치에 계속 미달하면 3개월에 한 번씩 설명한다. 말이 ‘설명’이지 사실상 시장에 ‘구두개입’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 정도 충격으로 물가가 반등할지는 미지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목표치 2%는 현 상황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한은은 물가안정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만약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하남현·김경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경상(명목)성장률은 가격으로 표시되는 성장률이다. 지난해 1000만원인 소득이 올해 1100만원이 됐다면 경상성장률 기준으로 10% 오른 것이다. 그런데 물가도 10% 올라 11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과거와 똑같다면 실질성장률은 0%다. 이렇게 경상성장률에서 물가상승률을 빼면 실질성장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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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