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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고전 번역, 수십 년 걸리는 건 예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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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이명학 원장은 “번역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선 영·정조 대의 성리학자 녹문(鹿門) 임성주(1711∼88)는 북한에서 환영받는 유학자로 알려져 있다. 기(氣)일원론의 시각에서 세상은 오로지 물질로만 이뤄져 있다는 주장을 펴서다. 하지만 최근 『녹문집』 1·2권을 번역한 한국고전번역교육원 이상현 교수는 “실제로 그런지는 이번에 처음으로 한글 번역이 이뤄졌으니 전문 학자들이 치열한 연구 검토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물론적 성리학자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 문화의 뿌리인 한문으로 된 고전의 한글 번역이 필요한 이유다.

 『녹문집』은 한국고전번역원이 출간했다.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기라성 같은 당대 지식인들의 문집을 집대성한 ‘한국문집총간’ 번역 사업의 일환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번역원 전체 사업의 일부일 뿐이다. 번역원은 1965년 설립 이래 『조선왕조실록』 등 ‘국책사업’ 규모의 대형 번역작업에 매달려 왔다. 올해로 설립 50년을 맞은 번역원의 이명학(60) 원장을 최근 서울 구기터널 근처 사무실에서 만났다. 현황과 과제에 대해 물었다.

 - 엇비슷한 기관이 많아 번역원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헷갈린다.

 “우리는 한문 원문을 한글로 번역해 연구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1차 자료로 제공하는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고전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과는 차별화된다.”

 - 고전 번역이 왜 필요한가.

 “과거와 단절돼 잃어버렸던 우리의 역사·사상·문화·전통을 되찾자는 취지다. 자기 나라의 역사나 전통을 몰라서는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기 어렵다.”

 번역원은 2007년 공식 출범했다. 그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가 우리 것, 민족문화를 되살리자는 196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65년 설립됐다. 박종화·이병도·최현배 등 당대의 대가들이 뜻을 모아 만들었다.

 - 그간 최고의 성과를 꼽는다면.

 “역시 『조선왕조실록』 번역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힘을 합쳐 4800만 자 분량의 실록 전체를 93년 완역했다. 번역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2011년부터 재번역하고 있다. 2억4000만 자 분량의 『승정원일기』, 4800만 자 분량의 『일성록』 등은 지금의 번역 속도로는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릴 대형 사업들이다.”

 -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

 “한문만 잘한다고 고전을 번역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시대의 제도·정치상황·문화에 대해 두루 통달해야 한다. 그런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번역원의 7년 교육 과정을 마쳐야 번역 작업에 투입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 대한 처우가 형편없다. 30대 중반인 번역자에게 중소기업 초봉 정도 밖에 못 준다.”

 - 결국 예산 문제인가.

 “나름 사명감도 있고 고전 번역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번역원은 2018년 서울 은평구에 새 건물을 지어 입주한다. 이 원장은 “1층에 도서관을 지어 주민에 개방하고, 일반인 대상 인문학 강좌도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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