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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공중증에 갇힌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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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공한증(恐韓症)은 중국이 한국을 겁낼 때 쓰는 말이다. 멀쩡한 중국 축구가 한국만 만나면 팔다리 따로 놀다 맥없이 지는 병. 이 병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197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0대 1이 시작이었다. 이후 2010년까지 국가대표끼리 겨루는 A매치에서 중국은 한국과 27번 싸워 27번을 다 졌다. 5000만 한국을 못 당해내다니. 13억 중국엔 스트레스다. 공한증이란 말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흐뭇함이 있다.

 그러나 흐뭇함은 축구뿐이다. 이제는 거꾸로 공중증(恐中症)을 걱정할 판이다. 이달 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군 샤오미의 체중계 미스케일 판매금지의 예가 딱 그렇다. 샤오미 체중계는 싸고 편리해서 한국 소비자에게도 인기몰이를 했다. 지난해 첫 판매부터 2시간 만에 8만 대가 매진됐다. 미밴드, 배터리와 함께 샤오미 돌풍을 부른 삼총사다. 그런데 지난 8월 돌연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 판매금지 처분을 내렸다. 3개월간 유예를 거쳐 지난달부터는 어느 곳에서도 팔지 않는다. 기표원 측은 “민원이 많았다”며 “법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다. 법정도량형인 ㎏ 외에 근(斤)이나 파운드 표시가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계량에 관한 법률 제6조는 ‘비법정 단위로 표시된 계량기나 상품을 제조·수입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소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샤오미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ㅉㅉㅉ…. 미국에선 ㎞와 마일을 같이 표시한 차도 아무 문제 없이 팔리는데. 이런 게 비관세 장벽 아닌가. 우리가 일본이나 유럽을 욕해 왔던 바로 그 비관세 장벽. 창피하다. 샤오미가 그렇게 무섭나.” SNS상의 여론은 대충 이랬다. “되레 샤오미 인지도만 올려준 꼴”이란 지적은 특히 아팠다. 법규만 따지다 속내만 드러낸 정부보다 우리 소비자들이 몇 수 위였다.

 공한증이 그랬듯이 공중증 역시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처음엔 농수산식품, 다음엔 게임 업종, 지난해부턴 금융·헬스케어·IT(정보기술) 쪽으로 퍼졌다. 중국안방보험이 동양생명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그랬다. 우리보다 몇 수 아래라면서도 금융 당국은 중국 자본을 겁냈다. 감독 당국 관계자는 “중국 자본은 무지막지하다. 대륙 굴기가 무섭다. 지금은 시작이지만 언제 한국 금융시장을 통째 삼키려 들지 모른다”며 우려했다. 미국·유럽·일본에 진작 열어준 시장인데도 중국 자본만은 막고 싶어 했다. 1년여를 끌던 당국은 결국 동양생명 인수 인가를 올 6월 내줬다.

 공중증은 ‘메이드인 차이나’보다 ‘차이나 머니’ 앞에서 더 커진다. 중국 자본의 한국 기업 투자는 지난해 약 1700만 달러에서 올해 9월까지 약 12억 달러로 1년 새 20배가량 늘었다. 최근엔 콘텐트·헬스케어 업체가 집중 공략 대상이다. 임상시험 수탁업체 드림CIS는 타이거매드에, 애니메이션 ‘넛잡’으로 유명한 레드로버는 쑤닝유니버설에 넘어갔다. 차이나 머니의 한국 공습은 대개 국내 기업의 기술과 노하우를 단시간에 확보하려는 게 목적이다. 이런 중국 자본에 투자처를 알선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한국 에이전트 회사만 30곳이 넘는다. 충무로와 여의도에선 “중국에 다 뺏기면 우린 뭘 먹고사느냐”는 아우성이 나온 지 오래다. 하기야 한국의 자존심 반도체마저 넘어서겠다며 1·3·5니 1·9·5니(1년 연봉의 3배, 9배를 5년간 보장) 인력 빼가기에 열을 올리는 판이니 다른 쪽이야 더 말해 뭣하랴.

 중국 자본이 안 무섭고 중국 기술이 겁 안 난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돌아보자. 언제는 우리 앞에 그런 자본·기술이 없었나. 미국·일본·유럽의 더 세고 잘난 기술·자본의 틈새를 비집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게 우리 선배들이다. 마음이 무너지면 다리가 떨려 제 실력도 못 내고 허무하게 진다. 그러니 샤오미 판매금지 같은 ‘자뻑’도 나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비웃던 공한증의 중국 축구와 뭐가 다른가. 수년 전 이건희 삼성 회장은 측근에게 “중국이 아직은 겁 안 난다”고 했단다. “위협을 느낄 만한 기업가가 안 보인다”는 이유였다. 그렇다. 그깟 공중증 훌훌 털자. 중국 축구가 공한증을 먼저 떨쳐내기 전에.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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