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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이슬람 베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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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의 공기가 상쾌했다. 하늘도 더할 나위 없이 파랗게 보였다. 며칠 만에 맛본 ‘자유’ 덕분이었다. 직전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렀었다.

 사우디에선 숙소 밖을 나설 때마다 이슬람 가운과 베일을 둘러야 했다. 현지에선 “절대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 된다. 종교 경찰이 뭐라고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끄러운 질감의 베일과 머리카락의 조합은 그러나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다. 마음을 졸일 일이 수시로 벌어졌다. 결과적으론 별일 없었다. 자국민이 아니어서 봐주나 했다. 아니었다.

 일행 중 팔등신 미녀들이 있었다. 이들 대여섯 명이 가운 자락을 휘날리며 거리로 나섰다가 이내 돌아왔다.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 드러나자 종교 경찰이 득달같이 나타났다고 한다. 질린 듯했다. 종교 경찰은 고단수였다. 머리카락이란 현상만이 아닌 이로 인해 야기될 영향까지 봤던 게다. 그곳 남성들의 종교적 평정심에 풍파를 일으키지 않을 외모여야 무탈할 수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식당 경험도 기이했다. 가족이 아닌 남성과는 동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골방에서 생면부지의 남성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했다. “저 방에 있는 남성들이 가족 같은 사람들이고 이 방 사람들은 모르는 이들”이라고 강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알코올이라곤 한 방울도 들지 않은 맥주를 마시면서도 취했다.

 그러다 봤다. 쇼핑센터의 여성 전용층에서였다. 휘황찬란한 조명 속에서 그간 거리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고 보더라도 눈뿐이었던 사우디 여성들이 거기에 있었다. 이슬람 가운도 베일도 벗은 그네들은 눈부실 정도로 활기차고 화려했다.

 생각했다. “화성에선 살아도 사우디에선 못 살겠다”고. 사실 이는 부당한 평가일 수 있다. 17, 18세기 유럽인들은 무슬림 여성의 삶이 서구 여성보다 나았고 다양했다는 데 놀라곤 했다.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게 된 건 서구의 가치관이 무슬림 세계로 침투하면서 생긴 반작용이다. 겸손과 정숙이다. 사우디가 강했다. 그저 여성 인권 후진국이라고 비난하기엔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얘기다. 나름의 방식으로 여성을 배려한다고도 들었다.

 그럼에도 얼마 전 건국 83년 만에 처음으로 사우디 여성들이 공직 선거에 나서고 또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소식엔 뭉클했다. 이네들의 눈물 속에서 차별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열망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디 사우디 여성뿐이랴. 사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나름의 ‘사우디’에 있는 듯한 순간을 만나곤 하니까.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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