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인생이 지겹다”는 아홉 살 딸에게 뭐라고 말할까요

기사 이미지
 
기사 이미지
아이들의 엉뚱한 이야기에 당황하는 부모들의 사연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 개의 사연을 소개하고 각각의 해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엉뚱한 고민에 빠진 어린 자녀

Q1 부모와 하는 말하기 놀이

(엄마 없어도 좋은가 봐요)남편과 헤어져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주부입니다. 갑자기 아이가 ‘엄마 죽으면 어떡해’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아빠한테 연락해야지’라고 했더니, 그럼 ‘아빠랑 같이 사는 거야’라며 좋아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엄마가 죽어야만 아빠랑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싶어 쓸쓸하고 허탈했습니다.

A 어린 자녀와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소통이 어려운 건 부모가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보는 세상과 아이들이 보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단어를 써도 의미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오해가 발생하죠. 그런데 아이들에게 어른들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하라고 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어른처럼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자녀와 소통하는 방법은 어른이 자녀 수준으로 눈높이를 맞추는 겁니다. 초등 2학년 아이에게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어른들이 받는 느낌과 다릅니다. 아직 정확하게 죽음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아이가 말하는 죽음이란 단어에 대해 오늘 사연처럼 너무 충격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엄마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니까요. ‘엄마가 죽으면 어떡해’란 아이의 말에 ‘아들, 죽음이 뭐예요’라고 다시 질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는 엄마와 말하는 놀이를 하는 중이니까요. ‘우리 아이가 죽음이란 어려운 단어도 쓰다니 기특하다’ 생각하셔도 됩니다.

 
Q2 현실과 환상이 섞인 세상

(진짜 엄마 찾아달래요) 초등학교 2학년이 아들이 제가 친엄마가 아닌 것 같다며 울면서 친자 확인을 하자고 합니다. ‘어렸을 때 전철에서 바뀐 것 같다’고 하네요. 1학년 땐 옛날 화폐에 빠져 인사동을 돌아다니고 한때는 은행 광고에 빠져 하교 후 은행에 가서 살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아들 때문에 걱정입니다.

A 진짜 엄마를 친엄마가 아니라고 믿고 우는 것, 단순한 거짓말이 아닌 망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망상은 가짜 사실을 진짜 사실로 믿는 사고 장애의 한 종류입니다. 이런 망상을 어른이 한다면 병적인 것으로 보고 상담을 받아야겠지만 어린 자녀들의 이런 망상은 병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들은 현실과 환상을 잘 구분하지 못하죠. 그래서 악몽을 꾼 후 그것을 현실인 줄 알고 한참 동안 울거나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현실검증력이라는 기능이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죠. 현실검증력은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생각을 현실의 증거와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를요. 시간이 지나면 갖게 되는 기능이기에 어린 자녀가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너무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더욱이 이런 비현실적인 생각과 느낌은 창조성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현실검증력이 너무 강한 어른들은 창조성이 떨어지기 쉽죠. 내부에서 나오는 신기하고 환상적인 생각을 억눌러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런 엉뚱한 이야기를 할 때 야단을 치거나 못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나이이고 창조적 사고 발달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사실이냐’ 묻지 마시고 연극하듯 재미있게 놀아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Q3 같은 단어, 다른 의미

(딸이 괜히 짜증내요)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요즘 ‘지겨워’라는 말을 달고 삽니다. 그리고 이유 없이 화가 난다며 짜증을 부리고요. 딸에게 어떻게 해줘야 이런 행동을 안 할까요.

A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인생이 지겹다고 말하면 엄마는 놀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은 좋지 않은 말이니 어떻게 해줘야 이런 말을 안 할까 고민도 되죠. 그런데 이런 엄마의 사고의 흐름 자체가 어른의 것입니다. 경직된 사고일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미혼 시절을 보냈던 여성도 엄마가 되면 융통성 없고 무서운 선생님이 되기 쉽습니다. 동기는 아이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오히려 아이의 자유로운 사고 발달과 언어 발달에 도움이 안 될 수 있습니다.

 2학년 딸이 ‘지겨워’라고 말하면 일단 ‘우리 아이가 어른 말을 흉내 내는구나, 잘 크고 있네’라고 속으로 기특해하시면 됩니다. 그 말을 받아 주고 되물어 주는 것도 좋습니다. ‘딸아, 어떤 게 지겨우니’ 하면서 더 구체적으로 대답하게 하는 거죠. 엄마가 하는 ‘지겨워’와 아이가 하는 ‘지겨워’는 발음은 같아도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서로 알아가는 대화 놀이를 하는 거죠. 아이의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되고, 엄마가 잘 받아주니 아이도 기분 좋고, 엄마도 아이와 재미있게 놀며 아이의 성장을 느끼니 기분이 으쓱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겨워는 나쁜 말이고 아이들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니,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야단치면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와는 마음 속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Q4 문제는 어른에게 있다

(중1 아들은 결정장애) 다섯 살 딸의 교육 문제로 고민입니다. 또래 친구들은 한글도 잘 쓰고 영어도 잘하는 걸 보니 늦기 전에 뭘 시켜야 하나 싶습니다. 한편으론 한창 놀 시기인데 스트레스 주는 것 아닌가 걱정도 되고요. 중1 아들은 결정을 잘 못해서 걱정입니다. 단적인 예로 음식을 시켜 먹을 때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해서 늘 고민에 빠져요. 이게 다 저를 닮아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러거든요. 남자가 남자답게 결정을 잘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과감하게 결정을 잘하는 아이가 될까요.

A ‘투사’라는 심리 현상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projection인데 영화를 큰 화면으로 볼 때 사용하는 프로젝터란 기기처럼 내 마음을 남에게 비추는 것이죠. 내 마음이 남에게 비추어 보이니 내 눈에는 내 마음이 아니라 저 사람의 마음으로 보입니다. 내가 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인데 투사를 하니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죠.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기 쉽습니다. 아이의 생각이고 아이에게 중요한 문제인 듯하지만 사실은 부모 생각인 거죠. 투사한 내용을 아이의 것으로 이해하면 진짜 아이의 마음을 알기 어려워집니다.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떡하지, 뛰어놀 아이인데 그냥 놀리면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게 엄마의 생각이죠. 이때 정답은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아이가 영어도 한글도 배우고 싶다고 하면 기회를 만들어 주면 되고, 그냥 뛰어놀고 싶다고 하면 그냥 뛰어놀게 하면 됩니다. 배우고 싶은데 엄마 생각에 노는 것이 좋겠다 판단해서 놀게 하면 아이에겐 그게 스트레스일 수 있죠. 반대로 뛰어놀고 싶은데 억지로 공부시키면 정말 공부할 나이에 동기가 약해져 오히려 학습 능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남자라면 결정을 잘해야 한다는 것도 부모의 생각이 아이에게 비친 것입니다. 정상적인 자녀인데 결정장애가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겁니다. 내 문제가 투사된 거죠. 그러다 보면 대화도 부정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자녀와 부모의 좋은 대화는 자녀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부모가 따라가 주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