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김식의 야구노트] 불안장애 이긴 그레인키, 3400만 달러 사나이 되다

기사 이미지

“류현진의 머리 색은 원래 저런가?”

애리조나와 6년 2400억원 계약
한때 우울증으로 대인기피 고통
2006년 1년 간 정신과 치료받아
강한 의지로 예민한 멘털 극복
고교 동창 아내도 따뜻한 내조


 지난 2013년 2월 미국 애리조나 글렌데일의 LA 다저스 캠프. 한국 취재진이 잭 그레인키(32)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그가 도리어 기자들에게 물었다. 취재진이 “원래 검은색인데 염색을 한 것”이라고 답하자 “알았다”며 휙 돌아섰다. 그나마 그레인키의 당시 모습은 많이 나아진 것이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동료들과 잡담을 하는 일도 없었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그레인키는 항상 그늘을 갖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등 사회불안장애를 겪고 있었던 그는 2002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6순위로 캔자스시티에 입단해 2004년 빅리그로 올라갔다. 2005년 리그 최다패(5승17패, 평균자책점 5.80)를 기록하자 문제가 커졌다. 22세 유망주가 겪을 수 있는 성장통이었지만 ‘승부욕의 화신’ 그레인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2006년 캠프에서 짐을 싸고 뛰쳐나갔다. 훗날 그레인키는 “내가 앓았던 병은 자살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던지는 게 싫어져서 야구를 그만 둘 수도 있었다.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2006년 한 시즌을 통째로 쉬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는 선발 등판 후 나흘을 쉬는 동안 열정과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펜투수가 되거나 타자로 전향할 생각도 했다. 그레인키는 고교 시절 4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타자였다. 지금도 메이저리그(MLB) 투수 중 타격 실력이 가장 좋다. 그레인키는 눈물을 흘리며 방망이를 껴안고 잠들기도 했다.

 치료를 받고 돌아온 그레인키는 2009년 16승8패, 평균자책점 2.16을 기록하며 사이영상을 받았다. 밀워키, LA 에인절스를 거쳐 2013년 다저스로 이적한 게 그의 야구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레인키는 캔자스시티와의 계약서에 ‘보스턴이나 뉴욕 양키스로 자신을 트레이드할 수 없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미디어와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는 게 싫어서였다. 다저스도 상당히 시끄러운 빅마켓 팀이지만 정신적으로 강해진 그레인키는 거부하지 않았다. 6년 총액 1억4700만 달러(약 1740억원)에 사인한 그는 “돈을 적게 주는 1위 팀보다 돈을 많이 주는 꼴찌 팀에서 뛰고 싶다”고도 했다. “우승하고 싶다” 는 등의 립서비스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캔자스시티 시절 그레인키는 최고 159㎞의 직구와 140㎞ 중반대의 슬라이더를 주로 던졌다. MLB 선발 투수로는 체격(1m83㎝, 88㎏)이 작은 편이지만 힘을 잘 모은 뒤 폭발시키는 자세가 돋보인다. 최근 구속이 5㎞ 정도 떨어지자 체인지업으로 주무기로 바꾸면서 왼손타자에 대한 약점을 극복했다. 그는 현역 선수 가운데 세이버매트릭스(야구통계)를 가장 잘 활용한다. 경기 전 타자의 장단점을 완벽히 분석하고, 상황에 따라 피칭 전략을 수정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구원투수들의 등판 시점까지 예고한다.

그의 재능이 집약된 시즌이 2015년이었다. 다저스에서 19승3패, 평균자책점 1.66을 기록한 그는 자유계약선수(FA)가 됐다. 그리고는 지난주 애리조나와 6년 총액 2억650만 달러(약 2400억원)에 계약했다. 연평균 3442만 달러(약 400억원)로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7년 2억1500만 달러·연평균 357억원)보다 높은 MLB 전체에서도 최고 몸값을 받는 선수가 됐다.

 천재와 천치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극도로 예민한 멘털의 소유자였던 그레인키는 강한 의지로 약점을 하나씩 지워갔다. 고교 동창이자 연인이었던 에밀리 쿠차가 냉철한 천재를 따뜻하게 감쌌다. 그레인키가 “난 너보다 야구를 더 사랑해”라고 말해도 쿠차는 웃고 기다렸다. 결국 둘은 2009년 결혼했다. 립서비스는 죽어도 못하는 그레인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