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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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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화가

덧날 것 같다. 따끔하다. 이번 겨울 껴입은 하얀 스웨터의 보풀이 매번 내 어깨의 뾰루지를 찌른다. 그럼에도 그것을 벗을 수 없다. 내 몸을 따스하게 감싸고 포근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 나를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으로 비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스웨터를 고집한다. 아니, 그 소소한 고통에 안주하고 그 따끔거림에 오히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사랑이 그렇다.

사랑은 날카로운 통증으로 티 없는 마음과 몸을 급습한다
상대의 마음을 가져오고 그에게 마음을 가져가는 게 사랑


 몰아치는 광풍과 파도를 피하지만 나는 발이 묶이고 따가운 통증의 늪에 빠지고 만다. 정당한 나의 의지와 온전한 나의 몸이 나의 통제를 벗어난다. 그 속에서 내가 숨 쉬는 소리를 확인한다. 물레를 잣다가 바늘에 찔린 ‘숲 속의 공주’는 그의 백옥 같은 손가락에 방울지는 붉은 피를 보고 잠든다. 일곱 난쟁이의 오두막에 피신한 ‘백설 공주’는 사과를 베어 물고 붉은 피를 하얀 뺨에 흘린 채 잠든다. 더 이상 이들은 스스로 의식과 몸을 조절할 수 없고 깊고 깊은 세계에 오랫동안 갇힌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밭에 뚝뚝 떨어진 붉은 핏방울처럼 사랑은 찌르듯 날카로운 통증으로 티 없는 마음과 몸을 급습한다. 그 통증은 차가운 수정잔에 끓는 물을 부은 것처럼 첨예한 만남으로 생긴다. 이 충돌을 막을 세력은 이 세상에 없을 것 같다. 아픔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것들이 결합하는 모순의 실체, 그 신비한 통합은 무수한 불가능들을 가능케 했고 문명을 지탱시켜 왔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1869~1939)는 사랑의 시작을 “느닷없이 당하는 일격”이라 했다. 그리스 신화는 레다(Leda)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린 제우스(Zeus)가 백조로 변신해 레다에게 다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그렇게 묘사한다. “거대한 백조의 날개는 여전히 비틀거리는 소녀 위에 펄떡인다…. 겁에 질려 힘없는 소녀의 손가락이 어찌 깃털 싸인 영광을 밀쳐낼 수 있으랴….” 레다는 결국 제우스가 둔갑한 백조의 부드럽고 섬세한 깃털의 움직임에 따라 점점 거부할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져든다.

 레다는 두 개의 알을 낳게 되고 그중 한 알에서 두 딸이 태어난다. 이들은 모두 ‘트로이전쟁’ ‘아가멤논의 사건’과 같은 지중해 문명의 대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예이츠는 ‘레다와 백조’ 신화를 통해 신과 인간, 짐승과 소녀, 남과 여라는 극단적 만남의 불가사의한 결합이 문명을 끌고 가는 원천으로 보는 것 같다.

 이 신화가 남성의 침입을 다룬 이야기라면 마르크 샤갈의 그림 ‘생일’(1915)은 여인의 방문을 그린다. 그림에서 사랑하는 피앙세가 꽃다발을 들고 화가의 방에 들어섰을 때 남자는 주체할 수 없는 감격으로 그녀에게 입을 맞춘다. 샤갈의 연인 벨라는 창가로 향해 가고 화가는 그녀의 등 뒤에서 오랜 머뭇거림 끝에 간절한 마음으로 그 입맞춤을 가까스로 성사시킨다. 남자의 몸은 새처럼 허공에 떠올라 그들의 결합은 입술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력에서 자유로운 남자의 몸과 둥글게 휜 목은 ‘레다와 백조’에 등장하는 백조와 닮아 있다.

 1998년 고성 이씨의 무덤에서 병술년(1586)에 작성된 31세 미망인의 서신이 발견됐다. “원이 아버지에게”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죽은 남편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여인은 망자에게 베개를 맞대고 나누었던 사사로운 이야기를 들추면서 함께 다짐한 약속을 상기시킨다. 여인은 서로 사랑이 시작되는 때를 이렇게 표현한다. “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갔나요.” 이 편지는 상대로부터 마음을 가져오고 그에게 마음을 가져가는 것이 사랑이란다.

 마음을 가져오고 마음을 가져가는 것은 내가 원인이지 않다. 감기는 나도 모르게 찾아와서 몸살앓이를 시키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르게 가 버린다. 나는 사랑을 할 것이다. 매번 자신만만하지만 거대한 백조의 날개가 나를 감싸는 날 속수무책으로 전율할 것이다.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걸까. 은쟁반과 하얀 모시 수건 위에 청포도를 올려 손님을 기다리겠노라는 이육사의 강단을 배울까. 나의 쟁반과 수건에는 포도즙이 붉게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전수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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