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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못 먹어도 스리고!”를 부른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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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안철수 의원(이하 경칭 생략)이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온 적이 있다. 11월 24일 오후였다. 그날 나온 ‘안철수가 친노를 못 믿는 까닭은’이란 칼럼에 대한 소감이었다. “오늘 쓴 글 잘 읽었다. 자신도 개혁하지 못하는 정당은 집권해도 국가를 개혁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무력한 야당은 여당의 자만을 초래하고 결국 최대의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낡은 정치 바꿔달라는 열망을 절대 잊지 않겠다.” 그는 “건강한 야당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에 “좋은 결론을 내겠다”고 짧게 답신했다. 3주 전의 휴대전화 문자에서 이미 탈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안철수의 탈당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두 곳이다. 우선 탈당 회견문의 ‘정권 교체를 위한 정치세력화’라는 표현이다. 정권 교체라면 내년 총선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2년 뒤의 대선을 지칭한다. 또 하나는 탈당 전야 그의 집에서 새어나왔다는 “저, 굉장히 고지식한 사람입니다”라는 고함이다. 2017년 대선을 겨냥해 “못 먹어도 스리고!”를 외친 느낌이다.

 친노파가 그의 탈당 신호를 ‘엄포’로 보고 ‘나갈 자신 있으면 나가라’고 압박한 것은 상대방 패를 잘못 읽은 것이다. 안철수 입장에선 굳이 새정치민주연합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머뭇거리다 친노 패권주의가 굳어지면 대선 때 기회의 문이 닫힌다. 안철수는 정치인이다. 매번 후보 양보만 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언제까지 정치적 기부나 불쏘시개 노릇만 할 수 없다.

 진보 언론들은 일제히 그를 야권 분열의 원흉으로 몰아붙인다. “어떠한 이유로도 탈당은 정당화될 수 없다. 자멸적 선택이자 배신”이라거나 “이제 ‘새정치·정권 교체’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퍼붓는다. 탈당 충격을 흡수하려면 한시바삐 그를 고립시켜야 한다는 고민이 깔려 있다. 그러나 안철수 쪽에선 분열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라는 입장이다. 그와 가까운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 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공통분모는 의외로 바둑이다. 문재인은 시골 중학생 시절부터 틈만 나면 바둑을 두다 아마 3단까지 올랐다. 정석에 충실한 그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그만둘 때도 “고향에 내려가 실컷 바둑이나 두겠다”며 기뻐했다. 안철수의 바둑 실력도 아마 3단 수준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독특한 입문 과정이다. 그는 바둑을 둬야겠다고 마음먹은 대학 2학년 때 바둑 책부터 읽었다. 1년간 무려 40권을 뗐다고 한다. 그는 청춘콘서트에서 “18급이 아니라 바로 3급에서 바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 탈당에도 안철수의 특이한 포석이 묻어난다. 금태섭의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 따르면 안철수는 2012년 대선후보를 갑작스레 사퇴하면서 “깨끗하게 포기해야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장 후보도 선뜻 박원순에게 넘겨주었다. 안철수에겐 이 두 차례의 양보가 엄청난 정치적 자산이다. 그리고 그는 “저, 굉장히 고지식한 사람입니다”라고 선언해 버렸다. 만약 안철수가 10% 지지율을 유지한 채 대선까지 ‘마이웨이’를 고집하면 어떻게 될까. 야권에는 악몽이자 안철수에겐 큰 기회다. 문재인·박원순 중 누가 대선후보가 돼도 “한 번만 더 양보해 달라”고 요구하긴 어렵다. 국민 정서나 동양의 예의범절에도 어긋난다. 분열은 필패인 만큼 야권 지지층은 후보 단일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꼬리(안철수)가 몸통(새정치연합)을 뒤흔드는 사태가 올지 모른다.

 당장 안철수의 운명은 호남 민심이 변수다. 탈당이 야권 지각변동의 진앙지가 될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소멸할지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안철수 스스로 시대정신과 가치를 확보하지 않으면 탈당은 정치적 꼼수로 전락한다. ‘낡은 진보 청산’은 공감을 얻었지만 그의 ‘새 정치’ 구호는 여전히 모호하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일단 ‘못 먹어도 스리고!’를 불렀다. 혼자 독박을 쓰든, 새정치연합에 피박을 씌우든 운명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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