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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르펜과 트럼프, 그리고 트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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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문제없는 나라는 없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나라는 크든 작든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문제를 문제로 느끼지 못한다면 해결은 무망(無望)하다. 부부간에 대화가 없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부부 관계는 점점 나빠져 회복 불능이 될 수도 있다. 문제를 인식했다면 다음 수순은 원인을 찾는 것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해결책도 나올 수 있다.
 

국가가 처한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르펜과 트럼프
위험과 불안 요인 차단하고
내부 단속과 격리에 급급
시리아 난민 직접 영접한
트뤼도와 너무 대조적


 원인은 대개 안과 밖 양쪽에 걸쳐 있기 마련이다. 안을 돌아보지 않고 밖에서만 원인을 찾는다든가 밖을 내다보지 않고 안에서만 원인을 찾아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당 대표인 마린 르펜이나 미국 공화당의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딱해 보이는 이유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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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N은 그제 프랑스 본토 13개 광역지자체(region·레지옹)에서 실시된 지방선거 결선투표에서 전패(全敗)했다. 그 일주일 전 실시된 1차 투표에서 FN은 6개 레지옹에서 1위를 차지하는 쓰나미를 일으켰다. 특히 르펜이 출마한 북부의 노르파드칼레피카르디와 그의 조카인 마리옹 마레샬 르펜이 출마한 남부의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에서는 40%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FN은 이 두 곳에서조차 결국 승리하지 못했다.

 르펜으로서는 땅을 칠 일이다. 중도우파인 공화당과 중도좌파인 사회당이 구축해 놓은 주류 정치권의 강고(强高)한 벽을 원망할 수도 있다. 후보 간 합종연횡이 허용되는 결선투표제 탓에 선거 결과가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인 게 사실이다. 1차 투표 전체 득표율로 보면 FN(28%)은 공화당(27%)과 사회당(23%)을 누르고 이미 제1당의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FN의 최종 승리를 막기 위해 좌우의 양대 정당이 결선투표에서 ‘야합’한 결과 FN은 13곳 중 어디에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이런 담합구조를 통해 기존의 좌우 정치 엘리트들이 능력이나 업적과 무관하게 철옹성처럼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르펜의 비판에는 날카로운 데가 있다.

 르펜의 친부(親父)이자 FN의 전 당 대표였던 장마리 르펜은 200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사회당 후보인 리오넬 조스팽을 꺾고 결선에 진출했지만 사회당 지지자들이 똘똘 뭉쳐 공화당의 자크 시라크 후보를 밀어주는 바람에 고배를 들었다. FN의 집권을 막는 마지막 보루이자 양대 정당의 기득권 유지 수단이 결선투표제인 셈이다. 물론 FN이 1차 투표에서 득표율 50%의 관문을 바로 넘기면 결선투표 없이 집권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FN이 프랑스가 처한 위기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는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다.

 FN은 프랑스의 경제난은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유럽 통합이라는 영·미 신자유주의자들이 꾸민 ‘음모’와 외국 이민자 유입 증대라는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복지 부담에 따른 재정 위기도 이민자들 탓이며 테러와 폭동 등 사회불안 역시 프랑스적 가치와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외국 이민자, 특히 무슬림들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보호주의의 장벽을 높이 쌓고,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해 프랑스의 경제 및 통화 주권을 회복하고, 국경을 다시 통제해 외국인 유입을 막고, 프랑스에 동화하지 못하는 외국인을 격리 또는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요컨대 밖으로는 벽을 쌓고 내부를 단속해 프랑스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나라 밖으로 돌리며 외부의 위험과 불안 요소를 차단하고, 국론 통일과 국민 결속을 강조하며 내부의 반대자들과 소수파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나치즘과 파시즘의 공통된 속성이다. 멕시코 이민자 추방과 무슬림 입국 금지를 공공연히 외치는 트럼프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캐나다의 43세 젊은 총리 쥐스탱 트뤼도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르펜이나 트럼프와 너무 대조적이다. 그는 내년 3월까지 2만5000명(미국은 1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지난주 직접 공항에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소매를 걷어붙인 채 손수 겨울옷을 입혀 주며 일일이 “새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정작 필요한 내부의 개혁은 못하면서 동종교배를 통해 기득권 유지에 연연하고 있는 주류 정치인들도,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는 극우 정치인들도 유통기한이 다한 ‘국민국가’의 낡은 정치인 군상(群像)일 뿐이다. 개방과 연대, 존중과 연민, 평등과 공존의 가치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트뤼도야말로 21세기 ‘탈(脫)국민국가’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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