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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서 바로 온 재료로만 주문 들어와야 조리 시작…그는 대형 냉동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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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원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 인연과 철학, 셰프가 주목하는 또 다른 셰프를 통해 맛집 릴레이를 이어 갑니다.

돌이 갓 지났을 때부터 피자를 먹었다고 하니 나는 피자 집을 할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어렸을 땐 요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가 양식당 ‘장미의 숲’을 30년간 하셨지만, 내가 더운 불길 앞에서 일하는 요리사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아버지가 식당에 대형 화덕을 설치해 놓으셨다. 그 화덕에 피자를 구워내면서 내 재능과 열정이 거기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아버지 식당을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 2010년 ‘볼라레’를 시작할 당시,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돌아보면 집세를 내던 시절에 어떻게든 그 돈을 벌어야 한단 생각에 더 악착같이 했지.” 당신이 구멍가게 같은 임대 식당을 자가 소유 150평으로 늘렸듯 나 또한 그렇게 성장하길 바라셨다. 실제로 한때 ‘볼라레’ 매출이 부진했을 때, 돌파구로 ‘베라 피자(Vera Pizza·나폴리피자협회가 인정하는 정통피자)’ 인증에 매달렸으니 어른 말씀 틀린 것 없다. <본지 12월 7일자 24면 셰프릴레이 5회>

 ‘레스쁘아’의 임기학 형이랑 그런 면에서 통한다. 형도 빈손으로 시작해 프렌치 매니어들이 첫손에 꼽는 식당을 두 개나 일궜다. 알고 보니 형의 아버님과 내 부친이 각각 식당을 하던 시절, 일 끝나면 대포 한잔하던 사이였단다. 우리도 그 시절 두 분처럼 자주 만난다. 형에게 살시차(이탈리안 소시지의 일종) 만드는 법도 배우고, 같이 맛집 돌아다니며 음식 공부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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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미모리아와세(모둠생선회)


 그렇게 어울리는 무리 중에 ‘이치에’(서울 신사동) 김건 셰프가 있다. ‘이치에’는 어떻게 보면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같지 않은 이자카야다. 대부분 한국 이자카야가 공장에서 반조리된 냉동 제품을 즉석에서 데워서 안주로 내는데, ‘이치에’ 음식은 20~30분씩 걸린다. 주문과 동시에 하나하나 직접 조리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요리를 예로 들면, 파스타의 기본은 면이다. 면 삶을 때 핵심은 알덴테(al dente), 즉 이로 씹었을 때 살짝 붙을 정도로 꼬들꼬들한 식감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탈리안 레스토랑들이 면을 미리 반쯤 삶아놓는다. 신속 대량 생산을 위해서다. 문제는 삶은 면이 서로 달라붙을까 봐 뿌리는 올리브 오일이 소스와 따로 놀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이 종종 스파게티면을 숟가락에 돌돌 말아 먹는데 원래 이탈리안 파스타는 그럴 필요가 없다. 직전에 제대로 삶아 나온 면은 점성이 살아 있어 소스와 흠뻑 한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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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 셰프

 진하게 우러난 국물과 항구에서 갓 들여온 제철 생선을 합리적 가격에 만날 수 있는 곳. 2009년 ‘이노시시’라는 이름으로 서울 연남동에 처음 열었을 때부터 매니어가 생긴 이유일 게다. 지금도 ‘이치에’에는 대형 냉동고가 없다. 그날 산지에서 올라온 재료를 손질해 내놓는데 묵히고 쟁여둘 이유가 없어서란다. 정도(正道)를 걷는 요리사로서 대중에게 인정받는 것, 음식업계 선배였던 아버지가 지금 내게 바라는 모습도 그것 아닐까.

정리=강혜란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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