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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바닥을 칠 땐 정면 돌파가 답이다

[인터뷰] 열정이 바닥을 칠 땐 정면 돌파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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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정기훈 감독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11월 25일 개봉, 이하 ‘열정같은’)는 ‘애자’(2009) ‘반창꼬’(2012)에 이은 정기훈(41) 감독의 힐링 3부작 완결판이다. ‘애자’에서 가족을, ‘반창꼬’에서 연인을 위로했다면 이번엔 직장인이다. 청춘의 열정을 착취하는 2015년 한국 사회의 복판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연예부 수습 기자 도라희(박보영)의 분투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정 감독은 요즘 충무로에서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여성 캐릭터 중심의 코미디 드라마를 뚝심 있게 만들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이번엔 왜 직장인인가. “‘반창꼬’를 끝내고 결혼을 했다. 아내가 성형외과 상담사인데 환자들의 고충이나 불만을 듣는 일이 만만치 않더라. 상사에겐 늘 쪼이고, 집에만 오면 울었다. 나는 감독이라 누구에게 혼나는 경우가 덜하지 않나. 한국의 직장인들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오로지 일을 위해 산다.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던 찰나에 반짝반짝영화사의 김무령 대표가 제안을 했다.”

-하재관(정재영) 부장이 “열정만 있으면 무엇이든 못해!”라고 말하는 기성 세대를 대표한다면, 도라희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고 일축하는 신세대를 대변한다. ‘같은 열정, 다른 느낌’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열정’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다. 열정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문제는 요즘 20대에게 열정을 펼칠 공간이 없다는 거다. 열정을 펼칠 만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열정만 강요하는 사회, 그래서 열정이 지긋지긋해져버린 사회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어떤 열정에 손을 들어주고 싶었나. “물론 라희다. 사실 나도, 배우 정재영과 박보영도 열정만 가지고 바닥부터 시작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고비가 꼭 한 번씩은 온다.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극복의 순간을 라희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답은 정면 돌파다. 기자는 진실을 다루는 사람 아닌가. 의사가 사람을 살리고, 경찰이 나쁜 사람을 잡아야 하는 것처럼 정면 돌파하는 기자의 모습을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원작에선 주인공이 직장을 그만둔다. 그 결말을 영화에 그대로 가져오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감독의 입장은 하 부장에 더 가까운 것 아닌가. “그건 그렇다(웃음). 마음이 아픈게, 나도 언제부턴가 조감독한테 ‘이게 왜 안 돼?’ ‘내가 해 봐?’라고 말하고 있더라.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어 가고 있는 거다. 이번 영화를 하며 나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스태프 처우가 과거에 비해 개선된 편이지만, 훨씬 더 윤택한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전작에 비해 촬영 회차나 촬영 시간을 많이 지킨 편이다.”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쓰인 동명 원작 소설이 신세대의 내면과 입장을 대변하는 데 힘줬다면, 영화는 기성 세대와 신세대의 입장을 공평하게 반영하려는 게 느껴졌다. “신입 사원 라희의 마음 아픈 현실만으론 타깃 관객의 폭이 좁을 것 같았다. 라희의 아픔을 그리면서 그렇게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사의 입장도 그리고 싶었다. 이 관계 속엔 이들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국장이나 광고주의 압력을 그린 것은 구조적인 문제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희가 특종을 너무 쉽게 터뜨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시나리오엔 있었던 세세한 과정이 삭제되면서, 라희의 활약이 우연의 연속처럼 보이는 게 아쉽더라. “시나리오 대로 다 찍긴 했다. 결국 선택의 문제인데, 두 시간 이상 끌고 갈 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덜컹거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지루하지 않고 임팩트 있게 웃음을 주는 방향으로 편집한 거다. ‘반창꼬’ 때도 그랬지만 나만 만족하는 영화가 아닌 스태프와 관객이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게 내 스타일이다. 그러면서 매번 집에 가서 후회한다(웃음).”

-사실 제목만 보면 라희가 기성 세대인 하 부장을 단죄하고 반격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살면서 진짜 악당을 만나보지 못해서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놈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쁜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을 것 같더라. ‘애자’ ‘반창꼬’도 모든 등장인물들이 결국 반성하고 후회하고 달라진다. 내 영화의 공통점이 성장 아닐까. 내가 아직 성장하지 못해 계속 성장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세 영화의 공통점은 또 있다. 중심 인물이 일하는 여성이란 점이다. 그들은 착하지만 나쁜 구석도 있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한국영화가 여배우들에게 빚진 게 많다. 소모적으로만 쓰고 비중도 크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생각하다, 여배우가 주체적으로 극을 끌고 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여성 캐릭터에 더 끌리는 건 내 성장 환경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은 대신 어머니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많다. 그래서 더 여성을 위해주고 싶은 것 같다.”

-주연 배우였던 최강희, 한효주, 박보영은 맑고 깨끗하고 자연스럽다는 게 닮았다. “하하. 그런가. 내가 여배우들을 못 꾸미게 한다. 메이크업 없이도 정말 예쁜 배우들이지 않나. 순백의 얼굴에 내가 직접 채색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톤을 잡을 때도 시나리오에서 느껴지는 대로 순수하게 연기해 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극 중 박보영의 귀엽고 발랄한 모습은 기존 이미지와 비슷한 것 같은데. “아니다. 잘 생각해 봐라. 내가 박보영을 처음 봤을 때 받은 이미지는 차분함이었다. 이름을 알린 ‘과속스캔들’(2008, 강형철 감독) 때도 밝게 웃는 얼굴이 한 번도 안 나온다. 그 이후로 어둡고 침울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 나는 그 부분을 바꿔주고 싶었다. 그에게 스크린을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놀라고 했다. 아마도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tvN)에서의 이미지와 겹쳐 보이는 것 같은데, 사실 촬영은 ‘열정같은’이 먼저 했다(웃음).”

-이번 영화에서 코미디는 정재영의 몫이었다. 그가 버럭하면서 라희를 닦달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여러 번 터졌다. 라희에게 열정을 세 번 복창시키는 장면 등 애드리브가 많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끌어낸 건가. “나는 배우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편이다. 연기는 연기자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멍석만 잘 깔아주면 좋은 것들이 나온다. 그런 면에서 정재영과 잘 맞았다. 순발력이 대단하고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도 나와 비슷했다. 기대감이 있으니까 컷을 늦게 부르게 되더라.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재미있는 애드리브가 나왔다.”

-영화를 만들 때 중시하는 게 있다면. “유쾌함?! 사실 단순하다. ‘애자’를 만들 땐, 관객이 보고 나서 ‘엄마한테 전화 한 통 해야지’ 생각하길 바랐고, ‘반창꼬’는 ‘아, 연애하고 싶다’, ‘열정같은’은 ‘아, 오늘 스트레스 잘 풀었다’고 생각한다면 성공인 것 같다. 영화에 큰 의미를 담기 보다 관객이 즐겁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머릿속에 남길 사람은 남기고 지울 사람은 지우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너무 쿨한 것 아닌가. “나는 작품을 만들기보다 좋은 상품을 만들고 싶다. 예술가가 되기보단 장인이 되고 싶다. 왜 중국집에 가도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 때 이걸로 상을 받아야지, 떼 돈을 벌어야지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않나. 좋은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고, 어느 순간 인정받을 수도 있다. 이게 내가 갖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 한계를 계속 느끼고 아파하고, 다음 작품에서 수정해 나가는 것 같다. 현장에서 정재영과 이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우리 칸에 갈 거 아니잖아. 그렇다고 막가는 코미디를 만들 것도 아니고(웃음).’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의미를 한 번 찾아 보자는 것이다.”



글=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여다연(STUDIO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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